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이 책의 주요 이야기들
거대 소련에 맞서 국경을 지켜 낸 핀란드
제2차 세계대전 직전, 소련은 국경의 안전을 이유로 핀란드에 영토를 넘길 것을 요구했지만 핀란드는 이를 거부했다. 이어진 겨울전쟁에서 인구와 병력, 무기 모두 열세였던 핀란드는 혹독한 겨울과 숲이라는 자연환경을 활용한 치밀한 전술로 소련군에 큰 타격을 입히며 예상 밖의 선전을 펼쳤다. 결국 일부 영토를 내주기는 했지만 국가의 독립과 주권을 지켜 냈고, 이후에도 강대국 사이에서 현실적인 외교 전략을 펼치며 국경을 지켜 왔다. 이 사례는 국경의 운명이 단순히 국력의 크기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의지와 전략, 외교적 선택에 의해서도 달라질 수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돈으로 산 국경, 미국의 영토 확장
국경은 전쟁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국경 일부는 ‘매매’를 통해 정해졌다. 루이지애나 매입, 알래스카 매입처럼 미국은 막대한 땅을 사들이며 영토를 넓혔고, 그 결과 오늘날의 거대한 국토가 형성되었다. 지도 위의 선 하나가 군대의 진격뿐 아니라 돈과 외교, 국가의 야망으로도 그어질 수 있음을 보여 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전쟁 직전에서 협상으로 돌아선 칠레와 아르헨티나
칠레와 아르헨티나는 안데스산맥을 따라 길고 복잡한 국경을 맞대고 있다. 자연 지형을 기준으로 삼는다 해도 산맥과 강의 해석이 엇갈리면 분쟁은 쉽게 발생한다. 두 나라는 한때 전쟁 직전까지 치달았지만, 결국 중재와 대화를 통해 국경 문제를 풀었다. 두 나라의 국경은 ‘대화를 통해 확정된 국경’이 희망의 사례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하늘에도 바다에도, 국경은 있다
국경은 땅 위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현대 사회에서 국경은 하늘과 바다까지 이어진다. 비행기가 다른 나라 상공을 지나갈 때는 국제법과 국가 간 협정에 따라 비행 경로가 정해진다. 전쟁이나 외교 갈등이 발생하면 특정 국가의 영공이 폐쇄되어 항공기가 수천 킬로미터를 우회하기도 하는데, 우리가 무심코 이용하는 국제선 항공편 뒤에는 이처럼 보이지 않는 ‘하늘의 국경’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책은 이뿐 아니라 영해와 접속수역, 배타적경제수역(EEZ), 대륙붕 등 바다의 국경까지 다룬다. 바다와 하늘은 눈에 보이는 경계선이 없지만, 자원 개발과 항공 안전, 군사·외교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국제사회는 이를 엄격한 규칙으로 관리하고 있다. 국경은 단순히 육지를 나누는 선이 아니라, 하늘과 바다를 포함한 인간 활동의 모든 공간에 존재하는 질서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는 흥미로운 대목이다.
불안의 씨앗, 유럽 열강이 그은 국경들
아프리카 지도를 보면 유독 가로세로 직선으로 그어진 국경이 많다. 이는 현지의 민족, 언어, 생활권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유럽 열강이 식민지 지배 과정에서 땅따먹기하듯 경계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국경은 독립 이후에도 그대로 남아 민족 갈등과 내전의 원인이 되었다. 이렇듯 민족, 언어, 생활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그어진 국경은 과거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현재의 정치 불안으로 연결된다.
중동의 많은 갈등 역시 외부 세력이 그어 놓은 국경과 무관하지 않다. 영국과 프랑스 등 강대국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지역을 나누었고, 그 결과 민족과 종교, 부족의 현실과 맞지 않는 국경이 만들어졌다. 쿠르드 문제와 이란·이라크, 튀르키예를 둘러싼 갈등은 그 대표적 사례다. 국경 하나가 한 지역의 불안정을 얼마나 오래 지속시킬 수 있는지 보여 주는 사례들이다.
