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추천사]
그곳에 가면 붉은 달을 보겠다. 휘영청 월광 아래 자적(自適)하는 시인을 보겠다. 달이 차고 이우는 동안 그는 순환하는 자연의 섭리를 온몸으로 깨닫는다. 갈등이 있으나 다툼은 없고, 상처가 있으나 아픔이 없고, 사랑은 있는데 이별이 없는 그곳. 단월(丹月)에서 신덕룡 시인을 만난다. 시집 제목은 “속이 뻔한 울증”이지만 그의 시에는 “뻔한” 속이 없다. 시인은 “시간의 다양한 표정”을 탐구하고 해석하고 수용한다(?시인의 말?). 고향의 풍경과 그곳의 삶이 어우러지는 채색 수묵화를 펼친다. “흔적 없이 사라”지고(?샛길?) “흔적 없이 지워”지는(?담배 한 대?) 것들을 따라가는 시인이 보여 주고 들려주는 그림과 노래가 시집을 채운다. 먹먹하다. “수타사 안뜰에 꽃비 쏟아진다”는 진술로 시작하여 산문시 형식으로 이어지는 발화로 1연을 구성하고, “자잘한 무늬 남겨 놓았다/한 시절 훌쩍 건너뛰는 길목에”처럼 2연을 2행으로 조직한 시(?불두화?). 시인은 이 형식의 그물로 단월에서 마주하는 각양각색의 세밀화를 포개 놓는다. “어둠을 긋고 가는 검은 새”가 날아가고(?동지가 코앞이라고?), “빨랫줄에 널어놓은 옷가지들처럼” “늙은 몸”이 “바람에 속해 있”는 “청매화”가 서 있고(?청매화?), “외로움을 탕진하던 굽은 등과 야위고 텅 빈 뼛속을 채우던 생”을 기록하는 “굽은 소나무”가 “이장을 끝낸 무덤가에” “벌겋게 말라 죽”어 있다(?굽은 소나무?). 그림이 더욱 깊어진다. 그윽한 심화(心?)를 본다. 찬연하게 넘실대는 이미지의 향연. “다시 못 올 손님처럼 떠나가는 이별이 있으나 별빛에 섞여 깜빡이는 반딧불 같은 그리움은 없다 뙤약볕 아래//수천수만의 나뭇잎 풀어 저를 감추는/한여름의 숲”을 읽고 나는 얼어붙는다(?여름 숲?). “적막과 그윽 사이를 비집고 틀면서 반딧불”이 날아가는 어둠을 검지로 가리키는 시인. “잊혀진 얼굴들이/하나 둘 깜빡거리고 있는 걸” 우리는 바라본다.(?기웃거리다?) 이 시집이 품고 있는 극치의 아름다움이다. 형용사 ‘뻔하다’에는 ‘어두운 가운데 밝은 빛이 비치어 조금 훤하다’란 뜻이 있다. [속이 뻔한 울증]에 울렁이는 빛살. 단월에 뜬 붉은 달이 “얇고 연한 고요에 싸여 있어 감춰지지 않는다”. 우리는 “꼼짝없이 네게 붙들렸다”.(?붉은 달?)
―장석원 시인
[시인의 말]
단월에 들어온 지 여러 해 되었다
여기서는 시간의 다양한 표정을 보며 산다
시간은
이른 아침부터 찾아와
하루 종일 함께 놀고
떠날 때는 아쉬운 듯 몇 번씩 뒤돌아보며 간다
그때마다 무언가 남겨 놓고 가는데
그걸 들여다보고 만지고 생각하느라 바쁘다
그래서 나는
어제와 조금 다르게 산다
책 속에서
<불두화>
수타사 안뜰에 꽃비 쏟아진다 바닥에 내려 쌓인다 환하게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모양이다 말도 물질이니 곧 흩어질 테고 열매를 맺는 일은 더더욱 부질없다는 듯
자잘한 무늬 남겨 놓았다
한 시절 훌쩍 건너뛰는 길목에
<혼잣말>
빨리 와
언제까지 참을 수 있을지 나도 몰라
노랑이가 머리를 박고 저녁을 먹는다 반쯤 남긴 밥그릇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더니 돌아선다 허겁지겁 먹던 밥이 줄어들 때 노랑이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먹어도 된다고 그래도 충분하다고 몇 번이나 망설이고 또 망설였으리라 때를 잊고 돌아다닐 동생 점박이를 떠올렸으리라 그릇의 테두리를 핥으며 쩝쩝거리는 입맛, 있는 힘껏 다스렸을 거다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산딸나무 꽃>
화르르 날아가 버렸는데
뭔가 남겨 놓은 게 있다는 듯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화장(火葬)이 다 끝난, 깜부기불조차 숨이 죽은 아침이다 햇살이 풀어놓은 손가락들 따라가며 밤새 무슨 알이라도 슬어 놓았는지 한사코 뒤적거린다 당달봉사의 예감과 촉감으로 짚어 내려는 눈치다 타고 남은 잿무덤에 대고 중얼중얼, 주문이라도 외고 싶은 모양이다 바람 불고 산딸나무 꽃 흩어지는 날 흰나비 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