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책 속으로
호랑이와 싸운 소
착하고 부지런한 홍 영감은 아홉 살 된 아들 봉호를 키우며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어느 날, 홍 영감은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송아지를 사기로 마음먹었다. 큰 소는 값이 너무 비싸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는 어렵게 모은 돈 500냥을 품에 챙기고 송아지를 살펴볼 겸 소시장으로 향했다.
소시장에는 크고 작은 소 오십여 마리가 나와 있었고, 소를 사려는 사람들도 구름처럼 몰려들어 있었다. 큰 소는 800냥을 훌쩍 넘었고, 송아지도 500냥 아래로는 좀처럼 살 수 없었다. 왁자한 흥정 소리가 이어지는 사이, 소들은 순식간에 팔려 하나둘 시장을 빠져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송아지도 거의 모두 팔리고 있었다.
홍 영감은 손안의 500냥만 만지작거리다 파장을 맞을 형편이 되었다. 그때 소시장 한구석에서 비틀거리듯 서 있는 바짝 마른 검은 송아지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송아지였지만, 주인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홍 영감이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어디가 아픈 송아지인가요? ”
소 주인은 이때다 싶었는지 반색하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원래는 힘이 어찌나 센지 뛰어다니며 말썽을 부리던 놈입니다. 길을 들이려고 무거운 짐을 끌게 했는데, 고분고분해지기는커녕 짐을 끌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제 속을 많이도 썩였습니다. 홧김에 더 무거운 짐을 지우고 여물도 조금만 주었더니, 골이 났는지 짐도 끌지 않고 쇠죽도 먹지 않더군요. 그러다 이렇게 삐쩍 말랐습니다. 안쓰럽기도 하고, 저를 주인으로 여기지 않는 것 같기도 해서 새 주인을 찾아주려고 끌고 나왔습니다.”
“값은 얼마요? ”
“사백오십 냥만 주세요.”
홍 영감은 두 말없이 값을 치렀다. 그리고 작은 수송아지의 고삐를 건네받아 집으로 향했다.
송아지를 끌고 오면서 홍 영감은 소 주인의 말을 곱씹었다. 굶으면서까지 제 뜻을 보였다는 것은 고집만 센 것이 아니라 마음을 아는 짐승이라는 뜻 같았다.
이쯤 되자 홍 영감은 이 송아지가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고삐를 당겨 “워워! ” 하고 멈춰 세운 뒤 송아지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너는 참 영리하구나. 주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단식 데모까지 하다니….”
홍 영감은 송아지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고삐를 당겼다.
“가자! ”
그리고 마음속으로 남은 50냥을 송아지 먹이값으로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얼마쯤 걷다 보니, 모르는 강아지 한 마리가 졸랑졸랑 뒤따라오고 있었다.
“너는 누구냐? 네 집으로 돌아가거라! ”
홍 영감이 몇 번이나 쫓아버렸지만, 강아지는 잠시 달아났다가 다시 따라왔다. 그렇게 홍 영감의 집 대문 앞까지 따라오자 홍 영감은 가만히 강아지를 내려다보았다.
“너도 갈 곳이 없는 모양이구나.”
홍 영감은 강아지도 함께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내와 어린 아들 봉호가 뛰어나왔다.
“아버지, 웬 까만 송아지예요? 그런데 왜 이렇게 말랐어요? ”
“강아지는 또 웬일이에요? ”
아내와 봉호가 궁금한 눈빛으로 물었다.
홍 영감은 송아지를 외양간에 들이고 고삐를 맨 뒤 방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아내와 봉호에게 타이르듯 말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생명은 모두 귀한 법이다. 이 송아지도, 강아지도 이제부터 우리 가족처럼 아끼며 살자. 송아지는 봉우라 부르고, 강아지는 봉워리라 부르자꾸나.”
홍 영감은 곧장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봉우에게 먹일 쇠죽을 쑤었다. 콩과 겨를 듬뿍 넣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맛있는 쇠죽이었다.
“봉우야, 배고팠지? 많이 먹고 기운 차리렴….”
