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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부 균열의 발견
수프가 끓는 동안에, 마르그리트 뒤라스
―뒤라스의 파 수프 레시피
태양이 저물지 않는 곳에서, 알베르 카뮈
―태양의 성지를 찾아서
스웨터를 입고, 프랑수아즈 사강
―프랑수아즈 사강의 고독을 입는 기술
나로부터 가장 먼 곳, 장 그르니에
―장 그르니에를 읽는 다섯 가지 시선

2부 해체와 붕괴
적어와 모어 사이, 아고타 크리스토프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적어(敵語) 사전
오디세우스들의 서사, 아니 에르노와 에두아르 루이
―오디세우스의 항해 일지
몸이라는 원문 삶이라는 번역, 다니엘 페나크 85
―다니엘 페나크의 몸 번역 노트
―번역가를 위한 몇 가지 조언
사라지지 않도록, 가엘 파유
―망각에 저항하는 플레이리스트

3부 유예의 순간
어느 소설가의 소설 창작 수업, 밀란 쿤데라
―창작자를 위한 밀란 쿤데라 리딩 가이드
불을 가져가는 여자, 레일라 슬리마니
―내 안의 불씨를 확인하기 위한 체크리스트
실패와 동행하기, 장 뤽 라가르스
―장 뤽 라가르스의 무대
아랍인을 죽인 카뮈에게, 카멜 다우드
―1942년 여름, 오후 2시, 뫼르소의 살인과
무싸의 죽음 이후에 남은 것들

4부 자아의 재구성
보통 이하의 것에 대한 탐구, 조르주 페렉
―내 방 사물들의 이상한 계보학
타자를 품기, 엘렌 식수
―우리의 삶을 재건하는 여성 명사들
거울을 깨기, 카미유 로랑스
―오토픽션 실험실
다만 내가 되기 위해, 바바라 몰리나르
―우리를 찢게 하는 적들
저자 소개
저자 : 신유진
작가이자 번역가. 파리 8대학에서 연극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옮긴 책으로 티아구 호드리게스의 《소프루》, 에르베 기베르의 《연민의 기록》, 베티 본의 《프루스트의 마들렌》, 아니 에르노의 《빈 옷장》 《남자의 자리》 《세월》 《사진의 용도》 《진정한 장소》 등이, 엮고 옮긴 책으로 《생텍쥐페리의 문장들》 등이 있다. 희곡집 《누아》, 산문집 《창문 너머 어렴풋이》 《몽 카페》 《열다섯 번의 낮》 《열다섯 번의 밤》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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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삶이란 무언가를 끊임없이 채워넣고 쌓아 올리는 축적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을 깎아내어 투명해지는 과정이다”

균열·해체와 붕괴·유예·재구성
문학은 나를 설명하는 것을 넘어 삶을 다시 쓰는 힘

1부 ‘균열의 발견’에서는 ‘고독’ ‘부조리’ ‘침묵’ ‘내면의 여백’처럼 한 사람의 세계에 균열을 일으키는 감각들을 살펴본다. 대표적으로 사랑과 관계의 파국을 외면하지 않고 기울어진 세계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가는 뒤라스의 문학 속 여성상과 삶의 끝없는 고통 속에서도 태양 아래 부조리를 정면으로 마주하고자 했던 카뮈의 문학을 들여다본다. 또한 나 자신과 타자를 감쌀 만큼 온기가 가득했던 사강의 포근한 스웨터와, 낯선 곳에서 익명의 존재가 되기 위해 안개가 되기를 선택했던 그르니에의 이미지들을 따라 문학이 익숙한 삶의 표면 아래 감춰진 질문들을 어떻게 드러내는지 보여준다.
2부 ‘해체와 붕괴’에서는 아고타 크리스토프, 아니 에르노와 에두아르 루이, 다니엘 페나크, 가엘 파유를 통해 ‘언어’ ‘계급’ ‘몸’ ‘기억’의 문제를 탐구한다. 크리스토프가 이민자로서 겪은 적어와 모어 사이의 긴장, 어린 시절로부터 비롯된 세계와 현재 세계가 한 사람 안에서 충돌하는 에르노의 세월의 기록, 몸에 새겨진 시간을 촘촘히 새긴 페나크의 일기, 르완다 집단 학살을 잊지 않고자 저항하는 파유의 기억은 우리가 ‘나’라고 믿어온 정체성이 결코 단단한 하나가 아님을 드러낸다. 작가는 자아가 무너지는 순간을 실패가 아니라 자신을 다시 읽기 위한 출발점으로 바라본다.

“자신이 속했던 세계의 말투와 몸짓, 취향이 낯설어지고, 새로 배운 것들은 완전히 그의 것이 되지 않는다. 한 사람의 몸 안에서 두 개의 세계가 서로를 밀어내며 수치심과 혼란을 일으킨다. 아비투스의 충돌이다. 아니 에르노는 이 경험을 사적인 고백에 머물게 하지 않고 사회적·역사적 맥락 안에서 해석한다. 그의 ‘나’는 결코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하나의 삶을 통과한 목소리이면서 동시에 같은 조건을 살아온 익명의 다수와 연결된 존재다.”(78쪽)

