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먼저 유임순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출판을 축하드린다. 그동안 시 창작의 열정을 불씨로 지펴놓고 끊임없이 달려온 필력이 시의 행간마다 살아서 숨을 쉬고 있음을 본다.
유 시인이 『내 마음의 숲』으로 제목을 삼은 것은 숲은 얽히고설킨 개별성에 불화가 있어도 서로 반목하지 않으며, 저마다 개별성은 전체 속에 하나이고, 하나하나가 전체를 이루는 조화, 저마다 제 몫이 무엇인지를 알기에 숲에선 너와 내가 따로 없다는 것을 교육자로 어머니로 신앙인으로 살아오면서 뼛속 깊이 새겨진 사유들을 시어를 통해 얘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숲에서는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 때는 함께 젖고 함께 흔들리기 때문에 언제나 상쾌한 기운이 숲 전체를 지배한다. 숲이 울창하면서도 적막한 까닭은 늙고 병들어서 죽는 것이 아니고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순환의 고리 그 생성의 비밀을 침묵으로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숲은 과거도 미래도 현재 진행형의 부호이고, 가장 늙은 숲이 알고 보면 가장 왕성한 젊음이다.
숲을 보려면 숲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숲 안에서 동화가 될 때 숲에는 살아 있는 것들의 진화의 무늬를 찾아낼 수가 있고 모든 족속이 알아들을 수 있는 공통어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유임순 시인의 『내 마음의 숲』은 전체 속에서 하나이며 하나이면서도 전체를 아우르는 개별성을 가진 존재로서 함께 젖고 함께 흔들렸던 시간들을 믿음으로 그리움으로 또한 아련한 추억으로 표출하고자 하는 열망이 곳곳에서 뜨거운 입김으로 묻어나고 있다.
좋은 시 나쁜 시는 없다. 읽고 나서 감동이 있느냐 아니면 깨달음이 있느냐 차이이다(서울대 교수 오세영 시인)라는 말처럼 감동이나 깨달음은 피부적 언어 감각으로는 구현해 낼 수가 없다. 울면서 빵을 씹어 봐야 가난을 알고 한 번쯤 가슴을 몽땅 잃어 봐야 사랑을 알듯이 직접 체험에서 우러난 시어만이 살아 있는 언어가 된다.
시는 상상력의 소산이라고 해도 연륜이 가져다 준 희로애락의 깊이가 없다면 그저 노랫말에 지나지 않는다.
제1부 유년의 뜰
유년의 뜰의 시들은 희로애락의 정서가 가슴 안에서 한 번 삭혔다가 다시 토해놓은 시어들이 행간에서 살아날 때면 아픔마저 그리움이 되고 아물지 못한 기억마저도 소중한 추억으로 살아나 가슴에 풀물 들듯이 배어든다. 삶의 어눌한 부분까지도 할 말은 다 하는 뼈대 강한 시어들이 그간 시인이 살아온 날들을 조명해 주고 있다.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 물음이 되고 대답이 되는 시어들이 곳곳에서 붉은 맥박으로 뛰고 있다. 유 시인의 시의 텃밭은 불타던 향학열이었고 주를 향한 믿음이었고 부끄럼 없이 살고자 하는 맑은 정서와 고향에 대한 애정들이다. 만남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푸근한 마음으로 다듬어 낸 시어들.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듯이 유 시인의 시어들은 덧칠하지 않고 안으로 삭힌 사유가 그 깊이와 문향을 더해 주고 있다.
스물한 살 내가 대학생이던 그해 봄
일곱 살 많은 심심산골 농부에게
팔려가듯 시집보낸 딸을
아배는 뒤늦게 꼬불꼬불 깊은 산길을 오가며
가슴을 쳤다 했다
그래도 농사채 넉넉하고
시골 인심 후한 마을에서 잘 사나 했더니
어느 해 남편 병고에 시달리다 세상 뜨자
생활 전선에 뛰어든 그녀
다행히 일찍 철든 세 딸은
저마다 제 길을 찾아가고
긍정의 여왕 내 동무는
인성도 인복도 좋아 군의원도 되고
라이온스클럽 회장도 하며
용감한 여성 리더로 자리잡았다.
- 「증평, 그 곳에는」 중에서 -
시는 시인에게 잠재되어 있는 무의식 세계의 한 단면일 수도 있고 사물과 대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요, 새로운 가치의 발견이다. 그래서 시인이 불러주면 꽃 아닌 것이 없다. 또한 시를 쓴다는 것은 그 어떤 것으로도 메꿀 수 없는 결핍의 한 단면일 수도 있다. 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지성이다. 어렵고 힘든 세상 그 불확실성 앞에서 내일을 알 수 없었던 어릴 적 씨동무의 얘기 속에는 시인의 아련한 아픔과 씨동무에 대한 순수한 사랑의 정체성이 청아한 목소리로 울리고 있다.
“긍정의 여왕 내 동무는 인성도 인복도 좋아” “용감한 여성 리더로 자리 잡았다”
열악한 가정 환경을 끝내 이겨내고 남 보라는 듯이 일어선 씨동무 모습 속에서 시인은 동무의 성취감 그 대리만족을 통해 쌓여 있던 그리움을 동질화시키고 있음을 본다.
단순히 대상에 대한 관찰자 입장이 아니라, 끊임없이 해부하고 되씹어 보는 주관자로서의 시어들이 밀도 있게 제 몫을 다 하고 있다.
새하얀 포말로 부서지는 사랑
그 애달픈 버림도 생각하고
네 가진 미소한 것들 다 던져버리려무나.
