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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요, 투우사여
옮긴이의 말
저자 소개
저자 : 페드로 레메벨(Pedro Lemebel, 1952~2015)
칠레의 작가, 시각 예술가이자 사회 활동가. 칠레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조형 예술을 공부하고 고등학교 미술 교사가 되었으나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해고되었다. 이후 전업 작가이자 예술가로 진로를 변경하여 1986년 첫 단편집 『셀 수 없는Incontables』을 출간했고, 이듬해에는 그와 마찬가지로 예술가이자 활동가인 프란시스코 카사스와 함께 칠레 성소수자들의 권익을 위해 싸우는 퍼포먼스 듀오 ‘묵시록의 암말들(Yeguas del Apocalipsis)’을 설립했다. 이후로 그는 다양한 공개 퍼포먼스와 여러 차례의 기습 시위를 펼치며 예술 작업과 사회 활동을 융합했다.
작가로서는 주로 칠레의 성소수자와 빈민 등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다양한 스타일로 포착한 논픽션을 썼다. 그중 한 권인 『미친 열망Loco af n』(1996)이 친구였던 작가 로베르토 볼라뇨의 소개로 스페인에서 출간되면서 해외에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이후 2001년 출간한 유일한 장편 소설 『두려워요, 투우사여』가 여러 언어로 소개되며 세계적인 호평을 얻었다. 2013년에 받은 호세 도노소상을 자신의 어머니와 노동 계급 독자들에게 헌정한 그는 마지막까지 창작에 몰두하다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역자 : 임도울
아홉 차례에 걸쳐 스페인, 쿠바, 멕시코, 과테말라,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를 여행했다. 영화 연출을 전공했으며 전주국제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등에서 스페인어 통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6년 대산문화재단 외국문학 번역지원, 2021년 연희문학창작촌 입주 작가 공모에 선정되었으며, 현재 한국문학번역원에서 한국문학을 스페인어로 번역하는 공부를 진행 중이다. 옮긴 책으로 오라시오 키로가의 『오렌지주를 증류하는 사람들』, 마리아 페르난다 암푸에로의 『투계』, 헤수스 카라스코의 『손을 찬양하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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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1980년대의 한국과 너무나도 닮아 있던
그 무렵의 칠레에서 날아온
가열찬 반독재 러브스토리

1980년대 칠레의 시가지 풍경은 같은 시기 한국과 무척 닮아 있다.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독재자가 있었고, 그에 맞선 민주 세력의 시위가 점점 거세졌다. 곤봉으로 무장한 경찰들은 사람들의 머리를 거리낌 없이 두들겼다. 지나가는 버스 안까지 최루탄이 날아들었다. 수많은 젊은이가 ‘경찰에 의해 실종’되자 그들의 어머니들이 집결하기 시작했지만, 그 나이 든 시위대는 집회 때마다 물대포를 얻어맞았다. 한국의 많은 독자는 이와 닮은 모습들을 기억하고 있거나 전해 들었을 것이다. 『두려워요, 투우사여』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카를로스는 이 풍경에 속한 사람이다. 독재에 맞서 자유로운 나라를 만들고자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치려 하는 이 20대 청년은 역사가 사랑하는 부류의 인물이다.

