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책 속에서〉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딸이 사는 곳인 매사추세츠주로 나와 아내가 비행기를 타고 찾아갔다. 택시가 집 입구 정원에서 정차하자, 말뚝에 매어놓은 큰 개가 짖어대기 시작했다. 넓은 정원에는 각종 이름 모를 나무가 많이도 있고. 그중에는 화사하게 핀 꽃나무도 꽤 있다. ‘잘 사는구나!’ 왠지 눈시울이 붉어지며 눈앞이 흐릿해지고 눈물이 난다. 손으로 쓱 문대고는 휠체어에 앉아있는 아내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대문에 스피커와 함께 붙어있는 게딱지만 한 벨을 눌렀다. 딩동댕 딩동댕.
“Julie! It’s your father.”(줄리야 아버지이다.)
줄리는 딸의 애칭이다. 조금 기다려도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다. 다시 스피커에다 대고 더 크게 말을 했다.
“Julie! It’s your father.”(줄리야 아버지이다.)
개가 악을 쓰며 크게 짖어대니 남자의 긁은 목소리가 대문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who is this?”(누구야?)
입술이 문어 주둥이같이 생긴 흑인의 목소리가 맞는 것 같다. 결혼한다며 레스토랑에서 만나본 그는 얼굴은 새까맣고 눈은 왕방울만큼 크며 키는 7척 장신인 전형적인 흑인이었다. 내 목소리를 딸이 모를 리가 없어 보여 가만히 서 있었다. 다시 남자의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Who are you?”(누구냐고?)
“Julie’s father.”(Julie was his daughter’s nickname.)
“쥴리 아버지이다.”(줄리는 딸의 애칭이다.)
“Did you promise?”(약속했어?)
“I didn’t make a promise.”(약속은 안 했지.)
“Then make a promise and come back.”(그러면 약속을 하고 다시 와.)
재차 큰 소리로 말했다.
“I am Julie’s father. Julie’s mother is here too.”(내가 줄리의 아버지라고. 쥴리의 엄마도 같이 왔어)
“Even so, you can’t. Get out of the garden. If you don’t, I’ll call the police.”(그렇다 해도 안 돼. 정원 밖으로 나가. 안 나가면 경찰을 부를 테야.)
딸이 집을 나가 저희끼리 결혼한 지가 5년이나 되었어도 딸은 친정집을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큰아들에게 딸이 집에 있나를 물어보니, 대학교 교수인 줄리는 휴가 중이라 집에 있다고 한다. 그동안 딸에게 싸였던 섭섭한 감정을 풀어 용서하고 “너희들 결혼을 인정하겠다.”라는 말을 하여 그들에게 감동을 두 배로 주기 위해 약속도 안 하고 딸을 찾아간 것이다. 그것은 그 흑인을 내 사위로 맞이한다는 뜻도 있었다. 그런데 흑인 사위가 자기 집 정원을 떠나라는 경고를 한 것이다. 내가 저희 결혼을 인정 안 했듯이 그도 나와 내 식구를 장인 장모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상대성 원리이나, 따지고 보면 미국문화와 한국 문화가 충돌을 한 것이다. 내 집에 허락 없이 들어오려는 자는 물어볼 필요도 없이 총으로 사살해도 미국 법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 흑인이 총을 들고나오지 않고, 스피커에다 말을 한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할 판이다. 아들 집을 방문한다 해도 그들 부부의 허락 없이는 방문이 안되는 것이 미국 사회이다. 그런 사회인 미국이라 해도 나는 기대 이상의 대우에 황당하여 ‘너희들은 한국이라면 부모 학대죄를 적용받을 것이다.’라며. 사냥꾼에게 붙들린 멧돼지같이 씩씩거리며 딸네 집 정원에 서 있었다. 기다려도 기대한 딸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제는 더 그곳에서 지체할 수가 없다. 내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가슴 아픈 한국문화의 사연은 미국 딸네 집 땅바닥에 묻고 그 자리를 떠나야 했다.
없는 비행기 지나간 하늘인 것을…….
-<아메리칸 드림이 남긴 것> 중에서
“503호를 찾아오셨나요?”
“네. 제 아들이 사는 집입니다.”
“네에? 그 집에는 유명인인 아버지라는 사람이 가끔 오던데요. 그분이 503호 의사 선생님 아버지라고 하던데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네에?”
나는 눈을 감았다. 가슴이 쿵쾅거린다. ‘아. 뭔가가 있었구나!’ 마리아를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도 좋은 얼굴은 아니다. 서 있는 다리가 후들거린다….
아파트 문 앞 복도에 서 있는 우리를 보자 아들 부부는 멈칫했다. 아들은 고개를 수그리고 며느리는 소 닭 쳐다보듯 하고는 그저 고개만 까딱한다.
“손자들은?”
아무 대답이 없다. 거실 소파에 앉았다.
“너를 정성을 다해 키워준 대가가 이거냐? 네가 학교에서 배운 게 지금의 네가 하는 행동이냐? 내가 너에게 돈을 달라고 온 게 아니야.”
