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더레드캠프는 ‘승리를 기록하는 자들의 진지’를 표방한다. 현장에서 싸우고, 그 싸움을 기록으로 남기는 곳. 우리가 붙드는 것은 번드르르한 구호가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정치, 그리고 그 작동의 원리다.
『보좌관 전쟁』을 세상에 내놓는 이유는 분명하다. 한국 정치를 다룬 책은 서가를 채우고도 남지만, 정치를 ‘실제로 만드는 사람들’이 직접 쓴 책은 드물었다. 정치인의 회고록도 아니고 평론가의 분석도 아닌, 매일 현장에서 정치를 설계하는 사람의 1인칭 육성. 그 빈자리를 메우고 싶었다.
이 책은 두 사람을 향한다. 한 사람은 정치의 안쪽에서 일하거나, 언젠가 그 안으로 들어서고 싶은 이들이다. 그들에게 이 책은 일곱 해의 실전 감각을 한 권에 눌러 담은 안내서다. 다른 한 사람은 정치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은 시민이다. 그들에게 이 책은 뉴스가 끝내 보여주지 않던 ‘과정’으로 난 창이다.
정치를 향한 냉소가 이토록 깊은 시대에, 우리는 굳이 이런 책을 낸다. 냉소만으로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정치를 바꾸려면, 먼저 정치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 책이 그 첫걸음에 놓이기를 바란다.
"우리는 정치인의 얼굴은 안다. 그 얼굴을 만든 사람은 모른다."
법안 하나가 통과된다. 그 법은 누가 썼을까. 의원이 명연설로 박수를 받는다. 그 말은 누가 골랐을까. 터질 뻔한 사고가 소리 없이 가라앉는다. 누가 막았을까. 한 후보가 선거에서 이긴다. 그 판은 누가 짰을까.
우리 눈에 닿는 것은 늘 결과뿐이다. 그것을 만든 과정은 무대 뒤 어둠 속에 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 보좌관이 있다.
권력에 가장 가까이 붙어 일하지만, 정작 권력은 쥐지 않는 사람. 정치의 거의 전부를 만들어내면서도, 그 무엇 하나 제 몫으로 챙기지 않는 사람. 표는 의원이 받고 책임도 의원이 진다. 그 모든 것을 미리 갈무리해두는 손은, 늘 화면 바깥에 있다.
이 책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 의원의 한마디 뒤에는 몇 사람의 밤이 새워졌을까?
- 법안의 한 줄은 어떻게 누군가의 내일을 바꾸는가?
- 악재가 터진 새벽, 사과와 설명과 반격 사이에서 무엇을 집어야 하는가?
- 모자란 사람과 시간으로, 한 표는 어디서 더 길어 올리는가?
읽고 나면 달라지는 것이 있다.
- 정치 뉴스에서 ‘누가 말했나’가 아니라 ‘누가 만들었나’가 보이기 시작한다.
- 정치인의 이미지가 아니라, 그 이미지를 떠받친 설계가 읽힌다.
- 정치를 욕하기 전에,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먼저 이해하게 된다.
정치는 구호가 아니라 실행으로 완성된다. 그리고 그 실행의 맨 앞에, 이름을 남기지 않는 사람들이 서 있다. 『보좌관 전쟁』은 그들의 첫 기록이다.
저자의 말
이 글을 쓰기까지 오래 망설였다.
국회에서 짧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그사이 선거를 네 번 치렀고, 국정감사를 몇 차례 겪었고, 새벽에 울리는 전화에도 이제는 심장이 덜 뛴다. 처음 의원회관 복도를 걷던 날의 긴장은 닳아 사라졌고, 그 자리에 익숙함 비슷한 것이 들어앉았다. 그런데 막상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려는 순간, 익숙함이 아니라 송구함이 밀려왔다.
솔직히 고백한다. 내가 이 책을 쓸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끝내 확신하지 못했다.
국회에는 나보다 훨씬 깊은 사람들이 있다. 새벽 네 시에 나와 회의 자료를 매만지는 사람, 법안의 조문 하나를 붙들고 몇 달을 부처와 씨름하는 사람, 단 한 번도 기자에게 거짓을 말하지 않아 그 신뢰 하나로 무너질 위기를 막아낸 사람, 의원이 잘못된 길로 접어들려 할 때 불편한 진실을 끝내 입에 올리는 사람. 그들은 책을 쓰지 않는다. 쓸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책보다 더 급한 일이 늘 눈앞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은 질의서를 고치고, 부처에 전화를 걸고, 내일 아침의 판을 짜고 있다.
그 사실이 나를 오래 붙들었다.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쓰지 않고, 덜 아는 내가 쓴다. 이 역설 앞에서 몇 번이나 원고를 멈췄다.
이 책에 담은 것들-아침 회의를 굴리는 방식, 보도자료의 구조, 위기에 대응하는 순서, 갈등을 다루는 원칙-은 어느 것도 내가 처음 발명한 것이 아니다. 수십 년간 국회를 지켜온 선배들이 무수한 시행착오로 깎아낸 것이고, 지금 이 시간에도 수천 명의 보좌진이 현장에서 매일 새로 고쳐 쓰는 것이다. 나는 그 거대한 축적에서 작은 조각 하나를 조심스레 주워 담았을 뿐이다.
그래서 두렵기도 하다. 이 작은 조각이 마치 전체인 양 읽힐까봐. 보좌관의 세계가 이 한 권에 다 담겼다고 오해될까봐. 분명히 해두고 싶다. 이 책에 쓰지 못한 것이, 쓴 것보다 훨씬 많다. 야간 국회에서 밤을 새우며 수정안을 조율하던 얼굴들, 민원 하나를 풀려고 관공서를 다섯 번씩 드나들던 발걸음, 의원의 낙선 다음 날 담담히 짐을 싸 인수인계를 마치던 뒷모습. 그런 장면들은 끝내 이 책에 다 옮기지 못했다.
그럼에도 끝내 펜을 든 이유는 하나다. 누군가는 기록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무대 위만 환한 정치에서, 무대 뒤의 어둠을 단 한 번이라도 비춰보고 싶었다. 그 어둠 속에서 묵묵히 정치를 떠받쳐온 이름들에게, 이 부족한 책이 작은 빚 갚음이라도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그 자리에 설 누군가에게, 희미한 길잡이 하나로 남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