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행복한 어린 시절의 기억과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기록
정릉1동 산10번지에서 오산장갑공장 딸로 태어난 저자는 정릉에서 24년간의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다.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살았던 집과 다리와 개천, 동네 골목길과 길음시장, 지금은 없어진 길음교 사거리의 미도극장, 등굣길이었던 미아리고개의 풍경들은 지금까지도 저자의 꿈속에 나타나 깊고 아련한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정릉천에 거지 소년들이 살고 있었던 기억, 개천가에서 개를 잡아먹는 장면을 보고 나서 중학교 때까지 고기를 못 먹었던 기억, 겨울이 오면 공터에 서커스단 천막이 들어서고, 개천이 얼면 썰매를 타던 기억들은 하나의 풍경이 되어 소환된다. 하지만 그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은 잊어야 하는 기억이 아니라 어린 시절 행복한 추억으로 피어난다.
또한 저자는 대학시절 문화의 감수성을 키우던 대학로와 혜화동, 그리고 문학의 꿈을 심어준 청계천 헌책방거리와 종로서적에 대한 추억뿐만 아니라 서울의 중심인 명동과 을지로, 인사동과 광화문, 이태원과 한남동 등 서울의 골목골목을 기록한다. 모든 지나온 곳이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저자에게 30년 전세살이를 하며 머물렀던 잠실, 풍납동, 방이동, 하남 등 일상의 공간도 소중하게 기억되는 추억의 풍경이다. 담백하지만 농도 깊은 터치로 그려진 수채화는 저자의 감성을 더해준다.
“지나간 것은 아름답다고 한다. 긴 시간이 지나가면 세세한 사건과 스토리는 점차 잊혀지고 배경과 장면과 이미지만 남는다. 결국 지나간 모든 것들은 덧없이 사라지고, 지금 이 순간 남아 있는 것은 내가 살고 있는 땅과 변해버린 건물과 풍경 속에 아스라하고 아련하게 겹쳐지는 희미한 기억과 느낌, 감정 같은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