베를린 장벽은 국경이 아니었다
베를린 장벽은 흔히 국경처럼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한 도시 안에 세워진 이념의 장벽이었다. 동독과 서독, 더 나아가 소련 중심의 사회주의권과 미국 중심의 자유주의권이 대립하던 냉전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장벽은 사람들의 일상과 가족 관계를 갈라 놓았고, 무너지는 순간에는 한 시대의 종말을 알렸다. 이 사례는 국경이 물리적 선을 넘어 이념의 장벽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소련 붕괴가 남긴 새로운 국경들
강대국 소련은 영원할 것처럼 보였지만, 붕괴 이후 여러 독립국으로 나뉘었다. 문제는 새롭게 생긴 국경이 곧바로 평화를 가져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러시아와 주변국 사이의 긴장, 월경지 문제, 체첸 분쟁,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옛 소련권의 국경은 지금도 국제정세의 핵심 쟁점으로 남아 있다. 냉전이 끝났다고 해서 냉전이 만든 국경의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던 셈이다.
카슈미르, 국경 문제가 핵 보유 문제로 번지다
카슈미르는 인도와 파키스탄이 오랫동안 영유권을 다투어 온 지역이다. 여기에 중국까지 얽히면서 이 지역의 국경 문제는 더욱 복잡해졌다. 특히 인도와 파키스탄이 모두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면서, 카슈미르 분쟁은 지역 분쟁을 넘어 전 세계가 주목하는 안보 문제가 되었다. 이 사례는 국경 갈등이 얼마나 쉽게 국제적 위기로 확대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한국과 북한, 국경보다 더 무거운 분단선
한국과 북한 사이의 군사분계선은 단순한 국경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같은 민족과 가족을 갈라놓은 분단의 선이자, 전쟁이 끝나지 않은 채 정전 상태로 남아 있는 긴장의 경계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한반도 문제를 세계의 국경 갈등 속에 놓고 바라보게 한다. 한국 독자에게는 국경이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음을 실감하게 하는 대목이다.
갈등과 분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시대의 흐름을 읽는 키워드
국경은 탐욕과 갈등, 전쟁과 침략, 이데올로기 등 세상의 모든 분쟁으로 얼룩져 있다. 이러한 분쟁을 자원이나 영토에 대한 소유욕, 이념의 차이, 경제적 이득을 위한 침략 등 단편적인 현상으로만 접근하면 그 분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국경에 담겨 있는 다양한 역사와 이야기, 그 이면을 엿볼 수 있는 현장의 분위기까지 접하다 보면, 대전환의 시대에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분쟁의 표면뿐만 아니라, 그 배경의 이해는 물론, 해결책을 모색하고 예측하며 전체를 조망하는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책 속에서
국경을 이해하면 세계 정세를 알 수 있습니다. -7쪽
핀란드는 러시아와의 전쟁을 겪으면서, 국민들 사이에 국경을 지키고자 하는 의식이 지금도 강한 나라입니다. 핀란드는 서쪽의 스웨덴, 동쪽의 러시아에게 점령당한 역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핀란드어와 스웨덴어가 공용어이고, 학교에서는 러시아어도 배웁니다. 10세기 초에 러시아 영토가 되었지만, 20세기 초 러시아혁명이 일어나 러시아제국이 붕괴하자 독립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독립을 지키는 것이 나라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었죠. 성년 남성에게는 병역 의무가 부여되고, 희망한다면 여성 또한 입대할 수 있습니다. UN이 실시한 세계 행복도 순위 조사에서 6년 연속 1위를 달성한 핀란드의 ‘부드러운’ 이미지와는 또 다른 얼굴을 가진 셈이지요.
- 32쪽
미국은 오키나와인들의 자치를 인정하고 ‘류큐 정부’의 설립을 허가했습니다만, 실질적으로는 류큐 정부 위에 설치된 미국 민정부(民政府, USCAR)가 오키나와를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오키나와로 건너가려면 여권이 필요했으며, 오키나와의 도로에서는 자동차가 미국처럼 우측통행해야 했습니다. 핸들 역시 왼쪽이었죠. 또 오키나와에는 미군 병사들이 밤이면 밤마다 드나드는 카바레와 스테이크 가게가 난립하였습니다. (...) 미군 병사들이 활보하고 영어가 거리낌 없이 오가는, 여권 없이는 드나들 수 없었던 당시 오키나와는 외국과 다름없었습니다. 일본 열도와 오키나와 사이에는 사실상의 국경이 존재했던 셈이죠.