반면에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 로카는 역사가 거의 주목하지 않았던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다. 나이가 들어 드랙퀸에서 은퇴한 그녀는 부잣집 사모님들의 자수 주문을 받아 먹고사는 중이다. 스스로의 표현에 따르면 그녀는 늙어서 한물간 게이로, 이제 진심으로는커녕 빈말로라도 사랑한다고 말해 줄 사람을 만나지 못하리라 확신하고 있다. 1980년대에 한 나라의 수도 어딘가에 엄연히 존재했던, 그러나 민중과 민주를 숭앙하느라 바빴던 역사가 애써 모른척했던 작은 세계 안에서 아무런 희망 없이 저물어가던 사람. 역사를 일종의 지도처럼 펼쳐 놓는다면, 로카는 그 지도 위에서 카를로스와 가장 먼 곳에, 심지어 군사 독재 부역자들보다도 더 먼 곳에 존재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오직 사랑만으로 채워진 소설 『두려워요, 투우사여』가 시작하자마자 슬퍼 보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소설 내내 로카가 꿈꾸는 단 하나의 목표, 즉 카를로스와의 사랑이 이루어지기에는 그와 그녀의 삶이 애초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카를로스는 로카에게 우정 이상의 감정을 느끼지도 않는다. 그는 자신이 속한 지하 저항 단체의 회합 장소를 제공하는 로카에게 늘 감사를 표하고, 거기에서 시작된 우정을 점점 더 키워 가지만, 한편으로는 로카가 자신에게 완전히 빠져들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녀의 애정 공세를 장난스레 받아넘길 뿐이다. 언제나 사랑에 목말랐던 탓에 이런저런 사랑을 다 마셔 본 로카는 카를로스와 자신이 이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채지만, 한편으로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혼자서 카를로스를 사랑한다. 상대가 점잖게 흘려 버리는 짝사랑을 스스럼없이 수행한다. 그 씩씩함이 이 소설의 기쁨이자 슬픔이 된다.

이루어진 사랑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
오직 짝사랑으로만 이루어진 슬픈 세계

하지만 카를로스 역시 짝사랑 중이기는 마찬가지다. 조국을 향한 그의 사랑은 어떤 대가도 얻지 못하지만, 그는 그 사실을 잘 알면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태세다. 결국, 겉보기에는 아주 다른 인물처럼 보이는 카를로스와 로카는 사랑이라는 중요한 문제에 있어 완전히 닮은 꼴을 하고 있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슬픔 속에 머물더라도 개의치 않는, 오로지 굳건히 수행하는 행위로써의 사랑. 『두려워요, 투우사여』에 스며 있는 이 굳건함은 저 아래에 묻혀 있던 슬픔을 어딘가 밝은 곳으로 끌어올린다.

실제로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피노체트 독재에 저항했던 인물이자 좌우 양측에서 동성애자라고 멸시받았던 페드로 레메벨은 조국을 사랑하는 일과 다른 인간을 사랑하는 일이 똑같이 아름답고 어렵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었다. 로카와 카를로스는 레메벨 자신이 품고 있던 하나의 덩어리와 같은 사랑을 두 개로 분리해 내놓은 캐릭터인 셈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두 주인공이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와중에도 좀처럼 분열됐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무언가를 사랑하고 그 사랑을 향해 모든 것을 내어준다는 일종의 강령, 페드로 레메벨이라는 이 세계의 신이 내린 강령이 그 둘을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사랑이란 걸 가진 적조차 없었던 독재자 피노체트는 이 소설에서 가장 불행한 인물로 묘사된다. 그가 겪는 일이라곤 끝없는 덧없음이 가져다주는 공포에 더 깊이 잠식당하는 것뿐이다.

오직 게이들만이 떠올릴 수 있는
바로크풍의 화려한 연출

『두려워요, 투우사여』가 선사하는 또 다른 즐거움은 화려한 연출이다. 작중에서 로카는 게이들만이 갖고 있는 화려한 감각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하는데, 레메벨 역시 이 소설 속 여러 곳에 그런 부류의 아름다움을 심어 놓았다. 과장된 메이크업과 화려한 레이스 장식을 닮은, B급 영화와 흘러간 유행가로 이루어진 이 소설 속 명장면들은 책벌레 계열의 작가들이 흉내 낼 수 없는 에너지를 전해 준다. 특히 극장에 간 로카가 <다이 하드 2>를 보면서 시작되는 교차 서술 장면은 B급 영화 같은 과장된 문법 속에 위태로운 현실을 녹여 넣으면서 다른 어느 소설에서도 볼 수 없는 기막힌 시퀀스를 선보인다. 타고난 끼와 감수성으로 숙명적인 슬픔을 돌파해 온 작가만이 써낼 수 있었을 이런 장면들은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들의 마음속에 깊은 인상을 남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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