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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 용산을 위한 에세이 (양장) - 걸어본다 1
난다 2026.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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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개정판 작가의 말 얼굴 없는 산책의 흔적 7

intro 모든 장소는 시간의 이름이다 17

1부 오래된 망각

입체교차로가 있던 자리-삼각지 28
기억의 전쟁터-효창공원 40
몇 세기 전의 폐허-청파동 46
세운상가의 은밀한 그림자-용산전자상가 53
붉은빛의 가설무대-용산역 60
철교로 가는 고양이의 시간-서부이촌동 71

2부 나누어진 인공낙원

모작의 풍경들-삼각지 화랑거리 80
가장 비극적이거나 가장 희극적인-전쟁기념관 85
비현실적인 기다림-녹사평역 92
단기 체류의 저녁연기-해방촌 100
주의력이 없는 도시-이태원 111
무한으로 진입하는 밤-후커 힐 127
사람과 시간 사이의 신호-남산 138

3부 침묵의 상속자들

닿을 수 없는 언덕-한남동 146
용산의 옆얼굴-동부이촌동 155
순결할 수 없는 침묵-국립중앙박물관 165
식민지의 마지막 장면-남일당 터 173

4부 백년의 침묵이 귀환할 때

망각의 스카이라인-센트럴파크와 새로운 마천루들 182
참사의 크로노토프-10·26 이태원 참사와 12·3 계엄령 193
백년 후 되돌아온 정원들-용산어린이정원 203

outro 다른 기다림이 찾아온다 213
저자 소개
저자 : 이광호
문학과 예술에 관한 비평과 에세이를 쓰며, 책 만드는 일을 한다. 횡단하는 시간과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문학평론가.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비평집 『이토록 사소한 정치성』 『익명의 사랑』 『시선의 문학사』 등과 산문집 『사랑의 미래』 『너는 우연한 고양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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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너를 다시 볼 수 없다 해도,
나는 너의 시간과의 교차를 느낀다.

어느 곳에서도 멀지 않지만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으며, 이방의 느낌이 강하게 스며들어 있는 용산. 용산에서라면, 형언할 수 없었던 시간들로부터 잠시 나를 숨길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다(19~20쪽). 저자가 용산의 한구석이 은둔하기 좋은 곳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이 공간이 장소와 시간을 가차없이 나누는 방식 때문이었다. 함께하기 힘든 것들이 여러 겹의 경계선들을 사이에 두고 이웃하는 공간. 철길 저편에서 어떤 시간이 흐르는지를 알 수 없는 곳. 담 너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지 못하는 곳. 담과 건물과 길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기이한 단절과 시간의 고립은 여기 오래된 삶의 방식이다(23~24쪽). “친절한 여행 안내서도 아니고 글쓴이의 얼굴이 오롯이 드러나는 수필도 아니며 소설이나 시라는 이름의 문학은 더더욱”(8쪽)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 바 있지만, 어쩌면 각각의 줄기가 하나의 다발로 조화를 이룬 결과물이 바로 이 책 아닐까. 저자는 용산의 거리를 걸으며 ‘이발소 그림’과 ‘모작’들로부터 이질적인 것들이 뒤섞여져 만들어내는 풍경의 내부를 발견하고(82쪽), 이태원의 안쪽, 어두운 골목들과 계단들이 만들어내는 단절의 세계에서 정지된 시간의 표정을 마주한다(124쪽). 또한 외세가 발을 들였던 150년간의 순결할 수 없는 시간이 거리의 지층에 새긴 나이테를 감지하고(23쪽), 밤이 되었을 때 갑자기 허약해지는 세상 모든 안부와 약속들을 바라보게 된다(53쪽). 그 걸음걸음 사이에는 익숙한 무기력을 견디는 방식과 더불어, 바람도 우울도 비껴가는 걸음걸이, 기계적이고 무심한 작업, 되도록 시간을 지키려는 1인분의 식사 같은 것들 또한 존재한다. 다만 그곳을 걷던 저자는 문득, 어떤 의미도 알 수 없는 익명적인 신호, 설사 네가 아니라 해도, 내용이 희박해서 조금 아름다운 우연과도 마주치게 된다(37~38쪽).

산책자의 말은 가르침이 아니라 함께 걷는 자가 곁일 때 발을 맞추는 리듬으로의 이른바 독백으로 읽힌다. 지극히 사실적으로 놓인 길과 건물 앞에서 절로 유지되는 객관적 거리감에 제 감상이나 제 추측 따위에 궤변을 늘어놓을 겨를조차 없는 것. 그래서 참 맑지만 한편으로 불투명한 뒤끝이 남는 건, 걷는다는 행위, 즉 걷는다는 일로 맞닥뜨리게 되는 ‘나’와의 만남이 그리 명쾌하고 흔쾌하지만은 않기 때문일 테다. 그 맞부딪침으로 번번이 ‘나’와 대면하는 일은 그러나 끊임없이 나의 허물을 절로 벗겨지게 만든다.

