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추천사]
수십년 지기 친구는 가끔, 시를 한 편씩 써서 보내곤 했다. 오랜 세월, 오로지 평교사로서 한길을 달린 이 친구만의 따스한 감정과 부드러운 언어가 가득 찬 글로, 나로 하여금 감칠맛 가득한 진정한 시(詩)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김광수 선생의 시집 발간을 기꺼이 축하한다.
- 이정면(건축가)
김광수 시인은 호모사피엔스가 보고 들을 수 있는 가시광선과 가청 주파수의 영역을 벗어나, 다섯 개의 감각만으로는 찾을 수 없는 그 어딘가에서 소리 없이 모습을 숨기고 있는 그 무엇을 오직 타고난 시적 감수성을 통해 감지해내고, 그 초언어적인 느낌들을 잘 다듬어 진한 시어로 표현해내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언어의 예술가이다.
- 박응천(University of Redlands 교수)
김광수 시인은 로맨틱 휴머니스트이다. 개인의 내면 감정을 노래하되, 이를 단순한 사적 체험에 머물게 하지 않고 타자에 대한 공감 능력으로 확장하기 때문에 로맨티시스트이며, 실존적 비극을 냉소하거나 해체하기보다는 인간다움의 핵심으로 보고 포용하며 존엄의 가능성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시도 마찬가지다.
- 김옥환(문학박사)
[책 속에서]
서시(序詩)
<억새>
그 무엇을 향한
그리움 있어
저토록 무수히
고개 숙이며
목 놓아 외쳐
부르는 걸까
마침내 머리칼이
하얗게 세어
바람에 실리어
날릴 때까지
<단풍>
산물은 꼭대기에서
서서히 달리기 시작하더니
오늘
마침내 호수 속으로
소리 없이 가만히
뛰어들었네
<산정(山頂)에서>
잊혀질 줄 알았어요, 그대
뒷모습까지도
멀리
마을을 뒤로하고
산정(山頂)을 향하여
한 걸음 한 걸음
발길 옮길 때
내 그리움 바람 되어
온 산 골짜기
흩어질 줄 알았어요
허나
흩어졌던 바람
어느새 다시 그리움 되어
산정에 올라서던
내 온몸 가득
부딪쳐 때리며
밀려왔어요
창근이
그 사람 창근이
성(姓)은 모르네
어느 해 가을인가 휘파람 불며
시골 장터 한복판에 나타났다지
지평선에 쏟아지던 햇살
좋았었는지
갯냄새 머금은 솔바람
좋았었는지
아니면 시끌벅적한 시장 사람들
웃음소리 소락빼기 좋았었는지
그만 시장통에 머물렀다지
이 세상 그에게는 살 만했는지
사발 같은 얼굴에 웃음을 담고
시장통 곳곳을 인사 나누며
한 해 두 해 그렇게
세월이 갔지
창근아 창근아
아이들이 이름 불러대어도
뭐가 그리 좋은지
창근이, 그저 웃기만
어느 해 겨울
유난히도 추웠던 동지섣달 어느 날
시장 좌판 옆에 창근이 잠들어
영영 일어나지 아니했는데
온몸이 얼고 창근이 웃음도 함께 얼어
그렇게 창근이, 웃으며 잠들었는데
아이고 불쌍한 창근이 어찌 할거나
여기저기 시장 아낙네들 섧게 우는데
창근이 수의는 내가 해줌세
우리 엄마 눈물 저고리 섶에
소리 없이 가만히 떨어지었네
오호, 창근이 떠난 지 오랜 시장통
사람들 웃는 얼굴 뒤섞이는데
시끄러운 인사들 넘실대는데
오늘따라 그 사람 창근이 웃음
우리 엄마 저고리 섶 마알간 눈물
그립네
자꾸
그립네
- <2024 율목문학상 우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