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은빛 현』은 츠바이크가 지은 시들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도 섬세한 작품들을 모은 시선집이다.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츠바이크 시집으로, 그의 첫 시집 『은빛 현』을 비롯해 『이른 화관』, 『새로운 여정』을 포함하여 80여 편의 시를 수록했다.
『은빛 현』은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젊은이가 여러 지면에 발표했던 서정적 시도들의 첫 결실이었다. 그 무렵에는 일찍 문학을 시작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특히 빈에서는 그러했다. 츠바이크 역시 학교에 다니던 시절부터 작품을 발표했다. 다뉴브 강변의 도시에서 음악과 문학, 연극과 미술은 정성껏 가꾸어지는 고귀한 사치였다. 그것은 나라와 도시의 영예였고, 사람들은 그 영예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주위의 현실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그것은 새로운 젊음의 시대, ‘아르누보’의 시대였다. 막스 레거는 이 시집에 실린 시를 골라 자신의 가곡집에 곡을 붙였다. 츠바이크는 그 일로 자신이 “음악사 속으로 들어갔다”고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1부 「은빛 현」이 모든 소유가 의심스러운 것이 되고, 모든 것이 사라져가는 세상 속에서 삶을 긍정하는 서정시의 역할을 한다면 2부 「이른 화관」과 3부 「새로운 여정」에서는 한 세대를 대변하는 목소리가 되어 세계를 묘사한다.
『은빛 현』이 출간되자 츠바이크는 존경하던 릴케에게 책을 보냈고, 릴케는 답례로 자신의 시를 친필 헌사와 함께 보내왔다. 『초조한 마음』, 『마리 앙투아네트』 등 거장 슈테판 츠바이크를 산문으로 읽어 온 독자라면, 이 책에서 그의 문장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처음 츠바이크를 읽는 독자라면, 이 시집을 통해 그의 문학이 지닌 섬세함과 깊이를 가장 맑고 순수한 형태로 경험하게 될 것이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서정시를 모은 이 선집은 한 편의 전기이며 한 시대의 정신사를 이루는 한 조각이라 할 수 있다. 그 시대는 희망으로 충만했고, 꿈과 열광으로 가득했으며, 세계를 향해 넓게 손을 뻗고자 했다. 그러나 세계는 그러한 열망에 그다지 귀 기울이려 하지 않았다.
생의 마지막 순간 친구들에게 보낸 시들 속에서도 시대의 날카로운 소리보다는 오히려 한 줄기 ‘은빛 현’이 울린다. “더는 묻지 않는다, 무엇을 이루었는지. 더는 탄식하지 않는다, 무엇을 놓쳤는지. 늙어감이란 다만 가벼운 작별의 시작일 뿐인 사람.”
책 속에서
━ 첫 문장
책은 늙지 않는다. 책은 사라지지 않는다.
━ 본문 중에서
프롤로그
인간에게는 두 개의 우주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현실의 우주이고, 다른 하나는 책이 우리 곁에 펼쳐놓은 정신의 우주다. 책은 늙지 않는다. 책은 사라지지 않는다. 책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은 자기 눈으로만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인간의 영혼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서시
한때 저 멀리 날아갔던 것
홀로 떠돌던, 잃어버린 울림이
이제 이곳에, 잎사귀마다 포개어져
몽상의 시간 속 고요한 노래로 머물러 있다
이제 다시 먼 길을 떠난다
모든 이에게 큰 의미는 아닐지라도
젊은 날의 그리운 선율과
마음 깊은 곳의 종소리가
나직이 울려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