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구조의 복잡성은 우연인가, 필연인가
이 책은 단순한 교양 과학서도, 철학서도 아니다. 오히려 그 사이에 존재하는, ‘세계 전체를 하나의 논리로 설명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우주의 탄생에서부터 현대 문명에 이르기까지,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기원을 하나의 흐름 속에서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법칙’과 ‘환경’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물질에서 생명으로, 생명에서 의식과 사고로 이어지는 과정을 연속적인 구조의 진화로 해석한다. 단순한 입자의 결합에서 시작된 세계는 복잡성이 증가할수록 새로운 기능과 질서를 만들어내고, 그 과정에서 의지, 감정, 관념과 같은 새로운 층위가 등장한다.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것을 ‘구조’와 ‘복잡성의 증가’라는 관점에서 다시 읽어내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물질과 생명의 경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신경계와 의식이 어떤 조건에서 등장했는지, 인간의 사고와 사회가 어떻게 가능해졌는지를 하나의 흐름 속에서 볼 수 있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이 책이 ‘단절’이 아니라 ‘연속성’을 강조한다는 데 있다. 우주는 갑자기 복잡해진 것이 아니라, 조건과 법칙 속에서 점진적으로 새로운 층위를 만들어 왔다. 그리고 그 끝에 지금의 인간이 존재한다. 또한 개인의 인지에서 집단의 지식으로 확장되는 과정, 즉 ‘정보가 외부에 고정되고 축적되는 구조’를 통해 문명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이 책은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그러나 한 번 흐름을 따라가기 시작하면 독자는 점점 더 큰 구조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연스럽게 존재에 관한 질문에 닿는다.
우리는 우연한 존재인가, 구조가 만들어낸 필연적인 결과인가?
책 속에서
시간이 등장하기 이전 상태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시간이 등장하기까지 10조 년, 또는 무한히 오래 걸렸다고 하더라도 시간 범주가 없었기 때문에 걸린 시간은 0이 된다. 이렇게 시간 존재 이전이라는 개념은 논리가 무너지게 된다. 이렇게 보면 시간의 출현은 아무리 기적 같은 사건이라고 해도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들의 입장에서는 필연적이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27p
우연히 복잡한 물질 조합이 형성된 뒤, 그 조합이 다음 순간까지 자기구조를 유지하는 기능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 유기체 본질의 출현이었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경향성을 생존의지라고 부르겠다. 여기서 의지는 의식, 욕망, ‘살고 싶다’ 같은 자기반성적 감정을 뜻하지 않는다. 생화학적 수준에서 창발한 지속 경향성을 지칭하는 말이다. 또한 이 책에서 생존이익은 핵산 구조의 존속 경향성만을 뜻하지 않는다. 각 층위에서 유지되는 기능적 정보와 구조의 지속까지 포함한다. 따라서 생존 의지는 자기조직 분자 수준에서의 지속 경향성부터, 더 복잡한 상위 차원에서 나타나는 의지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한다. 이 새롭게 나타난 생존 경향성은 앞으로 나타날 많은 일들의 원인이 된다.
-121p
지금까지 살펴본 것은 우주에서 물질과 생명, 그리고 인간 사회에 이르기까지, 복잡성이 높아질수록 질서가 형성되고 유지되는 방식이 발전해 왔다는 사실이다. 단순한 입자 집합이었던 세계에서는 입자들 사이의 상호작용만이 존재했지만, 원자와 분자가 등장하면서 그 위에 새로운 물리·화학 법칙이 성립했다. 이후 세포가 생겨나자 생명체 내부에는 의지라는 새로운 층위의 경향성이 출현했고 복잡성이 높아져 감정과 관념을 갖게 되자 개체는 주변 환경으로부터 더 많은 네겐트로피를 흡수할 수 있게 되었다.
인류가 등장하고 사회와 문화가 형성된 이후에는, 역할 분화와 도덕규범, 제도화된 질서 체계가 등장하면서 개별 개체로는 불가능한 규모의 조직화와 에너지 획득·저장·분배가 가능해졌다.
따라서 인간 집단의 질서 형성 능력이 진화해 온 과정은 생명체가 우주의 엔트로피 증가 경향 속에서 국소적인 질서를 확대해 온 연속선 위에 놓여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물질, 생명, 사회의 변화는 모두 이런 방향성의 적용을 받는다.
-307~30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