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살아갈수록 알게 됩니다. 감정도 나이를 먹는다는 것을.
젊을 때의 기쁨과 세월이 쌓인 뒤의 기쁨은 같은 이름이지만 다른 무게를 가집니다. 슬픔도, 분노도, 감사도 그러합니다. 처음의 감정이 뜨겁고 날카로운 불꽃이었다면, 살아낸 시간이 쌓인 감정은 오래 끓여낸 차 한 잔처럼 조용히 마음을 데우는 온기가 됩니다.
이 책은 아홉 명의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용기 있게 꺼내 쓴 기록입니다.
투병 중에도 사무실을 지켜야 했던 사람, 아버지의 마지막 부름을 뒤로하고 일터에 남았던 사람, 병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 속에서 아이의 손을 잡았던 사람, 거울 앞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만난 사람, 구멍 난 신발 이야기 앞에서 지금 가진 것들을 다시 바라본 사람.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결국 같은 감정의 언어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화려한 성공 스토리가 아닙니다. 흔들린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흔들림 속에서 뿌리를 내렸습니다. 슬픔 속에서 감사를 발견했고, 분노 안에서 안타까움을 만났으며, 부끄러움 안에서 그리움과 마주했습니다. 후회는 지나간 시간을 벌주는 대신 남은 시간을 다르게 살아가게 했고, 통찰은 나를 알아갈수록 인생이 달라진다는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감정은 약함이 아닙니다.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지금 어딘가에서 흔들리고 있는 당신에게, 이 책은 조용히 말을 건넵니다. 당신의 감정은 틀리지 않았다고. 흔들리는 사람은 부러지지 않는다고. 살아보니 그렇더라고.
책 속에서
어느 날 거울 앞에 섰을 때, 낯선 얼굴 하나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30대와 40대를 오로지 '생존'과 '책임'이라는 이름 아래 쉼 없이 달려온 한 여자의 얼굴이었다. 내 인생의 지도를 다시 그리기로 마음먹은 이 새벽,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감정은 역설적이게도 '감사'였다.
나의 30대는 '병'이라는 불청객과 함께 시작되었다. 난소암. 그 무거운 단어가 내 삶에 던져졌을 때, 사람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일 거라고 위로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을 구경할 사치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내 앞에는 매일 아침 쏟아지는 수백 개의 택배 상자와 처리해야 할 운송장 더미가 산처럼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포천의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며 사무실 문을 열 때면, 나는 내가 암 환자라는 사실 조차 잊곤 했다. 암 환자라는 사실보다 그날 도착한 택배 물량이 더 현실적이었다. 몸은 지쳐 있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가족 기업이라는 이름 아래 누군가는 현장을 지켜야 했고, 나는 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젊음이라는 밑천과 먹고사느라 바빴던 그 무식하리만큼 치열했던 노동의 시간. 그것은 나에게 가장 독한 약이었고, 가장 따뜻한 위로였다. 남들은 기적 같은 회복력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기적이 아니라 생존을 향한 처절한 질주가 선물한 보상이었다.
슬럼프에 빠질 기회조차 주지 않았던 그 분주한 현장 덕분에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일터가 있었다는 것, 그 치열함 속에 내 삶을 의탁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나는 깊은 감사를 보낸다.
돌아보면 그 시간은 나를 소진시키기도 했지만 동시에 무너지지 않게 붙들어준 시간이기도 했다. 살아내야 했기에 살아낼 수 있었고, 버텨야 했기에 결국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