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1991년 번역에서 2026년 『동양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까지
1991년 박홍규 교수가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번역했을 당시, ‘오리엔탈리즘’은 한국 사회에 낯선 단어였다. 많은 이들이 이 책을 동양 예찬론으로 오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35년이 지난 지금, 오리엔탈리즘은 학계를 넘어 일상 언어가 되었다. “이 영화는 오리엔탈리즘적이다”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쓰이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다시 묻는다. 용어는 익숙해졌지만, 우리는 정말 오리엔탈리즘을 이해했는가. 더 나아가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을 직시했는가.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응답이다. 저자는 한국의 학계가 사이드를 자주 인용하면서도 그의 문제의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학문과 현실이 분리된 채, 오리엔탈리즘 비판이 하나의 지적 유행이나 출세의 도구로 소비되어온 것은 아닌지 묻는다. 따라서 이 책은 단순히 서양의 동양 인식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일본을 통해 왜곡된 채 수용된 한국의 오리엔탈리즘, 백인 중심주의와 동남아 차별이 공존하는 한국 사회의 이중성, K-컬처 속에 남아 있는 서구 승인 욕망까지 함께 짚는다. 1부가 “무엇이 문제인가”를 묻는다면, 2부는 “왜, 그리고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에 답한다.
트럼프 오리엔탈리즘과 21세기 제국주의는 ‘평화와 개발’의 가면을 썼다
책의 첫 장면은 충격적이다. 2026년 1월, 재러드 쿠슈너가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발표한 가자 지구 재건 계획. 초고층 빌딩 180채, 관광 리조트, 해변 개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의사는 배제된 채, 전쟁의 폐허는 부동산 개발의 대상으로 전환된다. 저자는 이 장면을 현대 오리엔탈리즘의 가장 노골적인 표현으로 읽는다. 제국은 더 이상 자신을 침략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대신 평화, 재건, 개발, 투자라는 언어를 사용한다. 약소국의 정치적 고통은 경제적 사업으로 바뀌고, 배제는 폭력이 아니라 정책 설계로 포장된다. 점령은 개발이 되고, 지배는 감독이 되며, 권력은 합리성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트럼프는 가자의 폐허를 ‘부지’와 ‘위치’의 언어로 설명했다. 수많은 죽음과 추방, 상실의 역사는 지워지고, 남는 것은 해변과 토지 가치뿐이다. 저자는 이것이 19세기 제국주의의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더욱 교묘하게 진화한 21세기형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말한다. 오늘의 오리엔탈리즘은 조잡한 편견이 아니라 전문적인 언어로 작동한다. 점령이 아니라 개발을 통해, 폭력이 아니라 계획을 통해, 침략이 아니라 평화의 이름으로 작동한다.
백인을 동경하고 동남아인을 차별하는 한국 사회의 이중성
이 책의 비판은 서구를 향해서만 뻗지 않는다. 저자는 한국 사회 내부로 시선을 돌린다. 한국은 오랫동안 자신을 오리엔탈리즘의 피해자로 이해해왔다. 서양이 동양을 열등하고 미개한 세계로 그려왔고, 한국 역시 그 시선의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피해자의 위치에만 머무르는 순간, 한국 사회가 다른 비서양인들을 향해 행사해온 차별은 보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이 재직했던 지방대학의 사례를 통해 한국 사회의 위계를 보여준다. 외국인 유학생과 이주노동자, 국제결혼 여성의 상당수는 동남아·중국·아프리카 출신이다. 그러나 한국인이 실제로 동경하고 교류하려는 대상은 여전히 서구권, 특히 백인이다. 백인 유학생은 쉽게 호감과 선망의 대상이 되지만, 비백인 유학생은 거리감과 차별 속에 놓인다. 이 모순은 한국 사회가 서구 중심의 세계관을 얼마나 깊이 내면화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현실에서는 동남아인들과 함께 살아가면서도 그들을 후진국 사람으로 낮춰본다. 반면 역사적으로 우리를 지배하고 규정해온 백인 중심 문화는 여전히 선망한다. 저자는 이 감각의 뿌리에 개항기 이후 일본을 통해 강화된 왜곡된 오리엔탈리즘이 있다고 본다. “서양=문명=선진=강대국” “아시아=후진=야만=약소국”이라는 등식은 오늘날까지도 한국인의 무의식 속에서 작동하고 있다.