홍 영감은 쇠죽을 먹는 봉우의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었다.
홍 영감은 이름을 붙인 만큼 두 짐승을 식구로 대해줬다.
다음 날부터 얼레빗을 하나 만들어 봉우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빗겨주었다. 똥과 때가 엉겨 붙은 털도 깨끗이 씻기고 말끔하게 다듬어주었다.
아내도 봉워리에게 먹기 좋게 밥을 챙겨주고 목욕까지 시키며 애지중지 돌보았다.
그렇게 한해가 지나가고 다음 해 봄이 되자, 봉우는 어느새 중소로 자라 있었다. 멍에도 메고 쟁기도 끌며 농사일을 제법 거들었다. 봉우가 논밭을 갈고 온 날이면 홍 영감은 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수고했다, 우리 봉우. 많이 먹어라. 많이 먹고 힘내거라.”
홍 영감은 봉우의 다리에 묻은 흙까지 물로 깨끗이 닦아주었다.
들판에는 소가 먹을 풀도 많았지만 사람들이 가꾼 곡식도 무성했다. 홍 영감은 고삐를 잡고 마치 사람에게 말하듯 봉우에게 하나하나 일러주었다.
“이건 풀이고, 이것은 곡식이다. 곡식은 사람들이 먹으려고 정성껏 가꾸는 것이니 네가 먹으면 안 된다.”
논밭을 오갈 때마다 홍 영감은 소귀에 경 읽듯 봉우에게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그런데 봉우는 정말 알아듣기라도 한 듯, 남의 밭둑이나 논둑을 지날 때면 곁눈질도 하지 않고 앞만 보고 걸어갔다.
홍 영감네 집으로 온 지 꼬박 일 년이 지나자 봉우는 길도 완전히 익혔다.
어느 날, 열 살이 된 봉호가 고삐를 잡고 풀을 뜯기고 있었는데 봉우가 슬그머니 고삐를 빼더니 빠른 걸음으로 먼저 집에 도착해 외양간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와! 우리 봉우 정말 똑똑하구나.”
뒤따라온 봉호가 땀을 닦으며 칭찬했다.
홍 영감도 웃으며 봉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봉우야, 네가 벌써 길을 다 익혔구나.”
봉워리도 눈치가 빨랐다.
홍 영감이 들로 나가는지, 그냥 마실을 가는지 금세 알아차렸다. 홍 영감이 들로 나갈 때면 봉워리는 뒤따라가 곁에서 기다렸고, 돌아올 때는 호위병처럼 앞장섰다.
홍 영감이 장난삼아 살짝 숨으면 발소리가 달라진 것을 알아채고 금방 돌아서서 “멍! 멍! ” 짖어댄다.
홍 영감과 봉호, 봉우, 봉워리가 함께 들에 나가는 날이면 각자 할 일이 있었다. 홍 영감이 풀을 베고 논을 맬 동안, 봉우는 밭둑 위 골짜기를 찾아다니며 풀과 약초를 마음껏 뜯었다. 봉워리는 개구리와 메뚜기를 쫓아다녔고, 뱀이 나타나면 짖으며 쫓아냈다.
들일이 반복될수록 봉우는 주변 길을 익혔고, 더 먼 산골짜기까지 가 보고 싶어 했다. 나무에 매어 놓은 고삐를 힘껏 끌다가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는 일도 있었다.
일에 열중하던 홍 영감이 문득 봉우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니, 봉우가 고삐를 끌고 사라진 뒤였다. 놀란 홍 영감이 크게 불렀다.
“봉우야! 봉우야! ”
부르는 소리를 듣자마자 봉우는 번개처럼 달려와 홍 영감의 손에 얼굴을 비볐다. 그제야 홍 영감은 안심하고 다시 일을 계속했다.
‘봉우는 참 영리해.’
봉워리는 홍 영감과 봉우를 번갈아 지키며 개구리와 메뚜기를 쫓아다녔다. 홍 영감이 꼴지게를 등에 지고 나서면, 봉우와 봉호는 달리기 시합을 하듯 뒤따랐다. 봉우가 앞장서서 빠르게 걷고, 봉워리는 홍 영감 뒤를 졸졸 뒤따랐다.
