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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것 | 쫓기는 짐승 | 내 방 | 움직일 기운 | 꿈꿀 | 비밀 | 삭막한 새해 | 흐릿하게 밝아 오는 | 쓰고 싶은 것 | 괜찮을 거야. 괜찮아질 거야 | 안전 수칙 | 침수된 집 | 정지 비행 | 잊히지 않을 밤 | 선명한 모양의 사랑 | 완벽한 둥우리는 없다

작가의 말
인터뷰 클립: 너무 캄캄하지만은 않다는, 믿음을 주고 싶어서
저자 소개
저자 : 윤슬빛 (윤슬)
지붕 없는 미술관 고흥에서 나고 자랐다. 『어린이와 문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동안 쓴 책으로 동화 『오늘의 햇살』 『갈림길』(제64회 한국출판문화상 올해의 어린이·청소년책 수상) 『우리는 매일 안녕 안녕』 『우리는 여름』 『다음 공을 던질 차례』, 소설집 『플랜B의 은유』 등이 있다. 202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어 어린이들을 위한 첫 시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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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망가뜨리는 게 아니다. 바로잡는 것뿐이다.”

제64회 한국출판문화상 올해의 어린이ㆍ청소년책 수상
『갈림길』『플랜B의 은유』 윤슬빛 작가의 첫 장편 청소년소설!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어디에서 무엇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윤슬빛 작가의 작품을 읽다 보면 그 출발선이 궁금해지곤 한다. 매 작품마다 섬세한 감정선으로 인물과 이야기를 그려내는 그만의 고유한 세계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관해 말이다. 『어떤 결심』의 출발은 약 3년 전쯤의 일이다. 주하라는 인물은 어느 날 불쑥 작가에게 말을 걸어온 아이였다. 우연히 ‘강주하’라는 이름과 마지막 문장이 떠올랐는데, 이미 완성된 마지막 문장을 향해 달려가는 경험은 작가에게 처음이었다. 그래서 당시 초고의 제목 또한 『주하 이야기』였고 두 번째 제목은 『둥우리』였다. 주하가 둥우리를 통해 희망과 회복의 가능성을 찾아간 시간이 차곡히 쌓여 2026년 6월, 작품은 『어떤 결심』이라는 제목으로 독자들에게 선보이게 된다.

이야기는 어느 날 불현듯 찾아온 비극으로 인해 한겨울처럼 웅크린 채 살아가는 한 소녀의 내면을 고요히 따라간다. 주인공 ‘주하’가 왜 이리 불안에 휩싸여 있는지, 독자들은 그 사건의 실체를 곧장 만날 수는 없다. 홀로 견디는 고통이 깊었기에 작품에 종종 등장하는 ‘비밀’이라는 단어가 유일한 단서일 뿐이다.

주하는 숨쉬기도 버거운 공간을 벗어나기 위해 겨울 방학을 맞아 큰엄마의 집에 머물기로 한다. 그곳에서 지역 청소년 잡지 『둥우리』를 만드는 또래 친구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일상성을 회복하는 듯 보이지만 떨쳐 낼 수 없는 상처의 기억은 주하를 시시각각 흩뜨려 놓기 일쑤다.

하지만 무너지고, 또 무너지던 주하가 끝내 함몰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마음의 힘’이다. 불안하고 괴로운 마음이 힘들게 하는 한편 다시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 또한 주하를 놓지 않고 있던 까닭이다. 『둥우리』의 자유 글을 청탁받고 ‘정말 쓰고 싶은 글’을 써도 될지 주저하던 주하는 비밀의 무게에 더는 짓눌리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품기 시작한다.

“세상을 바꾸는 건 작은 우연들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우연이 이끈 자리에 ‘내 자리’가 있었다.”

『갈림길』 『플랜B의 은유』 『우리는 여름』『다음 공을 던질 차례』 등을 거쳐 이번 『어떤 결심』에 이르기까지, 윤슬빛 작가의 작품에는 연대감을 구축하는 새로운 관계가 등장한다. 꼭 혈연이 아니어도, (어쩌면 혈연이 아니기에) 서로 더 잘 이해하며 또 다른 공동체가 되어 가는 사람들. 그 까닭인지 작품 세계의 주요한 정서가 혼자이면서도(고독감, 외로움) 결코 혼자가 아닌(소속감, 안정감) 포근함이 느껴진다.

『어떤 결심』에서도 그 관계성이 돈독하게 형성되어 간다. 큰엄마와 사촌 동생 노아의 건강한 환대와 지역 청소년 잡지 『둥우리』 친구들 덕분에 주하는 새가 알을 품고 몸을 의지하는 둥우리처럼 안전한 존재감을 느끼게 된다. 또한, 세상을 향한 혐오만이 가득했던 주하가 태오에게 ‘설렘과 호감’을 느끼는 동시에 두려움을 품을 수밖에 없는 장면들은 감정의 결이 무척 투명하고 세밀하다. 제한된 활동 반경으로 인해 고립된 관계에 머무는 청소년들에게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서로가 서로에게 안전기지가 되어 줄 수 있다는 믿음”을 주고픈 작가의 진실함이 한없이 뭉클하게 다가오는 대목이다.

