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이 책의 K컬처 비판은 플레이어로서 애정이다. 그는 자신의 위치를 명확하게 밝힌다. “나는 K컬처를 밖에서 구경하며 비판하는 사람이 아니다. 뉴욕에서 K푸드와 K아트, 문화 인프라 프로젝트를 직접 운영해온 현장의 플레이어다.” 맨해튼 55번가에서 갤러리 장(Gallery Chang)을 운영하고, 뉴욕 미들타운의 옛 체이스 뱅크 건물을 매입해 복합 문화 공간 더 뱅크(The Bank)를 준비 중인 그는 K컬처가 잘되어야 자신이 하는 일도 더 큰 의미를 갖는다고 말한다. 그의 비판에 존경과 애정이 실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의 시선이 남다른 이유는 그의 직업적 경험에 있다. 고액 자산가의 재산을 관리하고, 거대 자본이 건설과 개발 현장에 투여되는 메커니즘을 설계해온 변호사로서 그는 자본이 어떻게 한 지역의 영혼을 잠식하는지 현장에서 목격해 왔다.
그의 눈에 K컬처가 글로벌 자본에 종속되는 구조로 들어선 것이 보인다. 음악은 스포티파이와 애플뮤직에, 영상은 넷플릭스와 디즈니+에, 숏폼은 유튜브와 틱톡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영상 편집은 어도비로, 3D 애니메이션은 마야로, 음악 제작은 프로툴스로 한다. 플랫폼, 알고리즘, 데이터, 창작 도구 등에서 종속되어 있다.
이를 극단적으로 비유하지만 100년 전 조선의 역사와 겹쳐 읽힌다. 일제가 놓은 철도가 수탈의 인프라였듯, 오늘날의 글로벌 알고리즘과 AI 플랫폼이 우리의 문화적 유전자를 채굴해 자본의 수익 모델로 변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기술적 소작농(Technological Sharecropping)의 시대’라 명명하고, 이 구조를 직시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이 비유가 비약이 심함을 인정하면서도, K컬처의 성공이 주는 황홀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냉수 목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1장 ‘가면 속 K의 민낯’은 K컬처의 종속 구조를 개념적으로 해부한다. 이 책은 ‘K’라는 수식어가 외부 인정에 대한 집단적 불안의 산물일 수 있음을 경고한다. 또한, 영상 플랫폼부터 음악 편집 툴까지 창작의 도구와 유통 구조를 의존하고 현실을 짚으며, ‘인프라 없는 콘텐츠 생산자’라는 진단을 내린다. 빠른 글로벌 진출을 위해 외부 플랫폼에만 의존하는 것을 ‘효율’이라며 정당화할 수 없으며 이 구조에서 탈피해야 함을 역설한다.
2장 ‘K컬처의 현주소’는 K팝·K드라마·K푸드·K아트 각 분야를 차례로 들여다본다. K팝은 빌보드 순위가 성공의 절대 기준이 되고 미국 레이블과 종속 계약을 맺는 구조 속에서 창작자의 영혼이 아닌 ‘공학적 산물’로 수렴하고 있음을 분석한다. K드라마는 IP를 플랫폼에 통째로 넘기는 ‘바이아웃 계약’의 위험성을 안고 있음을 지적한다. K푸드는 발효와 나눔의 철학이 빠진 채 서구 입맛에 맞게 재편되는 경로로 들어섬을 다룬다. K아트는 한국 작가가 글로벌 무대에 서기 위해 서구 큐레이터의 ‘미학적 검인’을 받아야 하는 종속적 구조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3장 ‘가면과 허상’은 개별 분야를 넘어 구조적 문제를 총괄한다. 빌보드 석권, 수출액 최대치 같은 화려한 수치가 상위 1%의 블루칩에 집중된 ‘문화적 단일 경작’의 결과임을 지적하고, 글로벌 플랫폼이 IP와 데이터를 독점하는 구조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4장 ‘K 대안과 전략’은 각 분야의 구체적 처방을 제시한다. 글로벌 자본과의 협력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 트랙’과 ‘주권 트랙’을 병행하는 투 트랙 전략을 제안한다. 정부에 대해서는 IP 보호를 위한 공적 금융 시스템 구축과 아이돌 편중 지원 탈피를, 기업에 대해서는 아티스트를 규격화된 부품이 아닌 미학적 파트너로 대우할 것을, 개인에게는 외부의 인정을 구걸하는 대신 스스로 가치를 판단하는 안목의 독립을 촉구한다.
5장 ‘미들타운에서의 문화 실험’은 저자의 실험적 실천을 소개한다. 맨해튼의 갤러리 운영 경험에서 시장 구조 밖에서 새로운 구조를 만드는 시도 없이는 본질적 변화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으며 뉴욕주 미들타운 옛 체이스 뱅크 건물을 매입, ‘더 뱅크 뮤지엄 디스트릭트(The Bank Museum District)’로 전환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