용산이라는 사라짐과 망각의 형식에
저항할 수 있는 몸짓은 가능할까?

2009년의 용산 참사가 발생했던 ‘남일당’ 빌딩 주변은 10년 사이에 극적인 외형적 변화를 가져왔다. 용산역을 중심으로 한 한강로 일대는 휘황한 건축물들의 각축장이 되었다(183쪽). 과거의 낙후된 저층 상가와 철거 현장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매끈한 유리 벽면으로 완성된 고층 빌딩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거대한 빌딩들은 그 안에 있는 개인의 신체를 가리고, 땅과 땅 사이를 걸어서 이동하는 산책자의 자유를 제한한다. 용산에 군림하는 마천루들은 현기증 나는 ‘탈연결’의 시대를 만들고 있다(186~187쪽). 공간의 교체는 단지 물리적인 변화가 아니다. 용산 참사를 기억할 만한 장소는 공원 주변 ‘용산도시기억전시관’ 내부의 ‘2009년 용산 참사 기억관’이 유일하다. 거대자본이 만드는 화려한 스카이라인 안에서, 이 도시의 참혹한 기억은 작은 공간에 가두어놓을 수밖에 없다. 어떤 애도는 자본과 권력에 의해 배제되며, 어떤 애도는 아직 그 죽음의 의미를 알 수 없어서 멈출 수 없게 된다(188쪽). 저자는 또한 권력의 점거와 종말이라는 사건의 유형을 구조적으로 반복 재생산해온 용산의 ‘크로노토프’에 대해 이야기한다. 3년 7개월 동안의 용산 대통령실이 남긴 문제는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으며, 용산 대통령실의 종식은 용산이라는 공간에 새로운 시간의 레이어를 추가했다. 군사 기지 한복판으로 권력의 핵심을 옮기는 모순성, 용산 대통령실에서 선포된 ‘농담 같은’ 5시간의 비상계엄, 정치와 취향, 놀이와 저항의 경계를 허무는 시위 퍼포먼스로부터 새로운 시민성이 탄생하는 순간까지. 더불어 권력 공간의 재배치는 이태원이라는 공간에 시민 안전의 공백 지대를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내란과 탄핵이라는 역사적 오류, 갈등과 대립의 역사가 용산이라는 크로노토프에 새겨지게 되었다(193~199쪽).

저자가 12년 전 삼각지에 살던 시절에는 오피스텔 창문으로 남산 타워가 보였다. 미군 기지 근처에는 고층건물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낮은 집들의 작은 불빛들이 마치 땅에 추락한 별들처럼 어두운 대지에서 반짝였다. 서울에서 찾기 힘든 비현실적이고 목가적인 밤 풍경이었다(207쪽). 미군 기지가 강제한 수평성이 오랫동안 유지되던 이 지역은, 휘황한 마천루들의 등장으로 대지의 깊이와 연결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수직성을 얻게 되었다. 저자가 삼각지를 떠난 것은 그의 산책의 리듬으로는 저 현기증나는 개발의 속도전을 감당하기 두려웠기 때문일 터다(12쪽). 용산의 밤, 밤은 계절을 삼켜버리는 시간이며 영원한 망각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술어가 없는 무거운 대명사의 밤. 그리고 허술한 술어 같은 새벽이 느리게 왔다. 새벽의 뿌연 공기가 창에 닿으면 밤의 의미 작용은 여기서 끝나고, 150년이 넘는 고독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다만 거짓말처럼 계절이 지나갔다(216쪽), 이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속에서.

휴일의 ‘용산어린이정원’에는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온 젊은 부부들이 적지 않다. 한류 콘텐츠로 다시 각광받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인파와는 달리, 이곳의 입장객들은 거대한 녹지공원 때문에 여유롭게 느껴진다. 드넓은 잔디 위에서 캐치볼을 하는 어린이들과 그늘에 앉아 아이들을 지켜보는 젊은 부부들의 모습은, 완벽하게 평화로워 보인다. 그 잔디 아래 시간의 어두운 지층들과 백년을 살아낸 공원 안 ‘가로수길’의 나무들은 침묵하지만, 가끔은 그 침묵의 두께를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장소들에서 배제된 자들의 시간을 망각한다면, 기억이 없는 유토피아에는 미래도 없을 것이다. 유토피아의 피상적인 아름다움은 과장되어 있다. 기억이 없는 유토피아는 몸과 언어가 없는 유토피아이다.
_「백년 후 되돌아온 정원들-용산어린이정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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