주하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는 건 부정적인 의미만이 아니었다.”고 말하면서 완벽하지 않더라도, 자기만의 둥우리를 찾아나서기로 한다. 삶이란 언제나 알 수 없고 “뜻밖의 불행과 뜻밖의 행운”이 계속되지만 “어떤 선택은 원하는 삶 가까이로 우리를 이끌어 줄지” 모르는 일. 그러니 계속 살아가 주기를, 포근하고 반짝이는 찰나를 놓치지 않기를. 윤슬빛 작가는 세밀한 감정의 증폭을 밀도 높게 그리면서도 지루할 틈 없는 몰입을 이끌며 또 한 번 문학적 성취를 이루어 낸다. “세상 모든 주하들”에게 이토록 작고 큰 용기가 힘껏 가닿을 수 있기를.

작가의 말

이 이야기는 주하의 이야기지만, 주하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스스로를 위해,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연결된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어 주신 많은 분들께 빚진 이야기거든요. 내 삶의 주인이 ‘나’라는 것을 알고 있는 세상 모든 주하들에게 응원과 연대의 마음을 보냅니다.



책 속으로

이야기 안에서 나는 언제나 안전하게 헤맬 수 있었다. 허구 안에서 비로소 자유로웠다. 그런데 지금은…… 모르겠다. 읽는 것도 쓰는 것도 할 수 없다. 다 잃어버린 듯하다. 나 자신마저도. 끝이 뾰족한 연필로 모든 종이를 쫙쫙 그어 버리거나 다 찢어 버리고 싶었다.
--- pp.7-8

정말 곧 방학이다. 학원 특강을 듣는다고 해도 학교에 있는 시간만큼 길게 있을 순 없다. 중학교나 고등학교나 일정은 비슷하니 오빠네 학교도 곧 방학을 하겠지. 직장엔 방학이 없으니 엄마 아빠는 일을 나갈 것이다. 빈집, 오빠. 두 단어를 이어 붙이자 숨이 턱 막혔다. 열띤 얼굴로 얘기하는 민서랑 지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나는 충동적으로 말을 뱉었다.
“나 학원 못 나가. 방학 때 큰엄마 집에 내려가 있기로 했어.”
--- pp.20-21

“당분간 이 방 쓰면 돼. 네 방이야. 편하게 있어.”
큰엄마는 노아 방 옆에 있는 방문을 열어 주었다. 나는 주춤거리며 거실을 가로질러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섰다. 내 방. 아무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내 방. 허락 없이 들어오지 말라고 문을 쾅 닫던 오빠가 떠올랐다. 멋대로 방을 차지하던 날도 오빠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방문을 닫았다. 스스로를 보호하려던 것인지 격리하려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오빠, 알아? 그 방도 내 방이었어. 되받아치지 못한 말이 지금에야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 pp.36-37

태오는 아주 느리게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유도나 씨름이 적성일 것 같은 애가 피아노로 그렇게 섬세하고 감미로운 소리를 내다니. 아, 그 음악이 뭐였더라. 감탄과 고민을 동시에 하는 순간 볕뉘가 비쳤다. 빛이 반짝이며 부서지는 짧은 찰나에 그 음악이 뭐였는지 또렷이 떠올랐다. 엄마가 좋아하는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 OST였다. Playing love.
“누구야?”
나직한 목소리가 깊은 저음처럼 묵직하게 울렸다.
“어떤 사랑은 그냥 성큼성큼 와. 그럼 알아차릴 수밖에 없지.”
언젠가 얘기했던, 사랑 예찬론자 민서의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하게 울렸다.
--- pp.60-61

“들이대 봐! 더 친해질지 멀어질지 어떻게 아냐? 사귀면, 세상에, 장거리 연애!”
민서랑 자분자분 얘기를 나누다 보니 가랑가랑 고이던 것들이 잠잠히 휘발됐다. 걔를 알고 싶지만 걔가 나에 대해 알게 되길 원하진 않는다. 한 걸음 가까워지면 아마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겠지. 멀리. 힘껏. 그래도, 처음 느껴 본 떨림마저 없던 일로 하고 싶진 않았다. 설렘이라는 생경한 무늬가 잠시나마 새겨졌다는 걸 확인받고 싶었다.
--- pp.69-70

내 상태를 곰곰 진단해 봤다. 웃고, 떠들고, 놀러 다니고, 놀러 갈 계획에 동참하고. 평범했다.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거북하고, 괴로웠다. 걱정이 수그러들지 않았다. 눈에 띄지 않는 생채기가 몸 여기저기에 난 것마냥 서걱거리는 감각을 매 순간 느끼고 있는 걸 보면 편하지 않은 게 틀림없었다.
--- pp.86-87

돌이킬 수 없는 참혹한 일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내가 이해를 하든 말든 시간은 흘러갔다. 그렇다면 중요한 건 이해가 아니라 거대한 물음표를 안고 어떻게 살아갈지, 가 아닐까. 괄호는 괄호로, 구멍은 구멍으로 두듯 물음표 역시 물음표 그대로 둔 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싸늘한 된바람을 맞으며 나는 선택과 결정에 대해 생각했다.
--- p.111

삶은 불가해한 것.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말이 이제야 이해가 갔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는 건 부정적인 의미만이 아니었다. 우리의 삶이 예측할 수 없는 일들로 꾸려진다는 걸 뜻했다. 뜻밖의 불행과 뜻밖의 행운. 어떤 것이 내 안에 더 깊숙이 스며들지는 알 수 없었다.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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