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책 속에서
문학 너머의 문학을 꿈꾸며
1.
돌이켜 보면 ‘문학’이라는 이름을 걸치며 행한 ‘담론’에서 지금까지 모든 ‘문학 구성원’들이 암묵적으로 합의하거나 찬성했던 명제는 없었던 것 같다. 이 말은 ‘문학’의 지향이나 목적보다는, 현실에 놓여 있는 문학의 단면을 살피며 그 빛깔이 주는 어떤 징후나 조짐을 끄집어내려는 이야기 자체에 의미를 두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리고 이런 정황들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문학’은 늘 생성하고 변형되면서 산출되는 개개 텍스트의 바탕을 딛고 선 개념으로, 시대와 사회의 변모와 함께 그 경계와 외연을 신축성 있게 어루만져 왔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문학이 당대 사회의 흐름에 비추어 어떤 각도와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지, 그리고 문학의 존립 양태가 어떠해야 할 것인지 논의하면서 공통적으로 현실과 작품의 내밀한 관계 양상에서 빚어지는 긴장과 상징적 충돌에 늘 주목해 왔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문학은 시대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 그리고 문학은 언제나 현실과 인간의 이야기에 밀착하고, 어쩌면 가장 오랫동안 인간과 함께 해왔으며 앞으로도 줄곧 떨어지지 않고 인간과 밀접한 문화로 남을 것만 같다. 문학이 인간이 만든 다른 문화와 갈라지는 점은 ‘비판성’에 있다. 문학 행위의 담당 주체인 작가 스스로도 창작을 통해 비판의 대상으로 만들 수 있다. 인간의 탐욕과 자기부정 등과 같은 온갖 모순들이 텍스트에서 형상화되고, 이러한 문학적 형상화로써 인간 사회의 풍경을 그린다. 문학은 결국 인간 문제에 대한 미적 탐구인 셈이다.
최근 ‘포스트 휴먼’이란 말로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고 진단하는 분위기를 보게 된다. 포스트 휴먼은 인간중심주의의 극복을 내재한 말이다. “인간중심주의가 인간을 중심으로 생명의 회로를 탐색한 주체의 윤리학이라면, 탈인간중심주의는 인간을 수많은 타자와의 상호작용의 산물로 해석하는 겸손의 윤리학” 이라는 논자의 말에 수긍한다면, 포스트 휴먼이 지향하는 지점에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들의 목소리를 흘려보내지 않아야 하고, 이러한 자기 낮춤의 태도에서 세계를 새롭게 받아들이는 양상으로 나아가야 하겠다는 마음을 이끌어낸다. 가장 ‘인간적인’ 문화라 할 수 있는 문학이, 이러한 포스트 휴먼 시대를 맞아 어떤 변모의 방향으로 갈피를 잡아야 하는가. 이 문제는 사실 몇 마디 말로써 명쾌하게 진단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사실임을 인정한다. 진화의 최종점이자, 가장 고도의 지능과 기술적 도구를 활용해 유래가 없는 인간사회의 발전을 이룩하는데 주체가 된 인간이 지금보다 더욱 확장된 능력을 갖춘 존재로서 거듭난 현재 시점에서 지양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이 되었을 때 문학은 어떤 좌표로써 설정하고 가다듬어야 하는가. 단순히 변모된 사회의 소재들을 작품에 담는다고 해서 이 새로운 시대의 환경을 반영하는 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문학을 바라보는 관점과 시각을 바꾸어야 하는가. 이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우리는 문학은 인간에게 무엇인가, 하는 문제로 되돌아가야 한다.
2.
