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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 경춘서점
거름의 말|붉은 대보름|선거|달팽이 집|동안거|동산면으로 가다|경춘서점|홍수|겨울, 하얀 껍질|나의 라임오렌지나무|감나무 집|말복|순대|사막의 길|파자마|루드베키아|잡초 뽑는 여자

2부. 낙엽을 쫓다가
사이에|경춘선을 타고|젊은 부부|봄 가뭄|엇박자 친구|달의 자투리|폭설|솥|낙엽을 쫓다가|소녀|말랑카우|독방에서 쓴 편지|느린 힘의 터널|탑 아래|불경 소리|노 보살들|참새들은 축제|아무것도 아니었다

3부. 냉장고 탑
꽃비|집|바다는 셀로판지|춘천사람|이륙과 착륙|냉동인간|첫사랑|분홍 제라늄|산불|냉장고 탑|수박|버리데기들|아수라|감자밭|보일러 연통|동굴|다반사

4부. 나는 보름달
복사꽃 벽화|이른 봄|어제는|떠나가는 눈발처럼|가을을 줍다|섬|우산이 비를 막는다|보리수 열매처럼|알프스의 노래|겨울 의식|밤|세탁기 흘림체|농사법|돌아가기 위한 길|부재중|날으는 물고기|나는 대보름|북한강|시時의 숙명

해설_ 사라지는 것들의 문법과 남겨지는 말 ? 전윤호
저자 소개
저자 : 석정미
시인 석정미는 경북 영주에서 태어났으며 안동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중퇴했다. 2012년 계간지 『시선』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슬픔은 많이 넣으면 맵다』, 『대광여인숙』, 『강촌, 깡촌』이 있다. 2023년 춘천문학상을 수상했다. 수향시 낭송회, 강원 문인협회, 춘천 문인협회, 강원 여성문학회, 춘천 여성문학회, 삼악시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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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사라지는 것들 속에서 인간의 온기를 기록하다
― 석정미 시집 『경춘서점』

사라지는 시대, 남겨진 말들을 줍다
자본과 속도의 시대에 던지는 무덤덤한 위로와 버팀의 미학

춘천에서 활동하고 있는 석정미 시인의 네 번째 시집 『경춘서점』이 달아실기획시집 51번으로 나왔다.

『경춘서점』은 시인이 오랫동안 천착해온 삶의 현장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욱 깊고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 작품집이다. 오래된 서점, 마을 골목, 시장, 들녘, 절집, 강변과 같은 일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사라져가는 풍경과 기억, 그리고 그 속에 남아 있는 인간의 온기를 섬세하게 길어 올린다.

이번 시집은 「경춘서점」, 「홍수」, 「거름의 말」, 「낙엽을 쫓다가」, 「냉장고 탑」, 「나는 대보름」 등 총 4부 60여 편의 시를 수록하고 있다. 표제작 「경춘서점」은 오래된 서점에 켜켜이 쌓인 시간과 기억을 통해 사라져가는 것들의 가치와 존재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또한 「냉장고 탑」에서는 노모를 향한 자식의 사랑을, 「홍수」에서는 지역 서점과 사람들의 삶을 통해 공동체의 기억을 따뜻하게 복원한다.

시인은 이번 시집의 ‘시인의 말’에서 “순간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시를 씁니다.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나아가겠습니다”라고 밝히며, 시를 향한 자신의 진솔한 태도를 전했다.

해설을 맡은 전윤호 시인은 “석정미의 시는 삶이 가장 오래 머물고 가장 쉽게 사라지지 않는 낮은 자리를 오래 바라본다”며 “사라진 자리에서 끝내 남는 것들을 기록하는 시”라고 평가했다.

모든 것이 초고속으로 흐르는 세상이다. 손가락 끝의 가벼운 터치 한 번으로 관계가 맺어지고, 채 읽히기도 전에 새로운 정보의 홍수 속으로 휩쓸려 내려가는 디지털 디스토피아 안에서 인간의 영혼은 정처 없이 마모된다. 효율과 생산성의 잣대로만 평가받는 이 차가운 현대 사회에서, 자본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존재들은 너무도 쉽게 ‘무가치한 것’으로 분류되어 중심부 밖으로 밀려난다. 불안과 소외가 일상이 된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빠른 내비게이션이 아니라 잠시 멈춰 서서 내면의 허기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시인 석정미는 바로 그 자본과 디지털의 궤도 바깥, 가장 낮고 외진 곳으로 걸어 들어가 우리 시대의 지독한 결핍을 응시한다. 그가 도달한 세계는 화려한 상징이나 거대한 구호가 존재하지 않는, 눅눅하고 낡은 삶의 현장이다. 시인은 몇 주째 이력서를 쓰며 공수표가 된 개인정보동의서를 휴지통에 버리는 청춘의 막다른 골목 끝에서, 기어이 순대국밥집의 온기를 찾아낸다. “동물의 질긴 길/ 바닥을 통과하면/ 다시 세상으로 뛰쳐나가/ 야생을 누비는 나의 긴 슬픔이여”(「순대」)라는 고백은, 현대인이 겪는 생존의 비장함과 처연함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자의 육성이다.

이 시집의 표제작이자 중심 공간인 ‘경춘서점’은 단순히 책을 파는 가게가 아니다. 그것은 소멸해가는 아날로그적 가치들의 마지막 퇴적층이다. 서점을 지키는 여인은 점점 여위어가고 병실에는 장마가 찾아오며, 서점 바닥은 진흙으로 뭉개지는 홍수를 맞이한다. 그러나 시인은 그 파괴의 현장에서 절망을 노래하는 대신, 침수된 공간을 뚫고 솟아오르는 언어의 생명력을 예감한다. “책들이 살아서/ 창문을 열었으면 좋겠다/ 둥둥 떠다니는 말들을 주우러/ 아이들이 모여들었으면 좋겠다”(「홍수」)라는 간절한 염원은, 모든 것이 사라지는 시대 속에서도 완전히 가라앉지 않는 문학과 인간성에 대한 엄숙한 신뢰다.

『경춘서점』은 화려한 수사보다 삶의 결을 따라가는 언어로 오늘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과 위로를 전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잊혀가는 사람과 장소, 기억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이번 시집은 지역문학의 새로운 성취이자 한국 서정시의 따뜻한 현재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 시인의 말

오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올해 봄에도
파밭이 울창합니다.
푸른 대공 위로 하얀 꽃망울이 터집니다.
가슴 벅차오릅니다.
순간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시時를 씁니다.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나아가겠습니다.

2026년 여름
석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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