수철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말이 없다.
“요셉 씨 좀 진정하세요.”
“지금 진정하게 됐나? 이런 놈을 자식이라고 뼈 빠지게 공부시켜놓으니 부모를 배신해? 너에게 온다고 미리 전화까지 했는데 이제야 들어와? 내가 여기 온 것은 손자들이 보고 싶어서 왔다. 그리고 너희들과 저녁이라도 한 끼 먹고 가려고 오후 4시경에 왔다. 너한테 전화를 해도 받지 않으니 지금까지 기다린 것이다. 바로 옆집 사는 분한테 이야기를 들었다. 여기를 자주 다녀간다는 그분은 누구냐? 이웃집 분은 유명한 사람인 그가 네 아버지라며 다녀간다는데 사실이냐?”
아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말이 없다. 그러자 며느리가 나섰다.
“옆집 아주머니 말씀이 맞아요. 저희도 몰랐어요. 저희가 결혼하고서 2년째에 시아버지가 수철 씨는 자기 아들이라며 저희를 찾아오셨었어요. 저희도 엄청 궁금했거든요. 그분은 친자가 틀림없다는 의사 확인서를 가지고 다시 찾아오셨어요. 아이 때 이름도 수철이라고 하면서요. 남편인 수철 씨도 의사인데 그걸 모르겠어요? 그 사실을 청주 아버지께 말씀드리자고 수철 씨가 이야기해도 좀 더 있다가 말씀드리자고 하며 제가 못 하게 했습니다. 수철 씨는 고아원에서 들은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기에 바로 그분의 말씀을 믿은 겁니다. 수철 씨를 기른 대가는 충분히 해 주신다고 이야기도 하셨기에 저희는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 집도 그분이 좀 더 큰 평의 아파트를 구매해 주셨고 이 아파트가 팔리면 그 집으로 이사를 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문밖에서 저희를 기다리느라 오금이 아파지도록 서 있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벌렁벌렁 댄다. 분노에 찬 나의 떨리는 목소리가 거실 천정을 때렸다.
“그래? 며느리, 네가 수철이를 조종하여 부모를 배신하라고 했냐?”
아들은 아무 말도 안 하고 고개를 구부리고 소파 앞 바닥에 앉아서 있다.
마리아는 생각했다.
아! 그렇게 되었던 것이구나! 아무리 철이 안 들었기로. 이럴 수가….
낳은 정과 기른 정 어느 것이 그들에게 소중했을까? 우리가 잘못 키운 거야!
‘며느리의 입에서 시아버지 소리가 그리도 자연스럽게 나오는 까닭은 또 무엇일까?’
‘수철이가 부모를 배신한 게 틀림없다.’
“너희에게 무슨 이야기를 더 하겠니. 수철이 너는 아버지라는 그 사람에게 연락해서 나와 만나게 해다오. 오늘이면 더 좋겠다.”
“이 밤에요?”
“왜 늦은 밤이면 안 된다는 법도 있냐?”
“아니요. 너무 늦어서요. 아버지는 변호사이시라 퇴근 후에는 만나는 분도 많은 거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전화를 해서 날짜를 잡으면 안 될까요?”
-<붉은 머리 오목눈이> 중에서
얼마 후 무전으로 연락하는 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렸다. 경찰들 몇 명이 나를 에워싼다.
“찾았나? 오버.”
“어 찾았어, 여기 있어. 오버.”
“증거가 될 만한 물건도 다 가지고 내려와.”
“알았다. 오버.”
“단단히 묶어서 데리고 내려와.”
“알았다. 오버.”
그 소리가 나를 체포한다는 것은 정말 몰랐다. 경찰은 나를 쇠고랑을 채우고도 포승줄로 꼭꼭 묶었다. 왜. 그러느냐고 항의하니 당신은 청송교도소에서 탈주한 살인범 같다며 신고가 들어왔다고 한다. 기막힌 사실이었다. 아니라며 사정 이야기를 해도 경찰은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한단다. 목사리에 묶인 개처럼 묶여 그들에게 끌려서 한참을 내려가니 경찰차가 대기하고 있다. 그들은 나를 경찰차에 태워 경찰서까지 데리고 갔다. 그들은 내 배낭을 샅샅이 뒤지고 문초를 시작했다. 사실대로 말을 해도 그들은 “너는 청송교도소에서 나온 탈주범이 아니면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온 간첩일 거야. 순순히 자백해. 그러면 자수한 것으로 해서 징역을 덜 살게 해 줄 테니까.” 했다.
그들은 내 이야기를 듣고 “야! 네 말을 믿을 사람이 있겠냐? 거짓말하지 말고 솔직히 이야기해.”
