출판사 서평
세상의 모든 '살리에리'들을 향한 따뜻한 격려
『무진에서 북어를 낚다』는 안개 같은 생의 허무를 문장이라는 낚싯대로 건져 올린 정직한 기록이다. 작가는 스스로를 재능 없는 ‘살리에리’로 규정하면서도, 대가들이 남긴 ‘북어’라는 박제된 지혜를 씹으며 내면의 살을 찌우는 성실한 패배자의 길을 기꺼이 걸어왔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지독할 정도의 정직함에 있다. 사촌 동생의 성공에 배 아파하는 옹졸함이나 죽어가는 아버지에게 행한 선의의 거짓말 같은 비겁한 민낯을 가감 없이 드러냄으로써, 독자에게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라는 공감을 일으키게 한다. 그리움이라는 추상을 커피 향이나 버터 비빔밥 같은 구체적인 감각으로 복원해내며 상실된 존재들을 현재의 식탁으로 불러오는 솜씨가 아주 탁월하다. 결핍을 불행으로 치부하지 않고 세상을 깊이 관찰하는 내면의 GPS로 활용하며, 평범한 일상을 기적으로 바꾸는 가장 인간다운 보행자의 뒷모습을 보여주는 수필집이다.
저자의 말
소설을 써야 했다. 아니 시를 써야 했나? 소설과 시를 우습게 보는 게 아니라 소설은 서술자 뒤에, 시는 화자 뒤에 숨을 공간이 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꽤 오랜 시간 수필을 써 왔지만, 수필은 머리카락 한 올만큼도 숨을 공간이 없다. 숨기고 싶은 이야기들도 글을 쓰다 보면 술술 자백하게 되어, 읽는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쓰는 사람은 곤혹스러움을 느낄 때가 많다. 이 책을 쓸 때도 그랬다.
수필은 교과서에 정의해 놓은 것처럼, 누구나 붓 가는 대로 쓰는 비전문적인 글이 맞을지 모른다. 내게 국어를 배우는 한 녀석이, ‘선생님 글도 교과서에 나올 수 있겠네요’ 한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뼈아팠다. 분명 수필을 써 보지 않은 누군가가 모르고 쓴 말이거나, 붓만 들면 일필휘지로 써 내려가는 잘난 분이 내린 정의임이 분명하다. 수필을 써 본 사람만은 웃으며 그 정의를 마음껏 조롱할 수 있다. 누가 수필을 붓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쉽게 쓴단 말인가. 멋모르고 혈기로 시작했다가, 성찰과 부끄러움만 남기는 것이 수필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글이 삶의 사족이 되지 않도록 늘 경계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수필가(隨筆家). 어느 것에 능숙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접미사 ‘가(家)’를 쓴다. 저 무거운 접미사를 언제쯤이면 양심의 가책 없이 붙일 수 있을까 생각했다. 이 한 권의 책을 내는 뻔뻔함으로, 나는 앞으로 ‘수필가’라는 명함을 내밀까 한다. 받아 주시라.
책을 엮기로 마음먹은 것이, 이 땅에 왔다가 고작 딸 둘 남기고 가신 부모님 때문이었다. 일찍 세상을 떠난 그들을 위해, 흔적 하나 남겨드리고 싶었다. 그들이 이 부박한 세상에서 잠시 살았다는 것을, 증언하고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 것만으로 이 책은 충분한 효용을 갖는다. 당신들께서 없어서 나는 이렇게 살고 있고, 당신들께서 없어도 나는 이렇게 살고 있다는 소식, 영전에 올린다. 하늘에서도 자그락자그락하고 있을 어느 부부가 잠깐이라도 마주 보며 웃음살 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부모의 이름을 현현케 할 딸이 되지 못한 죄송함을 이렇게 때운다.
옛날 어르신들께서 당신의 이야기를 글로 쓴다면 열두 권은 될 거라는 우스개를 많이 하셨었다. 열두 권은 과장일 테고, 이 수필집은 누구나 평생 한 권은 쓸 수 있는 그런 이야기이다. 세상에 완벽한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고 그러므로 완벽한 문장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위안받는다.
수필의 첫걸음을 인도해 주신 박양근 교수님, 『에세이스트』 발행인 김종완 선생님, 미욱한 원고를 한 권의 책이 되도록 애써 주신 출판국장 조정은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늘 나의 글쓰기를 격려해 주시는 평산책방 책방지기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해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