그 커단 파도 소리 속에 숨겨
못다 한 아픔 목 놓아 통곡도 하려무나.
죽음보다 가벼운 사람의 일들
사랑보다 가벼운 세상의 일들
한바탕 용기처럼
떠오르는 해를 보면
허겁지겁 살아가는 동안에도
세상 한구석은
영원히 찬란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그대는 문득 깨달으리.
- 「정동진을 다녀와서」 중에서 -
문학의 효용성 중 하나는 살면서 쌓여 있던 감정을 배(catharsis함으로서 오는 청량감이요, 진부한 사고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과 도전에서 얻어지는 환희이다. 그래서 시를 쓴다는 것은 자아 표출이요(안병욱 교수) 또한 구도의 길(구상 시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포말로 부서지는 사랑” “목 놓아 통곡도 하려무나”그러나 떠오르는 해를 보면 분명 찬란한 일도 일어나리라. 우리가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질곡의 역사도 내일에 대한 소망을 잃지 않고 묵묵히 헤쳐나가면 어둠이 깊으면 새벽이 가깝다고 하듯이 분명 찬란한 해는 다시 뜰 것이다. 혼돈과 공허 속에 빛이 있으라 하매 빛이 있었다는 말씀처럼 시인의 연륜 속에 나이테로 숨겨져 있을 끈질긴 믿음과 마음먹은 대로 이뤄 주시리라는 함축된 사유가 파도로 부딪치고 있다.
입술 깨물며 조직 검사를 하고 온 날
문득 세상은 나를 버리고
나도 세상을 버려야 하는가
무한 고독에 전율할 때
나는 너를 보았다
내 가장 깊은 곳에서
내 존재의 허무와 싸우는 빛나는 칼
다시 세상은 환해지고
다시 스위치가 켜지듯
다시 심장이 뛸 때
너는 다시 내게로 왔다
- 「시가 다시 내게로 왔다」 중에서 -
위의 시를 보면 우리는 예기치 못 할 상황에 빠져 두려울 때가 있다. 그러나 삶의 무게가 무겁고 아픔이나 슬픔이 닥쳐와도 원망하거나 한탄하지 않고 자신의 내면으로 끌어들이며 내 존재의 대한 무한 고독 앞에 섰을 때 시가 내게로 왔다는 것은 겸허하게 생을 뒤돌아보며 짐 지고 왔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절대자 앞에 가장 나약한 나를 찾고자 하는 빛나는 구도의 길이 시에게 있음을 보았다는 자기 고백서이다. “내 존재의 허무와 싸우는 빛나는 칼”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작가 정신을 혹자는 천형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혼불 작가 최명희는 손가락으로 바위에 새기듯 글을 썼다고 했다. 누군가는 시는 순간적 언어의 건축물이라고 하지만 내재된 경륜이 깨달음의 언어로 만나 은유와 함축으로 빛날 때 한 편의 시가 이 땅에 꽃으로 피어나는 것이다. 유 시인은 단순히 외향적 의미의 재생이 아니라 시를 통해 지난날의 의미를 반추하며 자아성찰의 계기로 삼고 있음을 본다.
제2부 배움의 꽃밭
교육자로 전 생애를 헌신했다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유시인은 교육 현장에 기억과 회상을 통하여 소멸되어 가는 것들의 애잔한 마음을 시어로 담고 있음을 본다. 스승과 제자로서 함께 했던 시간들이 상생과 조화의 귀결로 이어지고 있다.
시인은 교육과 삶이 가진 영속성을 통해 이타심을 서정적 표현으로 담아내며 어찌 보면 짧고 굵었던 지난 시간들을 되새김질 하고 있다. 시는 해석이 아니라 느낌이라는 말이 있다. 유 시인의 시는 차지고 또렷하다. 시인이 쓰고자 하는 마음이 선명하게 드러나 보인다.
덧칠하지 않은 시어들이 화려한 몸짓을 버리고 올곧은 심성대로 함께 울고 함께 웃었던 시간들이 그리움으로 어우러져 있다. 이 땅에 배움의 씨앗을 뿌리는 중책을 맡으면서 차마 버릴 수 없는 정들을 시비로 세우고 있다.
아득한 나라 바닷가에서 아이들과 조개를 줍고
구름을 스친 어린 초승달의 옅은 미소를 머금고
오직 나는 가장 작은 갈대 피리
그러나 끝없는 분께서 지으신 끝없는 존재
끝없는 분께서 내 작은 갈대피리에 음률을 담아주십니다
소박하고 올곧은 신념을 타오르듯 살고
두려움 없는 죽음의 세계를 고요히 껴안은 당신은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을 닮았습니다
무자비한 폭압에는 온몸으로 항거하되
이제 전 세계는 하나의 둥지에서 만나야 한다
샨티니케탄 숲속 평화 학교는 세계의 푸른 맥박이 되고
저마다 빛나는 등촉을 켜고 한밤중에 끝없는 분이 부르실 때
기꺼이 응답하며 나아갈 수 있도록 깨어 있기를
당신이 조용히 피리를 불자 천상의 별들이 꽃처럼 피어납니다
- 「인도의 노래」 중에서 -
시인의 말
제 황무지에도 꽃이 피었습니다
제 영혼의 사막에도 샘이 솟고
푸른 바람이 부는 숲길이 났습니다
초저녁 봄밤의 꽃향기
은빛 반달과 작은 별 하나
모두가 보는 이의 것입니다
생명의 숲을 품은 마음으로
감동과 구도의 나날을
더 사랑하겠습니다
2026년 새봄에
유임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