지금 우리가 ‘문학’이라고 하는 예술 장르가 분화되어 개념이 굳어진 역사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근대가 시작되면서 소설 장르가 생겨났으며, 그보다 더욱 오래전부터 시가 양식이 널리 쓰였다. 언어의 실용적인 기능을 비틀고 어그러뜨리면서 ‘창조’한 말의 새롭고도 혁신적인 전달 양식이 된 문학작품은 결국 인간존재의 다양하고도 복잡한 양상을 전달하는 데 쓰인 요긴한 매체이자 기록물로 남았다. 창작의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작품은 인간의 온갖 속성을 드러내기에 충분하고, 작가와 독자를 비롯한 모든 문학 구성원은 문학의 비판 기능을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문학은 어쩌면 ‘휴머니즘’이라는 거대하고 오래된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지 모른다.
인간주의는 인간중심주의로 손쉽게 탈바꿈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과 다른 존재 사이에 경계가 만들어진다. 사실 인간과 자연, 문명과 비문명, 이성과 감성 등과 같은 이분법적 논의는 실체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논법 자체가 이미 사후 개념화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캐묻는 과정에서 되돌아보아야 할 점은, 인간중심주의 혹은 인간주의가 만들어 낸 폐해가 어떤 메커니즘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여기에서 생겨나는 파괴와 폭력적인 존재 상태의 실체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다시 말해 디지털 혁명에 기반하여 물리적 공간, 디지털적 공간 및 생물학적 공간의 경계가 희석되는 기술 융합의 시대, 그리고 메타버스(metaverse)나 AI로 흔히 지칭하는, 가상현실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사회경제적 활동이 이루어지는 온라인 공간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단기간에 걸친 이러한 삶의 변화는 사람들에게 기술 발전이 가져다 주는 신세계의 체험과 함께, 이 세계가 군무처럼 펼치는 주체-대상 사이의 경계 허묾과 차원 이동에 따른 시공간의 공존화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물론 제반 기술을 비롯한 인공지능의 놀랄만한 발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인간’이 세상의 중심에서 사회를 이루며 좀 더 편리하고 자유로운 세계를 앞당기기 위해 힘써왔던 누천년 시간의 흐름에서 본다면 불과 몇십 년도 안 된 사이 눈 깜짝할 새 벌어진 이같은 변모와 문학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문학은 인간과 세계가 주고받는 대화다. 문학은 세계를 반영하면서 때로는 고발과 폭로로 이루어져 왔으며, 더러 이데올로기 전파의 수단이 되거나 이용되어 오히려 인간의 정신에 편향적인, 혹은 편견을 심어주는 첨병 노릇을 하기도 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말은 ‘문학’은 다른 정신문화나 예술과 마찬가지로 한없이 ‘약한 고리’로서 사람들에게 약과 동시에 독이 되어왔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포스트 휴먼’이나 ‘포스트 휴머니즘’은 지난날 인간중심의 근대적 기획을 모조리 갈아엎으려 등장한 새로운 시대정신은 아니다. 따라서 새로운 문학 또한 시대에 발맞춰 쇄신해야 한다는 원칙에 순응해 글쓰기에 대한 작가의 자유를 강제하는 원리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작가 정신’이라는 말이 있다. 지금도 널리 쓰이는 말이다. 작가 정신은 문학을 살찌우고, 문학을 통해 인류의 거대한 숙원 - 자유와 해방과 같은 - 을 꿈꾸며 현실을 조망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텍스트의 잠재된 콘텐츠이다. 작가가 현실을 바라보고 인식하고, 그럼으로써 창작으로 형상화된 세계를 창조하는 데 가장 큰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게 기억과 체험이다. 이 기억과 체험은 당대의 시대상과 물질적인 토대, 그리고 사회 분위기나 정치적 흐름과 밀접하다. 보통의 사람이 그렇겠지만 특히 작가는 당대를 살아가면서 받아들이는 감각적 수용성受容性을 쉽게 지나쳐 버리지 않고, 기억에 저장해 둔다. 창작으로 형상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원래 작가는 민감한 감수성을 지닌 자이기 때문이다. 작가 정신에 영향을 주는 여러 요소들 가운데 어쩌면 정치적 상황이나 사회변화에 따르는 풍속의 변모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한국문학에서 10년 단위로 문학적 마디를 끊거나 징검다리 삼아 흐름을 진단하곤 한다. 2000년대 접어들면서 대두된 젠더, 소수자, 사회적 약자를 비롯한 타자에 대한 관심은 최근 들어 더욱 첨예한 양상으로 작품에 형상화되곤 한다. 타자를 향한 관심이 높아진 이유가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어느 정도 풍요로운 물질적, 제도적 기반을 바탕으로 정신적인 여유가 생겨서인 것만은 아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든지 사회적 약자는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들 타자의 목소리는 인터넷과 첨단기술의 발달로, 그동안 전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숨어 있었던 사람들과 이야기들이 다양한 매체를 매개 삼아 수면 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라는 전세계적인 인터넷 관계망은 개인의 내밀한 취향뿐만 아니라 일국적인 거대 서사까지도 ‘민주적인 방식’으로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마당을 제공했다. 온라인전산망을 통해 24시간 교류하며 감응하는 세계의 발화들은 이제 한 개인이나 특정한 집단만이 누리거나 공유할 수 있었던, 고급 정보와 지식이 인터넷 사용자들에게 공평하게 ‘인계’된 것이다.