수갑에 채워진 채로 나는 그들에게 등짝에 주먹질은 기본이었으며 싸다구는 보너스였다. 주민등록번호 조회를 했는지 경찰은 나를 구치감에 넣고 기다리라고 했다. 우리 집에서 나를 찾다가 못 찾으니 실종 신고를 한 것으로 확인되자, 몇 시간이 지난 다음에 구치감에서 나를 꺼내 놓고는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다. 조사관은 근 10개월 동안이나 깎지 않은 머리며 세탁 안 한 옷에서 나는 냄새, 그 꼴이 안 돼 보였는지 계급장이 없는 낡은 경찰 작업복 한 벌을 주었다. 그리고 돼지국밥을 한 그릇 시켜 주었다. 근 10개월 만에 밥 다운 밥을 먹은 것이다. 색다른 맛이었고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 경찰은 내 몸에서 냄새가 심한지 가까이하려 않는다. 헐렁거리는 바지를 경찰 바지로 갈아입고 허리띠를 매고 보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경찰서에서 얼마 만에 머리를 감고 세수를 했는지 모른다. 하루가 지나자 경찰이 면회실로 나를 데리고 갔다. 꿈에도 그리던 아내와 아이들이 나를 보고는 멈칫멈칫하더니 멍하니 서 있다. 면도도 안 하여 털북숭이에다가 미친년 머리 같은 나를 보고는 믿기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이것이 생시인가 아닌가? 가족과는 완전히 등지고 수행하는 스님같이 하느님 성모님께 기도하다 죽는다고 떠난 사람이 아내와 자식을 보자 마음이 변한 것이다. 순식간에 달려들어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껴안자 아내도 덩달아 부둥켜안고는 온 가족이 함께 한 덩어리 되어 울음을 합창했다. 그 합창은 세상에서 둘도 없는 사랑의 합창일 것이다. 어느 음악가가 이 현장의 사랑의 합창 울음을 작곡하고 어떤 악기로 이 사랑의 울음을 표현할 수가 있을까? 울다가 지친 아내는 거머리같이 내게 붙어 눈물만 쏟아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아이들과 내가 전단지를 들고 당신을 찾으러 다니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눈물이 왈칵 솟아났다. 그 소리를 듣고 있던 탈주범이나 간첩이 아니냐며 족쳐대던 경찰이 멍하니 쳐다보다가는 뒤로 돌아섰다.
화가 나지만, 그래도 경찰이 있어 가족을 만나게 된 것이 아닌가! 경찰에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나왔다.
죽음을 향해 떠났던 발걸음은 기적처럼 다시 삶으로 돌아왔다. 희생이 불러온 기적의 봄, 그 봄은 가족과 함께 맞이하는 새로운 생명이었다.
병원으로 가서 검사해보니 간암은 완전히 나았다는 판정이 나왔다. 의사도 놀랐다. 옛날 문헌이 맞은 것이다. 발바닥이 피가 나게 걸으면 만병이 다 낳는다는…….
-<희생이 불러온 기적의 봄> 중에서
안주인 댁은 “네가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데 어디로 연락을 할까? 다른 머슴들이 일을 다 했다.”
발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지 배부른 아내를 보고는 “아니 또 아기를 가진 거야?”
“네.”
“그동안 찾아뵙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뭐 다 지난 일이야.”
“저기 오늘은 제가 어르신께 맡긴 쌀을 받으러 왔는데요?”
“무슨 쌀.”
“그동안 새경으로 받은 쌀을 제가 장례 쌀로 가져간 다섯 가마를 장례 쌀로 열 가마니를 갚고도 남에게 장례 쌀로 놓으셨다는 것을 제가 스무 가마니를 받아 가야 하는데요.”
“그건 난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여.”
“네? 그럴 리가요. 그때 같이 계셨잖아요? 제가 여기서 나갈 적에 장례 쌀 다섯 가마니를 가지고 나간 것이 다입니다. 아시잖아요? 그동안 새경 모인 것을 장례 쌀로 놓았으니 늦가을에 오면 전부 스무 가마니를 주신다고 하신 것 들으셨잖아요.”
“그런 이야기는 난 금시초문이여.”
딱 잡아뗀다. 기가 막혀 주인댁의 얼굴과 아내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니 정말로 모르시나요?”
“그럼 내가 거짓말이라도 한다는 건가?”
나올 때 계산하는 것을 다 들은 주인댁은 다 알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짓말을 한다. 주인댁의 말에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내가 옆에 있다가 “저도 어르신께서 제 남편한테 하시는 말씀을 들었어요.”
“이것들이 보자 보자 하니 짜고서 지랄이네. 시집 장가까지 보내 줬는데 헛소리를 하고 있네. 그 증거를 대봐.”
“네? 증거라니요?”
“장례 쌀을 누구에게 받아서 어디 누구에게 놓았다는 서류가 있어야 할 게 아니야?”
“그거는 돌아가신 어르신께서 알아서 해 준다고 하셨고 서류를 써 주신 것은 없잖아요.”
“그런 소리 하지 말아. 나 지금 그런 걸 따질 정신없다.” 하고는 휭하니 밖으로 나가신다. 바깥의 하늘은 아무것도 없는 비행기 지나간 하늘이다.
-<하늘의 응답>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