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트럼프 2기, 비상계엄, 1,400원대 환율 속에서 가족이 함께 통과한 1년
거대 담론이 아니라 장바구니와 학교 알림장에서 본 ‘진짜 미국’
“물 밖에 나가 본 사람만이 우물의 모양을 안다”
저자 가족이 미국에 도착한 2024년 여름부터 귀국하는 2025년 여름까지, 한국과 미국 양쪽에서는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 잇따라 벌어졌다.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의 재집권이라는 정치적 격변이 일어났고, 한국에서는 12·3 비상계엄과 그 여파, 그리고 1,400원대를 돌파한 환율이 일상을 흔들었다. 언론인 저자는 이런 시간을 통과하며 전문적인 분석가의 시선 대신 캠퍼스 인근 교회 투표소를 지나며 ‘갓 첫 투표를 마친 새내기’의 표정을 관찰하고, 미주리저널리즘스쿨 도서관에 펼쳐진 뉴욕타임스 1면을 오전 내내 단 한 명도 들춰보지 않는 풍경을 씁쓸하게 기록한다. 클리블랜드에서 인디애나폴리스로 가는 차 안에서 비상계엄 뉴스를 접하고, 환율이 오를 때마다 장바구니의 무게를 조절하는 ‘생활자의 정치 감각’도 이 책의 진짜 무게중심을 이룬다.
또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로컬의 시선’을 끝까지 놓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저자는 미주리주에서도 양대 도시인 캔자스시티와 세인트루이스가 아니라, 두 도시 사이에 있는 인구 13만의 대학도시 컬럼비아에서 살았다. 그래서 이 책에는 한국 독자에게 익숙한 ‘이민자 거점 도시’의 이야기가 거의 없다. 대신 ‘꽃동네’라 불리는 한적한 마을, 페이스북 마켓플레이스에서 산 중고 피아노, 빨간딱지가 두 번 붙은 클리어런스 매장의 옷, 미식축구에 진심인 이웃, 학부모 자원봉사로 굴러가는 초등학교의 풍경이 있다. 이는 부산에서 자라고 부산에서 일해 온 저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발견해 낸 미국의 또 다른 얼굴이며, 동시에 한국 독자에게 ‘서울이 아닌 곳의 삶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슬며시 건네는 방식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가족 모두의 책이다. 본문은 아빠인 저자가 썼지만, 에필로그 세 편은 아내 하수미(교사), 첫째 딸 이가온, 둘째 딸 이지온이 각자 쓴 1년의 회고로 채워진다. 같은 1년을 네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어떻게 살아냈는지가 그대로 드러나는 이 구성은, 한 가족이 함께 ‘우물 밖’으로 점프해 본 경험이 어떻게 네 갈래의 성장으로 갈라지는지를 보여준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알맞게 습하고 적당히 비좁은 곳에서 살던 개구리가 우물 밖 미주리로 떠나 건조한 바깥세상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내 육지의 호흡법을 익히며 생존해 냈다.” 우물의 모양은 우물 밖에 나가 본 사람만이 안다. 한 가족의 1년 치 호흡 기록이 독자에게 건네는 메시지다.
책 속에서
p.12 “조금 긴 꿈에서 깨어난 것 같다. 물고기가 어떻게 물 밖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었을까. 돌이켜 보면 ‘물고기’는 다소 과장된 표현 같다. 한국식으로 ‘우물 안 개구리’ 정도가 적합하겠다. 알맞게 습하고 적당히 비좁은 곳에서 살던 개구리가 우물 밖 미주리로 떠나 건조한 바깥세상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내 육지의 호흡법을 익히며 생존해 냈다. 특히 우리 집 두 아이는 올챙이에서 개구리로 성장해 돌아왔다. 한국 학교에 금세 적응하는 걸 보니 뜀박질하는 뒷다리가 꽤 여물어 보인다. 우물 밖 세상이 있다는 걸 알았으니, 앞으로는 스스로 점프해 바깥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겁 많은 개구리를 따라 함께 꿈을 꿔준 아내와 두 딸에게 감사와 사랑을 보낸다.
p.20 집기류라고는 숟가락 하나 없는 빈집. 냉장고 문을 여니 뜻밖에도 생수병과 수박, 피자, 치킨이 채워져 있었다. 낯선 땅, 낯선 집에서 가장 먼저 우리 가족을 맞은 건 한국 사람의 ‘정’이었다.
p.50 개학 첫날 아이들을 노란 스쿨버스에 태워 보냈다. 자기 반에는 제대로 찾아갈지, 영어는 얼마나 알아들을지, 점심 도시락은 잘 챙겨 먹을지, 돌아오는 스쿨버스는 알아서 탈 수 있을지 등 근심 걱정이 줄을 잇는 게 부모 마음이겠으나, 그보다 먼저 스쿨버스 시스템에 눈길이 갔다. 미주리주의 공립초등학교는 학비는 물론 스쿨버스도 무료다. 학교에 신청한 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버스를 타면 된다.
p.74 ‘미쭈(Mizzou)’에서 ‘미주(美酒)’ 빚기에 도전했다. 미쭈는 컬럼비아 주민들이 미주리 대학교(University of Missouri)를 줄여서 부르는 애칭이다. 대학도시인 컬럼비아는 주민들 상당수가 미주리 대학교와 관련된 ‘미쭈리언’이라 볼 수 있다. 참고로 컬럼비아 미주리(Columbia, MO)를 줄여서 ‘코모(COMO)’라고 부르기도 한다.
p.85 언젠가 아이들이 성인 되었을 때 “아빠가 육아휴직을 하면서 얼마나 손에 물을 많이 묻혔던지 주부습진에 걸렸었다”라며 유세 거리가 생겼는데, 이번 기회에 무용담이 하나 추가됐다. “얘들아, 기억하니? 아빠가 해외연수를 하면서 요리 설거지 청소 세차 잔디 깎기 등 집안일을 얼마나 많이 했던지 손목이 남아나질 않았단다.”