‘지배의 역사’와 ‘저항의 철학’을 한 권으로 읽는다
1부 「제국의 시선과 타자의 탄생」은 박홍규 교수가 국립순천대학교에서 진행한 오리엔탈리즘 강연을 바탕으로 구성되었다. 이 부분은 서양이 동양을 어떻게 ‘만들어냈는지’ 그 역사를 추적한다. 그리스·로마 신화가 동방을 괴물과 야만의 공간으로 상상한 방식, 중세 문학과 대항해시대가 타자를 발견하고 분류한 방식, 자연법과 국제법이 식민 침략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기능한 과정을 살핀다. 또한 영국의 징고이즘, 식민지 수탈, 니얼 퍼거슨의 제국주의 미화, 영화와 대중문화 속 오리엔탈리즘까지 검토하며 이 오래된 시선이 어떻게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지 보여준다. 2부 「저항의 철학, 에드워드 사이드 읽기」는 오리엔탈리즘 비판 이후의 질문을 다룬다. 저자는 2020년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 소식을 들으며 “사이드가 살아 있었다면 이 영화를 좋아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글을 시작했다.
「기생충」은 서양을 흉내 내지도, 민족주의적 자기 찬양에 머물지도 않으면서 한국 사회의 구체적 현실을 통해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했다. 저자는 이 지점에서 오리엔탈리즘 너머의 가능성을 본다. 이 부분은 팔레스타인 난민으로서의 사이드, 권력에 맞선 지식인으로서의 사이드, 종교적 근본주의와 서구 중심주의를 동시에 거부한 세속적 휴머니스트로서의 사이드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촘스키, 비코, 그람시, 파농, 마르크스, 니체, 푸코, 헌팅턴 등 사이드가 영향을 주고받았거나 비판적으로 대결했던 사상가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의 사유를 다시 읽는다. 또한 『이방인』 속 아랍인 살해 장면을 통해 프랑스 지식인의 식민주의를 비판하고, 오리엔탈리즘과 옥시덴탈리즘을 모두 넘어서는 진정한 대화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이 책은 오리엔탈리즘을 단순한 편견의 문제가 아니라 지식, 권력, 문화, 정치가 결합한 지배의 구조로 읽는다. 동시에 그 구조에 맞서기 위해 필요한 지적 태도를 묻는다. 사이드가 말했듯, 지식인은 어디에도 안주하지 않는 망명자이자 이방인이어야 한다. 『동양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는 바로 그 자리에서 오늘의 한국 사회에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이 책을 ‘지금’ 읽어야 하는 이유'
① 트럼프 시대, 오리엔탈리즘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가자 개발 계획,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에서 보듯 21세기 제국주의는 ‘개발과 재건’이라는 이름으로 약소국의 정치를 경제로 전환한다. 이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제국의 논리에 무비판적으로 동조하게 된다.
② 한국 사회의 이중성을 직시해야 탈식민이 가능하다
서양 숭배와 동남아 차별. 이 이중성은 19세기 말 일본을 통해 배운 왜곡된 오리엔탈리즘의 산물이다. 이를 인식하지 못하면, 우리는 영원히 ‘정신적 노예’ 상태에 머문다.
③ K-컬처의 진짜 의미를 찾으려면 오리엔탈리즘 비판이 필수다
K-팝, K-드라마, K-푸드. 이것들이 진정한 한국 문화인가, 아니면 서양 문화의 모방인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을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
④ 지식인의 책무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사이드는 말했다. “지식인은 어디에도 안주하지 않는 망명자이자 이방인이어야 한다.” 출세와 권력에 순응하는 한국의 많은 지식인들에게 이 책은 뼈아픈 질문을 던진다.
⑤ 35년간의 사유가 집약된, 박홍규의 결정판
1991년 번역 이후 35년. 저자가 한국 사회를 관찰하고 고민해온 모든 것이 이 책에 담겼다. 이것은 단순한 학술서가 아니라 한 지식인의 평생 화두에 대한 최종 답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