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언어가 끊어지고
시간을 초월한 곳에서 만나는
진실된 나
문둥병을 앓고 있었기에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는 외딴 곳에서 은거하여 살던 승찬 대사는 혜가 대사를 만나 법기가 훌륭함을 인정받고 이름을 받게 된다. 『신심명信心銘』을 통해 삼조 승찬 대사께서 말씀하고자 하신 뜻은 무엇인가? 다만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 일승一乘의 가르침을 친절하고 자세하게 알려주고자 함이다.
『신심명』은 삶의 지침이 아니라 견성으로 안내하는 지침이다. 책에서는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무상無常한 오온五蘊이 내가 아니라고 말한다. 언어言語가 끊어지고 과거, 미래, 현재라는 시간을 초월한 곳에서 만나게 되는 참나(眞我)를 말하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는 무상한 오온 너머에서 ‘변하지 않으며 밝게 빛나는 청정한 의식의 세계’라고 설명되는 ‘참나’를 발견하게 된다.
책을 번역한 상경 스님은 “이 순간에도 견성을 하고자 뼈를 깎는 노력으로 수행에 정진하는 모든 수행자들에게 승찬 대사께서 전하고자 하신 간절한 염원이 담긴 말씀이 잘 전달되어 견성성불見性成佛의 지도至道를 이루시는 데 일조一助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한다. 첫 구절부터 마지막 구절까지 일관되게 견성으로 안내하는 승찬 대사의 말씀을 따라가다 보면 진실된 나와 만나게 될 것이다.
책 속에서
違順相爭 어기려는 생각과 따르려는 생각이 서로 다투면,
위순상쟁
是爲心病 이것이 마음의 병이 된다.
시위심병
싫은 것(憎)은 어기고, 좋은 것(愛)은 따르려는 생각들이, 마음을 지배하여 서로 다툰다면, 지도至道는 멀어질 뿐이고, 결국은 내 생각이 나를 괴롭혀서 마음은 병들 뿐이다.
공부가 어려운가?
‘좋아한다. 싫어한다.’고 하는 분별심分別心을 내려놓고, 자신의 내면을 조용히 관조觀照하라!
-p. 22, ‘5. 違順相爭 是爲心病’
須臾返照 잠깐이라도 돌이켜 안으로 비추면,
수유반조
勝脚前空 그곳이 눈앞의 허공보다 낫다.
승각전공
밖으로 향하는 의식을 잠깐이라도 돌이켜 내면을 향하도록 하여보라. 눈앞의 공간은 연기緣起로 펼쳐지는 현상의 세계일 뿐 진여眞如의 세계가 아니다.
현상세계의 공덕도 진여眞如의 공덕이 없으면 그 공덕이 없다. 이원성二元性도 공덕이 있고, 연기緣起도 공덕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공덕이 공덕의 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진여眞如의 공덕이 필요한 것이다.
눈앞의 것이 무가치한 것이 아니다. 눈앞의 것에 대한 참다운 가치를 알기 위해서는 그것의 존재의 당위를 설명할 수 있는 진여眞如가 있는 곳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p. 37, ‘18. 須臾返照 勝脚前空’
將心用心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쓰려고 하니,
장심용심
豈非大錯 어찌 크게 어긋나지 않겠는가?
기비대착
마음을 공부하는 수행자修行者가 공성空性에 이르고자 하면서 ‘이것은 무엇인가? 불성佛性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깨달음은 무엇인가?’라고 깊은 생각에 빠져있다면, 공성空性으로 가는 길에서 벌써 어긋나고 멀어진 것이다.
공성空性으로 가는 묘책은 마음을 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쓰지 않고 내려놓는 데 있는 것이다.
생각을 잠시 쉬고, 들이쉬고 내쉬는 자신의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마음을 쓰면 이견二見으로 흐르는 자신을 볼 뿐이다.
-p. 65, ‘42. 將心用心 豈非大錯’
極大同小 지극히 큰 것은 지극히 작은 것과 같으니,
극대동소
不見邊表 그 끝과 겉을 볼 수가 없다.
불견변표
지극히 큰 것은 그 큼이 밖이 없고, 지극히 작은 것은 그 작음이 안이 없다.
지극히 큰 것은 밖이 없으니 그 겉(表)을 볼 수가 없고, 지극히 작은 것은 안이 없으니 또한 그 끝(邊)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지극히 작고, 지극히 큰 것은 헤아리고 볼 수 없는 점에서 같은 것이듯이 경계도 또한 그러하다. 좋다고 느끼는 경계나 싫다고 느끼는 경계도 결국은 같은 것이다.
-p. 94, ‘67. 極大同小 不見邊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