p.123 사실 미국에 와서 웬만하면 아이들 교육에 관심을 안 가지려고 했다. 들여다보면 부러워질 것 같아서, 부러워하다 보면 한국 교육제도에 대해 더욱 갑갑함을 느낄 것 같아서다. 그럼에도 어깨너머로만 지켜보며 받은 대략적인 인상은, 미국 아이들은 할 만한 애들만 공부를 한다는 사실이다. 음악·미술·체육 등 학교에서 배울 거리들이 널렸기에 공부 역시 여러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다.
p.152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 가족이 사는 부산 남구 인구의 절반밖에 안 되는 도시에서 어떻게 100명이 넘는 예술가가 활동할 수 있을까. 현지인 분들이 설명하기로, 전직 대학 교직원을 비롯해 정년 은퇴한 이들이 화가로 등단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러니까 상당수는 예술계의 만학도인 셈이다. 제2의 인생을 예술로 시작하는 어르신과 이들의 활동을 보며 자라나는 아이들. 예술의 저변이 자연스럽게 넓고 두터워지는 구조다.
p.197 미국이나 한국이나 헬스장에서 젊은 대학생이 운동하는 모습은 특별할 게 없을 터. 하지만 아크에서는 미국 어르신들 생활상을 관찰자 시선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인종도 나이도 배경도 다른 어르신들이 매일 매일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나누는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지만, 서로의 안부를 묻고 답하는 연결의 순간, 마음의 나눔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활력소처럼 보였다.
p.234 우리 가족이 1년 동안 나들이 겸 방문한 역사 유적은 미주리주의 아주 일부분에 불과하다. 구석구석 작은 역사와 소소한 자연을 가꿔 나가는 미주리를 보면서 내 고향 부산을 떠올린다. 적산가옥을 비롯한 근대건축물, 피란수도 흔적 등 다른 지역과 차별화한 근대 문화유산을 지녔지만, 개발 사업으로 시나브로 사라지고 있다. 원도심 지역에 남아 있는 100년 넘은 옛길도 가치를 몰라보고 방치한다. 역사로 보면 한참 동생인 미주리한테 배울 일이다.
p.296 돈을 더 내면 합법적인 새치기 권한을 주는 디즈니월드라니 역시 자본주의 끝판왕 미국답다. 두 아이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 다녀왔지만, 두 번 다시 안 갈 것 같다. 돈에 따라 눈에 보이는 차별을 하는 시스템은 아이들에게 유익하지 않다. 꿈과 희망을 얘기하는 ‘동화 속 세상’에서는 더더욱 옳지 않다.
p.328 며칠 뒤 친절한 목소리의 한국인 여성 사무장이 전화를 걸어와 도움을 줬다. 영어가 서툰 우리 가족을 대신해 해당 법원에 전화를 걸어 벌금만 내면 딱지를 깔끔하게 없애주겠다는 확답을 받아냈다. 결국 출국을 한 달쯤 앞둔 어느 날, 눈물을 머금고 벌금을 납부했다. 카드 수수료를 포함한 총납부액이 공교롭게도 666달러다. 평생 잊지 못할 ‘악마의 숫자’다.
p.367 미국은 아름답다. 미국(美國) 이름을 한자 뜻 그대로 풀면 ‘아름다운 나라’다. 굳이 순위를 정해 제일의 아름다움을 꼽자면 ‘사람’이다. 부연하면 일상생활에서 기본으로 깔린 친절과 배려다. 특히, 운전대를 잡는 동안 많이 느꼈다. 막무가내로 끼어드는 차량이 없으니, 나 또한 끼어들 필요가 없다. 서로 양보하려다 조금 지체될지언정 먼저 가려다 꼬리물기로 차가 막히는 일은 없다. 컬럼비아는 물론, 미 대륙 구석구석을 자동차로 누비는 동안 경적을 들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뉴욕의 번잡한 맨해튼에서나 한두 번 들었던 것 같다. 당연히 경적을 울릴 일도 없었다.
p.384 한국에 돌아온 뒤 한동안 ‘집순이’로 지내며 우리 집의 소중함을 만끽했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느낀 것은 내가 있는 곳에서 중심을 잡고 살아간다면 어디서든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인생에서 행복의 의미를 가르쳐준 값진 1년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 이 추억들을 문득문득 되새길 것 같다.” - 아내 하수미
p.388 미국 생활을 끝내고 다시 한국으로 귀국한 순간, 딱 미국에 처음 갔을 때 느낌과 똑같았다. 새로운 세상, 마치 원래는 없던 동화 속 세상에 온 느낌이었다. 나는 한국 사람이고 한국에서 한평생 쭉 살아왔는데도 생판 처음 온 것처럼 마음이 들뜨고 신기했다. 지금은 많이 적응해, 이제는 미국에 다녀왔다는 사실이 꿈만 같다. 하지만 미국에서 보낸 시간은 절대 꿈처럼 잊히지 않을 것이다. 내게 정말 중요하고, 필요한 경험이었기 때문에.” - 첫째 딸 이가온
p.389 처음 학교에 간 날엔 한마디도 뻥끗 못 하고 수업이 끝났어요. 하긴 ABC만 떼고 미국에 갔으니까요. 그래도 친구들이 다가와 준 덕분에, 혼자서 다니지는 않았어요. 점차 시간이 지나자 ‘찐친’이 생기고, 나중에는 제가 전학생을 도와주고 있더라고요. ... 어느덧 시간이 흘러 점차 ‘한국에 돌아가기 싫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 둘째 딸 이지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