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네트워크, 가상현실의 언어를 경유해
동시대 인간의 감각과 세계 인식을 탐구하는 형식주의 시집
작가는 ‘로그라이크’, ‘보스 레이드’, ‘인스턴스 던전’ 등 게임 용어와 인터넷 문화, 기술적 상상력을 시의 구조로 끌어들여 반복·루프·퀘스트와 같은 게임 메커니즘을 시적 서사로 전환한다.
이 시집에서 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게임 필드처럼 펼쳐지고, 인간은 플레이어이자 캐릭터로 등장한다. 현실과 가상, 인간과 기계, 자연과 알고리즘 사이의 경계는 끊임없이 교란되며, 시는 종말과 재시작이 반복되는 세계 속에서 인간 존재의 감각을 탐문한다.
작가와 타이포그래퍼의 공동 작업
『GAME OVER』에서 시인(윤보성)과 타이포그래퍼(정동규)는 2026년 1월부터 5월까지 공동 디자인 세션을 진행했다. 일반적인 출판의 과정처럼 시안을 메일로 주고받는 방식이 아니라, 작업실 테이블에 함께 앉아 디자인 프로그램을 함께 만지며 서로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고 그것을 책에 반영했다.
시와 시집의 밀도에 맞추어 텍스트의 흐름, 여백, 타이포그래피의 밀도와 배열을 하나의 시적 장치처럼 구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고, 정동을 공유하는 이 방식을 경유해 시인은 타이포그래피를 경험하고, 디자이너는 시적 감수성을 배웠다.
열린 구조의 대안 시인선, aaa
은 기획:1과 텍스트 프레스가 함께 시작하는 대안 시인선 시리즈다.
그렇지만, 해당 시인선의 제호는 두 출판사의 이름 안에 닫히지 않고 다른 제작자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참여하며 함께 쌓아갈 수 있다. 각자만의 제스처를 지향하는 이들이 자율적으로 모일 수 있는 열린 시인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텍스트 프레스는 아방가르드(avantgarde), 아나키(anarchy), 자율성(autonomy)의 약어로 이 시인선을 다루지만, 기획:1 혹은 앞으로 시인선 세계관을 함께 구성할 이들의 견해는 다를 수 있다.
한편, 텍스트 프레스의 이름으로 발행하는 은 앞으로 각 시집의 텍스트에 적절한 책과 타이포그래피를 구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출 예정이며, 매번 다른 시 앞에서, 책은 다시 처음부터 자신의 모습을 찾아갈 것이다.
시인의 말
최초의 필드에서 나는 내게 부여된 역할을 애써 무시한 채 어떤 풍경을 바라본다. 아직 구현되지 않은 컴퓨터 그래픽 너머에 있을 나와 연결될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기다린다. 현실의 사물과 타자를 바라볼 때마다 게임 캐릭터가 떠오른다. 그들은 나의 심상을 잠식해 나의 화자가 되어준다. 편집증적인 운율은 삶을 게임에, 게임을 삶에 비유하는 건 결코 진부한 일도, 나약한 일도 아니라고 속삭인다. 나는 끝없이 이곳저곳을 걸어 다니며 머릿속으로 시를 쓰고 또 쓴다. 과거를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미래는 달라질 것이다. 나의 회고는 내가 아닌 것의 예언으로 귀결된다. 나는 끝에 도달해 끝장나거나 끝을 넘어서려 한다. 스스로를 시험하는 행위는 지극히 게임적이기에 모쪼록 시적이다. 검은 화면에 되비친 건 나의 얼굴이자 모두의 얼굴이다. 그러므로 시 쓰기는 게임이다. 자기 자신을 이기는 한에서만 완성되는 시가 있다. 이 시편은 무던히 지고 또 졌던 시절의 기록이다. 최후의 필드인 이 시집에 나는 등장하지 않아야 한다.
책 속에서
게임에 몰입할 땐 기분이 좋은 게 아니라 기분이 없어진단 게 참 좋아요 - 「둘을 위한 테니스」
자칫 잘못하면 무대에 갇히게 된다죠 / 이미 전부 온라인 게임으로 해봤어요 / 죽으면 죽음의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 / 죽이지 않으면 거짓이 되살아난단 것 - 「사이코드라마」
우주먼지는 어떤 시뮬레이션의 부산물 / 너희은하에서 흘러들어온 판도라 상자 / 태양의 흩어진 잠재력에 의한 종말실험 - 「헬로 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