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시간과 소멸을 견디는
유일한 흔적, 전업 눈사람
김륭 시인의 자의식은 무엇보다도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으로 형상화된다. “먼발치에서//날 지켜보던 당신이 울고 있는 게/틀림없었다.”라는 인식은, “땅만 쳐다보고 걷고 있는데”도 그 울음을 감지해버리는 화자의 내면 구조를 보여준다. 얼굴을 들지 않고도 자신을 내려다보는 타자의 눈물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 그 지속되는 죄책감이 시 전체를 밑에서
끌어당긴다.
김륭의 시적 물음은 끝내 ‘누가 울고 있는가’라는 근원적 물음으로 수렴된다. 표층적으로 이 울음은 ‘어머니의 울음’으로 제시되지만, 시의 심층부로 침잠해 들어갈수록 우리는 그것이 곧 화자의 울음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타자의 슬픔을 자신의 목소리 속으로 들여와 노래하는 이 구조적 전이, 즉 타인의 고통을 주체의 내면 언어로 변환시키는 일이야말로 김륭 시학의 독자성이자 그의 슬픔의 문법을 이루는 중심축이다.
김륭의 시에서 ‘눈사람’, ‘어머니(당신)’, ‘밥’, ‘뼈’, ‘숟가락’을 둘러싼 이미지들 사이로 지속적으로 스며드는 정동의 물질은 이처럼 ‘울음’이었다. “울음마저 바닥난 당신 얼굴 앞에서”(「열대야―요양병원」), “이따금 내 몸에서/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숨을 멈추면/아이처럼, 달아나던//마음이 몸을 돌보는 소리였다.”(「스모그」) “죽은 마음에 이목구비가 생길 때까지”(「홍시」) 우는 화자는, 더 이상 눈물의 장식적 수사를 반복하는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시집 전편을 훑어보면 울음과 우는 몸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호출되는 시로 「열대야―요양병원」, 「또 끓고」, 「수국」(1부), 「수국」(3부), 「밀회」, 「전업 눈사람―비석」, 「영원」(4부), 「스모그」, 「홍시」, 「계간 ≪숟가락≫ 가을호」 등을 들 수 있다. 이 작품들에서 울음은 한 번 터지고 흘러 사라지는 사건이 아니라,반복되고, 연기되고, 사물에 부착되는 운동으로 나타난다. 울음은 정서의 돌출이라기보다 정동이 머무르는 방식, 혹은 정동이 사물과 관계 맺는 방식을 가시화하는 매개이다
시인의 말
당신, 죽어도 괜찮아.
나랑 둘이서 사람보다 먼저 태어난
눈사람 보러 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