문학은 이런 상황에서 ‘위기’는커녕 어쩌면 창의적이고 새로운 지점에 다다랐다는 인식을 주게 한다. 삶의 방식과 태도의 변모는 그 물적 토대인 생산력과 기술의 변모에 힘입고 영향을 받는다. 문화가 오랜 세월에 걸쳐 전승되고 교류하면서 정착되듯, 사회 메커니즘 또한 시간과 공간의 축적과 스밈에 영향을 받지만 때때로 순식간에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루기도 한다. 여기에서 기존의 관념이나 이데올로기는 흔들리게 된다. 우리는 휴먼이나 인간애와 같은 말들이 자명한 듯 영원한 정신적 상수(常數)처럼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인간주의’라 했을 때의 마음 밑바닥에 고여 있는 어떤 ‘통념’에 대한 고찰과 반성을 포스트 휴먼 혹은 포스트 휴머니즘은 요구한다. 한편으로, ‘문화혁명’으로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 최근 시대적 흐름은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시공간적 좌표가 무엇인지 따지게 만든다. 체제와 이념에 따른 국제질서나 한 나라의 정치질서는 사회변동과 관련하여 작가를 포함한 지식인들과 시민들의 반발과 협력, 혹은 급진적인 변혁을 통해 균열을 겪으면서도 한편으로 공고해지는 과정을 겪는다. 인간이 이룩한 모든 체계나 제도 및 사상들은 끊임없는 도전과 응전 속에서도 자체 면역 유지를 위한 에너지를 가지게 마련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기존의 틀이나 패러다임으로는 도저히 버티기 힘들 때 자기 변신을 꾀하게 된다. 지금 우리는 기성의 질서와 패러다임으로서는 지탱할 수 없는 역사의 지점에 와 있다. 물질문명의 발전은 끝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으며, 인간의 욕망은 마치 바벨탑을 쌓아 올리는 것처럼 한계를 헤아리기 힘들 지경이다. 그러면서도 허기와 기갈을 느끼며 서로가 서로에게, 공동체가 공동체에 허기를 달래 줄 그 무엇을 요구한다.
3.