-43쪽
1867년에는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720만 달러에 매수했습니다. 러시아는 북아메리카로 진출한 영국에게 빼앗기느니 미국에 파는 게 낫다고 생각해 알래스카 판매를 제안했습니다. 구입 당시 알래스카는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라고 여겼기 때문에, 구매를 결정한 국무장관 윌리엄 수어드는 ‘거대한 냉장고를 산 남자’라는 야유를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 베링해 등의 수산자원과 알래스카 지하에 천연자원 및 금 등이 풍부하게 묻혀 있다는 사실이 판명되었으며, 지금도 미국 전체 산유량 중 10% 정도가 알래스카에서 산출됩니다.
- 47쪽
2022년 2월에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러시아 민간 항공기에 대해 “우리나라 영공을 비행해선 안된다.”고 비행 제한을 설정했습니다. 이에 대해 러시아도 많은 나라에 대해 공역(空域) 제한을 내걸었기 때문에, 일본과 유럽을 오가는 비행기도 러시아 상공을 비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도쿄와 런던을 오갈 때는 북극 상공이나 중국 상공을 비행하는 우회 경로를 이용할 수밖에 없게 돼, 러시아 상공을 통과하는 것보다 2~3시간 정도 비행시간이 더 걸리게 되었습니다.
- 103~106쪽
1884년, 당시 독일 총리였던 비스마르크의 제창으로 열린 베를린 회의에서 식민지를 분할하기 위한 규칙이 제정되었습니다. (...) 이 회의에 당연히 아프리카 사람들은 초대받지 못했습니다. 한편 선점권을 인정했기 때문에 오히려 식민지 쟁탈전이 격화된 결과, 직선으로 나뉜 식민지 경계선 다수가 그대로 현재의 국경이 되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아프리카의 국경은 “다른 곳(유럽) 사람이 멋대로 정했습니다.”
- 122쪽
베를린 장벽이 존재하던 1987년, 세계적인 뮤지션 데이비드 보위가 서베를린에서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그는 스피커 중 1/4을 동베를린 쪽으로 돌려놓고, 관중들에게 “장벽 반대편에 있는 우리 모두의 친구들에게 염원을 보냅니다.”라고 독일어로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베를린 장벽에 가로막혀 보위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가 보내는 자유의 메시지와 음악을 5,000여 명의 동독인들이 듣고 노랫소리로 화답했다고 합니다.
- 159~160쪽
2020년에는 카슈미르 동부 중국-인도 국경에 해당하는 갈완 계곡에서, 중국과 인도 군대가 충돌해 인도 병사 20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그 전에 두 나라는 핵무기를 가진 나라끼리
군사적 충돌이라는 긴장 상태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양국 모두 충돌을 더 악화시키지 말자는 생각으로 “총기를 쓰지 않기.”로 합의한 바 있습니다. 이에 중국 병사는 곤봉을 쓰고, 인도 병사는 돌팔매와 방화, 맨손 격투로 대응하는 등 무기를 쓰지 않아 그 정도 피해에 그친 것으로 보도되었습니다.
- 206~207쪽
판문점에 있는, 군사분계선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듯한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장에도 들어가 볼 수 있습니다. 건물 안에 군사분계선이 지나가고 있기 때문에 방 건너편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잠시나마 한국에서 북한으로 ‘월경’할 수도 있습니다. 제 스마트폰 GPS는 북한 쪽으로 이동하면 정확하게 위치를 ‘북한’으로 바꿔 표시했습니다. 군사분계선 북쪽에는 북한 군인이, 남쪽에는 대한민국 군인이 늘어서 경비를 하고 있습니다. 몇 시간 견학하기만 해도 살얼음 같은 긴장감이 전해오는 곳입니다.
- 213쪽
우크라이나에서는 2022년 10월, 일본인으로서는 의외라고 여길 결의를 의회에서 채택하였습니다. 뜻밖에도 ‘북방 영토는 러시아에 의해 점령당한 일본의 영토라는 것을 확인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왜 우크라이나가 일본을 위해 북방 영토를 되찾아준다는 것이지? 북방 영토에 우크라이나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것도 그 이유가 되었겠지만, 우크라이나로서는 “영토 일부를 러시아에 일방적으로 빼앗겼다.”는 공통의 입장을 가진 일본과의 제휴를 강화하면서 러시아에 압력을 가하려는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 2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