삼 년째 되던 가을 어느 날, 홍 영감은 봉호를 데리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벼를 베고 있었다. 해가 기울자 봉워리와 봉우가 집에 갈 채비를 하라는 듯 신호를 보냈다.
“멍! 멍! ”
봉워리가 가볍게 짖었다.
“음메! 음메! ”
봉우도 어서 집에 가자고 보챈다.
“그래, 가자. 너무 늦었구나.”
산골짜기에 있는 논밭은 동네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해가 떨어지자 어둠이 빠르게 몰려왔다.
홍 영감이 서둘러 골짜기를 벗어나려는 순간, 봉우가 갑자기 네 발에 힘을 주고 버티더니 산 위쪽을 노려보았다. 어둠 속에서 자동차 전조등 같은 두 눈이 번쩍였다. 호랑이였다.
봉우는 홍 영감의 손에 목을 비비며 고삐를 풀어달라는 듯 몸을 움직였다. 홍 영감은 벌벌 떨리는 손으로 고삐를 풀어주었다. 그러자 봉우는 비호처럼 산 위로 뛰어올랐다.
봉호와 봉워리는 홍 영감 품에 머리를 묻고 숨을 죽인 채 떨고 있었다. 산 위에서는 엎치락뒤치락하는 소리와 거친 숨소리가 이어졌다. 어둠 속에서 번쩍이던 호랑이의 눈빛도 이리저리 흔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몇 시간처럼 느껴지는 초조한 시간이 흐른 뒤, 갑자기 “쿵” 하는 소리가 골짜기에 울렸다. 그와 함께 번쩍이던 눈빛도 사라졌다.
잠시 뒤 침침한 어둠 속에서 봉우가 터덜터덜 걸어 내려왔다.
“봉우다! ”
홍 영감의 외침에 봉호와 봉워리는 겨우 고개를 들었다. 너무 무서워 꼼짝 안 했더니 팔다리가 굳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홍 영감은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나 봉우에게 다가갔다.
“봉우야, 착한 우리 봉우야. 어디서 그런 용기와 힘이 솟았냐? ”
홍 영감은 봉우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봉우의 뿔과 머리에는 끈적끈적한 호랑이 피가 범벅이 되어 있었다. 홍 영감은 얼른 윗도리를 벗어 봉우의 얼굴과 뿔에 묻은 피를 닦아주었다. 그러고는 대견함과 고마움에 목이 메었다.
“봉우야, 우리 식구를 살리려고 그 무서운 호랑이와 목숨 걸고 싸웠구나. 정말 장하다. 고맙다. 이제 집에 가서 쉬자.”
봉우의 온몸은 물에서 건져낸 듯 땀에 젖어 있었다. 홍 영감과 봉호, 봉워리도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홍 영감은 제일 먼저 봉우에게 먹일 쇠죽을 쑤었다.
“봉우야, 천천히 먹어라. 쉬엄쉬엄 먹고 기운 차리거라. 참으로 장하다.”
홍 영감의 식구도 그때서야 밥을 먹었다.
홍 영감은 찬물로 봉우의 얼굴과 뿔에 묻은 피를 닦고, 미지근한 물에 적신 수건으로 몸과 다리까지 정성껏 닦아주었다. 그리고 그날 밤 홍 영감은 외양간 앞마당에서 밤새워 봉우를 지켰다.
다음 날 이른 아침, 홍 영감은 동네 사람 몇 명과 함께 산 위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배가 찢긴 호랑이가 피를 흠뻑 흘린 채 죽어 있었다.
“와, 봉우의 뿔이 대단하구나. 옛날 같으면 투우 경기에서 챔피언이 되었을 텐데….”
홍 영감은 봉우가 영웅처럼 자랑스럽고 대견했다. 그는 동네 사람들과 함께 호랑이를 산비탈에 묻어주고 술을 올려 제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