인간성이 무너진 시대와 사회에서 인간이 처해야만 했던 다양한 현실을 폭로하고 비판했던 문학의 임무는 지금도 유효하다. 문학에 임무가 있다면, 그 첫 번째는 우리 인간에 대한 반성으로 돌려야 한다. 인간에 대한 반성은 결국 세계와 존재에 대한 성찰과 반성으로 귀결된다. 인간주의(인간중심주의)는 인간을 절대적인 존재로 위치시켜 나머지에 속한 존재를 인간보다 하위에 자리매김하는 이데올로기가 결코 아니다. 인간주의는 인간의 재발견이며, 인간이 지닌 능력에 대한 믿음에서 싹텄다. 다만 이러한 사상을 근거로 한 사회적 실천에서 배태된 수많은 배제와 억압의 논리로 손쉽게 호출당할 따름이다. 문학은 인간 역사에서 벌어지는 주객 행위, 다시 말해 주체와 객체, 나와 너, 우리와 너희들, 이것과 저것 등이 벌이는 양상에서 무엇이 값지고 올바른지, 또한 무엇이 세계를 병들게 하고 혼탁하게 하는지 구체적인 말과 행동을 통해서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여기서 휴먼, 즉 ‘인간다움’이란 선험적이거나 고정된 절대적인 명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간다움’은 늘 새롭게 구성되며, 또한 늘 자기반성과 자기부정을 통해 끊임없이 갱신되는 인간 윤리의 의미로까지 확장되는 개념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이미 주어진 존재로서 우리 앞에 놓인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생성하면서 확충하는 역동적이고 살아있는 존재로 바라보아야 하는 실체다. 인간이 저지르는 온갖 만행과 폭력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겠지만, 이런 상황에서 인간 자체에 대한 부정과 자기 모멸을 통한 새로운 존재 정립을 위해 섣불리 태도를 전환하는 모습은 지금 시점에서 낯설게 다가옴을 부정하기 힘들다.
문학은 늘 새롭고 창조적인 세계를 갈구한다. 따라서 문학의 두 번째 임무는 이 세계가 완전하고 진화의 끝 지점에 다다랐다는 믿음을 저버리는 데서 자리한다. 그것은 문학이야말로 현실을 비틀고 깎으면서 행복한 세계의 비전을 제시하려는 정신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현실 세계는 언제나 처참하고 비통하게만 보인다. 문학이 창조하는 세계는 이러한 부정적인 현실 세계를 부정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되 형상화 과정에서 우리가 되찾거나 새롭게 앞당겨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상기하게끔 추동하는 세계로 펼쳐진다. 이 세계는 완전하거나 아름다움의 극치가 펼쳐지는 세계가 아니다. 문학은 유토피아를 말하지만, 결코 유토피아를 문학의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작가는 창작을 통해서, 낮의 세계에서 빠져나온 수많은 ‘나머지들’과 구멍들과 틈새들을 호출하며 대화하는 사람이다. 이들의 목소리는 환한 낮의 세계에서는 빛에 가려 보이지 않거나 숨어 있던 음성들이다. 낮은 음성들에 귀를 기울이는 문학은, 우리가 겸허하게 이 세계를 받아들이는 마음을 그치지 않아야 한다는 구호를 내비친다.
현실은 역동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되묻는다. 지금과 같은 세계는 여태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말을 하는 것처럼 우리는 늘 어리둥절한 채로 이 세계와 마주한다. 중심에 있었던 것처럼 자부심을 지녔던 시간에 비친 그늘들, 이는 인간이 장악했고 완전히 알게 되었다는 자만이 만들어 낸 허상들이었음을 지금에 와서야 인간은 알게 되었다. 이러한 깨달음이 기술 발전과 인공지능과 같은 상상을 초월하는 관계와 영역에 진입해서 시작된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풍요로운 사회는 항상 외부와 경계를 더욱 공고히 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지금이 아니라 앞으로도 언제든지 인간존재에 대한 회의가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생각하는 존재’로서 인간은 바야흐로 ‘인간’ 자체에 대한 궁극적인 물음 앞에 서 있다. 이 시점에서 문학 또한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문학 개념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문학의 존립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문학’의 기능과 의미는 이름을 달리한 다른 그 무엇이 대신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포스트 휴먼 시대의 문학은 어떤 모습으로 탈바꿈해야 하는가.
4.
