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우리는 모두 무해한 혐오주의자다!”
아무렇지 않게 던진 말이 누군가의 꼬리표가 되기까지
“혐오는 강자가 약자에게, 공포는 약자가 강자에게 느끼는 감정이다.” 혐오 표현을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일종의 상식처럼 통한다. 그렇다면 틀딱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은 노인보다 강자이고, 맘충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은 아이 엄마보다 강자인 걸까.
막상 들여다보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한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맘충’이라는 말을 두고 “애 있다고 무조건 맘충은 아니지만, 그 단어가 정확히 들어맞는 엄마들도 많다”라는 댓글과 “왜 잘못은 부모가 똑같이 했는데 엄마만 맘충이 되는가”라는 반박이 팽팽하게 맞선다. ‘틀딱’을 둘러싸고는 “꼰대 같은 말투와 사고방식을 비판하는 말일 뿐”이라는 의견과 “결국 나이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멸시하는 말”이라는 의견이 충돌한다. 누구의 말이 맞을까. 어쩌면 이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
진짜 문제는 이러한 말들을 쓰는 사람들 대부분이 스스로를 ‘무해한’ 존재라고 여긴다는 점이다. 그저 답답한 마음에,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하려고, 혹은 그냥 재미 삼아 던진 한마디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한마디가 모이고 쌓여 누군가에게 낙인을 찍을 때, 그 말은 더 이상 무해하지 않다. 『무해한 혐오주의자』라는 제목은 바로 그 점을 꼬집는다. 우리 각자는 스스로를 혐오와 무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 모두가 이미 혐오의 생태계 안에서 누군가에게 꼬리표를 붙이고, 또 누군가로부터 꼬리표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혐오를 혐오해도 혐오는 사라지지 않는다!”
초갈등시대, 내 안의 말을 들여다보는 혐오 표현 안내서
『무해한 혐오주의자』는 혐오 표현을 쓰는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혐오를 혐오한다고 해서 혐오가 사라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단죄 대신 질문을 한다. ‘영포티’에 젊은 세대의 불안과 시기심이 얽혀 있지는 않은지, ‘똥꼬충’에 동성애 자체에 대한 혐오 이전에 섬세하고 수동적이고 나약한 ‘여성화된 남성’이 되는 것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담긴 것은 아닌지, ‘원종단’과 ‘화짱조’에 일본과 중국이 한국을 앞서가는 것에 대한 우려가 섞인 것은 아닌지 꼼꼼히 짚어나간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인터넷 댓글창에서 마주치는 그 익숙한 단어들이 더는 똑같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 말 너머에 있는 한 사람, 그 사람과 다르지 않은 나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혐오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날카로운 혐오가 아니라, 그 혐오가 어디서 왔는지를 묻는 다정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책 속으로
영포티의 특징으로 젊은 여자들에게 질척댄다는 점이 빠지지 않습니다. 꼰대와는 달리, 젊은 남자에게는 꼰대질하면서 젊은 여자에게는 ‘스윗’하다는 것이죠. 결국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고, 외향적이고, 고액의 소비를 포함한 활달한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40~50대 중년(남)이 20대(남)의 눈에는 꼴사나워 보이는데, 그것이 정치적·이념적 반발과 젊은 여성에 관한 위기의식(?)에까지 뻗어나간 나머지 영포티를 멸칭화하게 된 것이죠. _영포티(17p)
문신은 피부색처럼 태어날 때부터 어쩔 수 없이 갖게 된 표식이 아니라 본인의 뜻대로 선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욱 ‘문신한 자들은 믿을 수 없다. 가까이할 수 없다’라는 경고 신호가 우리의 무의식에 울려 퍼지게 됩니다. 그래서 아름답고 멋지다고 볼 수도 있는데(그렇게 보는 게 불가능하다면 애초에 아무도 문신을 안 하겠죠) 더럽고 징그럽다고 보게 되고, 상대에 대한 정보도 제대로 없으면서 양아치니, 창녀니, 하류니 하며 비하해 버리는 것입니다. _문신충(66~67p)
동물권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이런 근대적 규범 틀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끌어냅니다. 그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피터 싱어는 공리주의적 입장, 즉 “우리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규범이란 쾌락을 최대화하고 고통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쾌락에서 고통을 뺀 수치로 환산되는)을 개인 사이의 윤리 규범은 물론 공공정책이 지향할 목표로 삼아야 한다”라는 입장에서 출발합니다. 그렇다면 개, 고양이, 소, 돼지, 호랑이 등도 쾌락과 고통을 느낄 수 있는데, 인간의 그다지 중대하지 않은 쾌락(고기의 맛)을 위해 동물의 가장 중대한 고통(도살)을 유발하는 일은 비윤리적이라는 것이죠. _비건충(101p)
오늘날의 대한민국에도 여성이 불안과 불만을 느낄 여지는 충분히 있습니다. 이런 점을 바로잡기 위해 여성주의적 목소리를 내는 일은 정당합니다. 하지만 남성들, 특히 젊은 남성들도 불만과 불편을 느낄 이유를 찾을 수 있고, 그것은 일방적이고 비현실적인 일부 성평등 정책, 여전히 남성에게 전담되는 병역 의무, 미래에 대한 커져가는 불안 등의 결과입니다. _꼴페미(153~154p)
급식충의 독특한 점 세 번째는 이 책에 나오는 다른 모든 표현이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이 아닌 타자를 가리키는 것(혐오 표현이라는 게 본래 그래야 하죠)인 반면, 급식충은 자기 자신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급식충이 특정 연령대의 일부가 아닌 전부를 지칭하다 보니, 스스로 급식충이라고 밝히기도 합니다. 왜 멸칭인데도 자신을 그 범위에서 떨어트려 놓지 않을까요? 이런 점에서 ‘혐오 표현은 사람과 사람을 구분 짓는 것이며, 강자가 약자에게 갖는 감정이 혐오’라는 주장이 반드시 맞지는 않음이 다시금 증명됩니다. _급식충(179p)
장애인의 몫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보장하도록 노력하는 일은 일방적인 희생이 아닙니다. 거듭 말하지만 장애인은 곧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등록된 장애인 가운데 선천적 장애인은 10% 남짓이라고 합니다. 대부분 불운한 사고나 질병으로 장애인이 된 겁니다. 누구나 삶의 어느 시점부터 갑자기 장애인이 될 수 있습니다. _애자(23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