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직필(直筆)은 무엇인가? 사실을 바르게 기록한 글이다.
그렇다면, 곡필(曲筆)은 무엇인가?
사실을 굽혀 바른대로 쓰지 아니한 글이다.
조선왕조 흥망성쇠의 5백 년이란 긴 역사를 어떻게 쓸 것인가? 혼탁한 사회 속에서도 우리는 믿으면서 살아왔다. 서릿발 같았던 사관(史官)들의 붓끝과 그들 눈으로 담아낸 사초(史草)가 있었다.
조선시대 사관과 사초는 왕조를 지켜 낸 감시망이자 권력을 견제하는 도구였고, 흐린 물을 걸러주는 정화수였다. 젊은 신예들을 사관으로 임명한 이유는 간단하다. 불의와 타협할 줄 모르는 혈기는 용 같은 임금 안전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고, 범 같은 원로대신들에게도 주눅 들지 않으니, 그런 자들만이 바른 역사의 붓을 휘두를 수 있으리란 믿음이 있었다.
과거 전통 시대에는 군주라도 사초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선대 실록조차 보지 못했다. 사관들의 붓 자루에 맡겨진 역사 기록이니, 엄정하고도 냉정한 사필(史筆)을 지켜주기 위함이었다. 역사는 과거를 돌아보는 거울이요, 미래를 밝혀주는 등불이다. 따라서 채찍으로서의 역사요, 길잡이로서의 역사다. 서거정이 『동국통감』을 지어 올리면서 “치흥(治興)과 난망(亂亡)은 이미 지난 것에서 거울삼을 것이니, 거짓으로 미화하지 말고 악한 일을 감추지도 말아, 있는 그대로를 보여줌이 마땅하다.”라고 밝혔듯이, 이런 생각은 서거정 혼자만 가지는 것은 아니었다.
조선조 역사를 다루는 양대 기관은 예문관과 춘추관이었다. 성리학적 이념을 받아들인 조선에서 매우 소중하게 여기던 관청이 아닐 수 없다. 희대의 폭군 연산군도 예문관과 춘추관을 폐지할 수는 없었다. 다만 기능을 축소하고, 기록을 방해하는 수단만 동원했을 뿐이다. 사초 작성을 금지하는 전대미문의 반역사적 행위로 날씨가 맑고 흐린 정도만 기록했으니, 역사 말살기나 다름없었다. 이런 무소불위의 폭군 연산군조차 내가 두려운 것은 사서(史書)뿐이라 고백했듯이, 우리 선조들에게 붓의 힘보다 더 두려운 존재는 없었다.
그럼, 사초란 무엇인가? 사초란 사관들이 기록해 놓은 역사 편찬 자료들이다. 개인이 그날의 일들을 매일 기록하는 일기류 같은 것이나, 실록을 편찬하는 기초 자료로 쓰인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개인이 쓰는 일기와는 상이한 점이 있다. 예문관에 8명의 전임 사관을 두고 있으니, 봉교(7품), 대교(8품), 검열(9품) 등이 그들이며, 이들이 기록하여 비밀리 간직하는 것을 가장사초(家藏史草)라 하는데, 일반적으로 사초라 할 때 이를 두고 일컫는 말이다. 그 외 승정원 주서(7품)가 기록한 당후일기(堂后日記)도 사초 범주에 넣을 수 있다.
사초를 기록하는 사관은 모름지기 재·학·식의 삼장을 갖추어야 한다고 제창한 바가 있던 당나라 유지기(劉知幾)가 재상이 역사 편찬을 감수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논한 바가 있었다. 직필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는 고쳐지지 않은 채 우리 나라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말았다
사관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창(窓)인 사론(史論)에 대해 국어사전에서는 “역사에 관한 주장이나 이론”이라고 간단하게 풀이하고 있다. 이를 좀 더 넓혀보면, 사서 편찬자들이 특정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논평을 말함이니, 사서를 통해 드러내는 사론은 과거에 대한 논평이라 할 것이다. 이에 반해 『조선왕조실록』에 담아낸 사론은 그 의미가 다르다. 국왕이 승하하면 보위를 계승한 왕이 편찬한다는 점에서 당대사나 다름없기에 『조선왕조실록』의 사론은 당시대의 논평이나 마찬가지다.
사관들이 재직 중에 일어난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평가했다가 후일 제출하게 되는 가장사초(家藏史草)를 실록에 그대로 옮긴 것이 사론이다. 따라서 매우 생생한 당대의 세평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당대 사관들이 바라보고 평가를 내린 생동감이나 현장감을 더해 주는 것이어서 재미가 있다. 또 하나 다른 역사서 사론과 상이한 점은 개인이 남긴 것이 아니라, 사관 집단의 현실 인식과 역사의식을 담아낸 논평이라는 점이다. 전자가 주관적인 면에 치우친 데 비해 후자는 실록 편찬 과정에서 오는 집단성과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면이 보인다는 점이 다르다.
『조선왕조실록』 체제는 편년체이며, 본문, 세주(細註), 사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주는 보충 설명이 필요한 경우 본문 아래 통상 작은 글씨로 두 줄씩 조판하여 본문 내용의 이해를 돕게 하려는 것이다. 이는 간단한 인명이나 지명 혹은 사건 소개 등이 많으나, 수 백자에 달하는 매우 긴 문장으로 되어 있는 것도 있다. 실록의 사론은 통상 ‘사신 왈(史臣曰)’로 시작하여 특정 사안이나 인물에 대한 논평을 곁들인다. 이러한 사평(史評)은 본문이나 세주에서도 가끔은 보이는 수도 있는데, 이것까지 사론의 범주에 넣을 수는 있겠지만 완전한 형태를 갖춘 것은 아니다. 하여튼 사론은 사관이나 실록 편찬자들의 주관적인 인식과 견해가 담긴 것이기 때문에, 실록 편찬 목적이 군왕의 언동과 정사를 기록함으로써 시정을 논하고 풍속을 가리어 후세에 거울이 될 만한 것을 전하는 데 있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실록의 내용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것이다.
또한 초기 실록에서는 사론이 별로 보이지 않다가 『세조실록』 이후 증가하는 추세인데, 이는 사림정치 발달과 관련 있을 것으로 보이니, 사관들의 현실 의식을 점차 과감하게 표현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