‘신인류’니 ‘신인간‘이나 하는 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사상가들은, 특히 종교철학자들은 ’영성‘에 대한 강조를 통해 현대 인류가 보완해야 할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해 왔다. 기계적이고 원소론적인 세계 이해가 가져다준 재앙을 극복하기 위한 일종의 방편인 셈이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지금 우리에게 적용해도 하등 이상하지 않을 만큼 필요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새로운‘이나 ’~을 너머‘와 같은 수식어들이 차고 넘치는 사회에서 문학을 넘어 새로운 문학을 꿈꾸는 일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자문한다. 문학 너머의 문학은 과연 가당키나 할까. 아니 상상만이라도 헤아릴 수 있는 말일까. 지금까지 문학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덕목이나 윤리를 귀띔해 왔다. 그리고 이것은 문학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행복한 선물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문학을 만나면서 자신의 삶과 사회 및 세계를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학을 만나면서 완전한 세계와 불완전한 세계가 무엇을 기준으로 완전하고 불완전한지 가늠하기 시작했다. 또한 문학을 만나면서 인간에게 궁극적인 물음인 죽음, 사랑, 행복, 고통 등을 고차원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물론 현실이 끌어들이는 중력이 이미 실존적인 인간 하나 하나에게 이성적이고 분석적인 이해보다도 더욱 구체적인 감각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 것이다.
현실은 그만큼 무시하지 못할 세계다. 이러한 세계 한복판에서 우리는 뒤엉켜 살고 있다. 문학은 지금까지 인간에게 주었던 모든 종류의 위안과 행복을 더 이상 가지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왜 그런지는, 예전에 종이를 쥐었던 손가락이 지금은 무엇을 쥐거나 잡고 있는지 생각하면 금방 해답이 나온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하게 변화된 현실 인식만으로는 문학의 위상변화를 설명하지 못한다. 여기에 문학이 풀어야 할 숙제가 놓인다. 문학은, 그러니까 시나 소설과 같은 ’전통‘ 양식의 문학은 이미 설 자리를 잃었다는 사실을 시인과 작가들은 알아차려야 한다. 설 자리를 잃은 문학이지만, 문학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현상을 생각해 본다. 아직도 문학이 쓸모가 있어서 사람들이 쏠리는 건 결코 아니다. 문학이 전문영역에서 여가로 탈바꿈했다는 사실, 그리고 문학이 특정한 집단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대중사회 밑바닥에까지 내려와서 너도나도 탐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말이다. 문학이 설 자리를 잃었다는 사실은 문학에 대한 모독이 아니라 오히려 ‘문학’에 씌우는 월계관에 지나지 않는다.
붓을 쥔 손힘을 빼야 하는 시대가 왔다. 하지만 힘은 빼되 손놀림은 더욱 커져야 하는 때다. 포스트 휴먼 시대의 문학은 ‘문학’이라는 이름만으로 세계를 점령했던 작가 마음을 짓밟고 우뚝 선 자리에서 마침내 시작한다. 공허한 말처럼 들릴지 몰라도, 이제 작가나 시인이라는 말이 주는 무게는 알게 모르게 증발했고, 증발한 자리에 ‘말하거나 쓰는’ 존재로서 인간만이 들어설 것이다. 이러한 ‘인간’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전지적 존재로서의 작가의 외투를 벗어버린 존재다. 땅바닥에 납짝 엎드려 모든 존재를 우러러보는,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존재이다. 그러므로 문학 너머의 문학은 이 세계를 마치 처음 본 것인 양 설레며, 당황하고, 불안에 떠는 여린 인간이 세계를 향해 내뱉는 모든 옹알이의 ‘낙서’ 모양을 띠지 않을까. 그렇다면 동물이거나 로봇이거나 너이거나 나이거나 돌멩이거나 상관없이 천진난만한 아이 눈과 몸에 부딪치는 모든 것들이 자아내는 소리들-세계의 호흡이라고 하자.-을 마시면서 내뱉는 기록, 이 절대로 떼어놓거나 지우지 못할 흔적들이 아우성치는 문학이 바로 새로운 시대의 ‘문학’이 되기를 소망한다.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