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사진가의 렌즈로 포착한 절집의 미학
곱게 늙지 못하는 사찰을 바라보는 안타까움의 기록
사진가 심인보의 『곱게 늙은 절집』은 이 조용한 역설에서 출발한다. 기업 CI 분야 아트디렉터로 오랫동안 이미지와 상징을 다뤄온 그는, 난치병을 얻은 뒤 무작정 찾아든 개암사에서 잘 늙은 절이 주는 푸근함에 눈을 떴다. 그 경험이 전국의 숨은 사찰을 10여 년간 발품 팔아 찾아다니게 했고,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는 디자이너에서 사진가로, 시선은 더욱 깊어졌다. 렌즈를 통해 세상을 읽어온 그의 눈은 보통 사람이 그냥 지나치는 것들에서 멈춘다. 개심사 심검당의 휘고 굽은 기둥, 화엄사 구층암의 모과나무 통째로 서까래가 된 기둥, 선암사의 묵은 욕심을 씻어 내는 공기. 찰나를 포착하는 사진가의 감각으로 절집의 가장 깊은 표정을 건져낸다.
저자는 단지 절집의 풍경을 설명하지 않는다. 각 공간을 현실과 충돌시키며 낯설고 예리한 각도로 우리 삶을 읽어낸다. 불사라는 이름으로 콘크리트가 들어서고 날 선 새것들이 고풍을 밀어내는 현실이 왜 우리의 쉼을 빼앗는지, 스님들에게서 직접 들은 전설과 유래가 절집의 공간과 맞닿으며 예상치 못한 깊이로 전개된다. 추사의 편액, 이규보와 안도현의 시구가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문화적 층위도 이 책만의 결이다.
이번 개정증보판에 이르러 저자는 다시 그 절집들을 찾아갔다. 20년의 세월은 그의 심미안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고, 구판에서 미처 담지 못했던 절집의 세밀한 표정과 변화된 풍경을 사진가 특유의 섬세한 미장센으로 다시 담아냈다. 어떤 절은 여전히 곱게 늙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어떤 절은 세월의 상처를 입고 있었다. 글과 사진이 완벽한 앙상블을 이루는, 20년의 변화까지 온전히 담아낸 완결판이다.
『곱게 늙은 절집』은 쉼을 장소가 아닌 존재의 감각으로 재정의한 책이다. 잘 늙은 절집 앞에 서는 경험은 기계가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인공지능이 유창한 문장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시대일수록,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다. 바로 곱게 늙은 것들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몸으로 느끼는 위안이다. 이 책을 읽는 시간은 묵은 근심을 비워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가장 조용한 쉼의 순간이 될 것이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 그 절집들은 곱게 늙었을까?”
30년 전, 한 남자가 난치병 진단을 받았다. 병원을 나온 그는 아무 계획도 없이 차를 몰았고, 어느 산길 끝에서 낡고 오래된 절집 하나와 마주쳤다. 무너져도 무너진 채로, 휘어도 휜 채로 수백 년을 버텨온 곳. 그 앞에 서자 묘하게도 두려움이 사라졌다. 잘 늙은 절이 주는 고요함이 그를 조금씩 살게 했고, 그 경험이 전국의 숨은 사찰을 10여 년간 발품 팔아 찾아다니게 했다. 그렇게 탄생한 책이 『곱게 늙은 절집』이었다.
초판이 나오고 20여 년이 지났다. 그 사이 절집들은 또 조금씩 변했을 것이다. 불사라는 이름으로 새것들이 들어서고, 편리함을 따라 대체된 시설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개정증보판이 더 반갑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고요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절집들의 기록이, 속세의 때가 덜 묻은 채 남아 있는 풍경들이 책 안에 다시 담겼기 때문이다.
불편함이라는 미학을 그대로 가진 쉼의 공간
새것이 밀려든 자리에도, 곱게 늙은 것들은 남아 있었다
이 책이 여느 사찰 여행서와 다른 첫 번째 이유는 저자의 눈이다. 심인보는 삼성, 제주도, 청정원의 심벌을 디자인한 기업 CI 분야의 아트디렉터다. 매일 사람의 눈을 사로잡는 이미지와 상징을 만들어온 그의 눈에 포착된 절집은, 대부분의 사람이 그냥 지나치는 것들로 가득하다. 선운사 만세루의 불구의 나무로 지은 집. “사람 눈에는 불구가 있지만 자연의 눈에는 불구가 없다.” 절집의 기둥 하나에서 그런 문장을 건져내는 것은, 단단하게 다져온 심미안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봉정사의 곰삭은 천년 세월, 부석사의 하늘 나는 돌 위에 세운 절, 돌구멍 속 벼랑 끝의 제비 집, 몰래 숨겨 간 욕심마저 비우게 하는 해우소. 책장을 넘기는 것만으로도 가슴에 쉼의 여백이 생겨난다. 거기에 군데군데 얹힌 시구와 그절을 사랑한 문인들의 마음까지, 그저 아름다운 풍경 사진집과는 다른 결을 만들어낸다.
두 번째는 문장이다. 길고 현학적인 설명 대신, 해학이 살아있는 짧고 날렵한 단문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개암사를 소개하며 “너무 가난해서 심심하던 그 절은 어디로 갔는지”라고 쓰는 문장은 설명이 아니라 그 자체로 풍경이다. 20년을 견뎌온 이 문장들은 절집처럼 곱게 늙었다.
세 번째는 발견이다. 소개된 25곳의 절집 대부분은 초판 출간 당시 지면으로 처음 소개되는 숨은 산사들이었다. 카메라에 제대로 담긴 것조차 처음인 암자도 여럿이다. 스님들을 붙잡아 묻고 낡은 책을 뒤져가며 모은 전설과 유래까지 담겨 있다. 은해사 중암암의 돌구멍 문 앞에서 “속된 마음이 스르륵 털어진다.”는 저자의 단상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치게 된다.
네 번째는 진심이다. 저자는 절집을 쉼의 공간으로 바라보는 동시에, 불사라는 이름으로 콘크리트가 들어서고 날 선 새것들이 고풍을 밀어내는 현실을 가슴 아파한다. 예찬만이 아니라 안타까움이 함께 담겨 있기에, 이 책은 단순한 여행서가 아니라 우리 것을 지켜야 한다는 조용한 기록이기도 하다.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그 모든 것의 기록
20년의 침묵 끝에 완성된 절집의 언어
이번 개정증보판은 단순한 재출간이 아니다. 20년 동안 변화한 절집들의 현재를 담아 문장을 고쳐 쓰고, 2026년의 새로운 화두를 더했다. 변화된 풍경을 더 깊어진 안목으로 다시 찍고 기록했다. 책장을 넘기는 것만으로 봉정사의 곰삭은 천년 세월 앞에 서고, 미황사의 노을 속에 잠기고, 내소사의 전나무 길이 끝나면 이어지는 단풍나무 길을 걷게 된다. 종교도, 특별한 목적도 필요 없다. 그저 차나 한잔하면 그뿐이라고, 저자는 담담하게 말한다.
잘 늙은 것들에는 설명이 필요 없다. 이 책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