3부 ‘유예의 순간’에서는 밀란 쿤데라, 레일라 슬리마니, 장 뤽 라가르스, 카멜 다우드를 지나며 ‘창작’ ‘욕망’ ‘실패’ ‘응답’의 문제를 다룬다. 쿤데라의 소설을 쓰는 일, 슬라마니의 글을 통해 내 안의 불씨를 확인하는 일, 라가르스의 실패와 동행하는 일, 다우드의 이미 쓰인 고전의 침묵에 다시 말을 거는 일은 모두 쉽게 결론에 도착하지 않는 유예의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는 무너진 자아가 흔들림과 질문 속에 머물며 다른 가능성을 준비하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4부 ‘자아의 재구성’에서는 조르주 페렉, 엘렌 식수, 카미유 로랑스, 바바라 몰리나르를 통해 ‘나’라는 거울을 깨고 타자를 품으며 삶을 다시 쓰는 방식으로 자기 자신이 되는 과정을 따라간다. 페렉이 응시하는 보통 이하의 사물들, 식수의 여성 명사들, 로랑스의 오토픽션 실험실, 몰리나르의 악몽과 매혹의 기록은 모두 부서진 자아를 다시 조립하는 방식이 된다. 이 마지막 여정에서 문학은 ‘나’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롭게 구성하는 힘이 된다.

“쿤데라의 무기는 ‘아이러니’이다. 구조가 세운 의미를 끊임없이 흔드는 것. 그의 마지막 작품, 《무의미의 축제》에서 작가는 무의미한 대화, 농담, 상상으로 본질적인 것을 드러낸다. 이를테면, 평소에 거의 인식하지 않는 신체 부위, ‘배꼽’으로 삶의 근원을 묻는다. 철학이나 신화가 아닌 배꼽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작고 우습지만,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근원이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아닌가.”(117쪽)

“그는 승리와 해방의 언어가 아닌, 가장 가까운 이들 앞에서도 실패하는 언어를 선택한다. 하지만 이 실패는 단순히 포기의 선언이나 무력함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어긋난 관계와 선택에 대해 최소한의 책임을 지려는 시도이며, 지나간 시간을 무효로 만들지 않으려는 몸짓에 가깝다. (…) 그의 인물들은 계속해서 실패하며 그저 끝을 유예할 뿐이다. 실패하지만 계속하는 것, 저 멀리 끝이 보이지만 가능한 한 돌아가는 것, 불이 꺼질 테지만 여기 무대에 남아 있는 것, 생을 조금 더 살아보는 것. 이것이 ‘죽음’이라는 결말을 필연적으로 안고 사는 존재들이 할 수 있는 가장 근사한 사랑이 아닐까.”(139쪽)

《나를 균열내기》는 작가들의 문장을 해석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 문장들이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어떻게 다시 살아 움직일 수 있는지 응시한다. 그러므로 이 책이 말하는 ‘균열’은 파괴가 아니라 가능성에 가깝다.
이 책이 끝내 도착하는 곳은 완성된 자아나 선명한 해답이 아니다. 작가는 독자들에게 ‘내가 나라고 믿어온 것들’이 어떤 언어와 기억, 몸의 감각, 계급의 흔적, 수치심과 욕망, 실패와 침묵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들여다보게 한다. 내가 쓰는 말은 어디에서 왔는지, 나를 부끄럽게 만든 감각은 누구의 기준에서 비롯된 것인지, 오래 붙들어 온 기억과 욕망은 지금의 나를 어떻게 살게 하는지 묻는다. 그리고 그중 무엇을 덜어내고 무엇을 붙들며 무엇에 새 이름을 붙일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이때 문학을 읽는 일은 뒤라스의 파 수프 재료들처럼 단순한 이해나 위로를 넘어 자기 삶을 이루는 재료들을 다시 살피는 일이 된다. 《나를 균열내기》는 문학 읽기를 통해 불필요한 것들을 깎아내고 투명해지는 과정을 거쳐 자기 삶을 다시 선택하게 하는 여정으로 독자들을 이끌어줄 것이다.

“몰리나르가 그랬듯이 악몽에서 나를 구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다. 그 꿈속에서 무언가를 길어 올릴 수 있다면, 이미 나는 그 악몽에서 벗어난 것이리라. 그러기 위해서는 공포와 매혹을 온전히 수락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어쩌면 그 이야기는 나를 통과하여, 또 나와 한 몸이 되어 어떤 ‘있음’을 증명하려 하는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되돌아가려는 본성과 싸워 이기는 일이 쓰는 자의 몫이니까. 어째서 이러한 수고가 필요한지를 묻는다면, 몰리나르의 말로 답을 대신하겠다. 다만, 내가 되기 위해.”(199쪽)

추천사

백은선 (시인)
세계는 매끈하지 않다. 사건과 현상은 교묘히 덧대어져 있기도 하고 벌어진 채 공허하게 입 벌리고 있기도 하다. 그 틈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이 작가라 오래전부터 믿어왔다. 이 세계가 만들어낸 틈을 응시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언어 속에는 벌어진 상처처럼 틈새가 있다. 무엇으로도 그것을 다 매울 수는 없겠지만, 그 응시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 문학이라면, 문학 속에서 만나는 것이 미처 알지 못했던 나 자신을 다시 한번 타자로서 겪어내는 일이라면, 문학이라는 거울 속 눈 코 입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오히려 스스로를 떠나는 일이 그것이라면, 존재의 재발견과 존재의 새로운 발명은 어떻게 사람을 파고드는가. 신유진은 알고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걸 세계의 비밀이라 부를 수 있다면, 그는 비밀에 멜로디를 붙이는 사람인 것만 같다.
그렇게 문학의 길고 긴 터널을 지나 다시 나에게로 당도하는 여정. ‘자기되기’를 통해 재탄생을 실천하는 것. 그것이 그가 번역을 통해, 글쓰기를 통해 걷고 있는 경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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