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추천사]
최주식 시인의 시는 길 위에 있다. 그러나 그 길은 단순히 자동차가 달리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방향을 묻고 존재의 의미를 탐색하는 사유의 공간이다. 도로 위를 안내하는 분홍색 선과 녹색 선 사이에서 그의 시는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면서도 끊임없이 목적지 너머를 응시한다.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경로와 시인이 꿈꾸는 길은 언제나 일치하지 않는다. 그 불일치의 틈에서 시는 탄생한다.
시인은 정해진 좌표보다 아직 가 보지 못한 세계에 더 깊은 관심을 기울인다. 그래서 그의 시선은 길 끝에 도달하는 데 머물지 않고, 늘 ‘원산 저 너머’의 미지의 풍경을 향한다. 현실을 안내하는 기계적 언어와 인간의 상상력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그의 시적 성찰은 더욱 선명해진다. 내비게이션이 알리는 ‘노인보호구역’은 단순한 교통정보가 아니다. 그것은 “더 이상 보호해야 할 아이들”이 없다는(밤의 도로에서 1) 지역공동체의 현실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사회적 징후다.
시인은 일상의 풍경 속에 숨겨진 시대의 표정을 읽어 내며, 익숙한 사물을 통해 우리 사회의 변화와 상실을 포착한다. 그의 시가 현실에 단단히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깊은 울림을 남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래전부터 자동차 전문가로 살아온 그의 이력 또한 시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길 위에서 보낸 수많은 시간은 그에게 독특한 감각과 언어를 선물했다. 그의 시에서 헤드라이트는 “반사를 모르는 두 개의 눈”이 되고(밤의 도로에서 3), 갈림길은 “사람도 아닌 것이 사람을 희롱하는” 존재로 변모한다(내비게이션 블루스). 사물은 기능을 넘어 상징이 되고, 풍경은 철학이 된다. 이러한 전환의 힘은 오랜 관찰과 깊은 사유가 축적된 결과다.
무엇보다 그의 시가 소중한 이유는 속도를 단순한 이동의 수단이 아니라 언어를 생성하는 힘으로 전환시키기 때문이다.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풍경은 사유가 되고, 사유는 이미지가 되며, 이미지는 마침내 찬란한 어휘로 피어난다. 최주식의 시는 길 위를 달리면서도 목적지보다 여정을, 도착보다 발견을 중시하는 시의 미학을 보여 주기에, 최주식의 시와 함께 길 위에 오르는 순간, 우리는 어느새 시인이 바라보는 세계의 동승자가 되어 있는 것이다.
―정일근 시인
[시인의 말]
길을 가다
뒹구는 문장을 본다.
그것들이
나를 깨운다.
그리곤
이제 어쩔 거냐 하며
턱을 괸다.
아침이 오고
밤은 머문다.
책 속에서
<밤의 도로에서 1>
밤의 도로에서 여자가 말을 건다
여기서부터 속도를 줄여야 한다고
분홍 선을 따라가야 한다고
나는 녹색 선을 따라가고 싶지만
이정표가 원산을 가리킨다고
원산까지 차를 몰고 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밤의 도로에서 여자가 말을 건다
여기서부터 노인보호구역이라고
그러니까 속도를 줄여야 한다고
나는 그래 알았다고 중얼거리지만
이곳에는 더 이상 보호해야 할 아이들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안다
밤의 도로에서 여자가 말을 건다
여기서부터 안개 주의 구간이라고
속도를 줄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세상을 보게 될 거라고
나는 내심 그런 세상을 보고 싶지만
보고 싶다고 다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밤의 도로에서 여자가 말을 건다
여기 터널만 지나면 목적지 부근이라고
이제 길 안내를 종료할 때가 되었다고
나는 그러지 말고, 그러지 말고
술이나 한잔하자고
여기서 살짝 샛길로 빠지면
미나리전을 기막히게 하는 집이 있다고
거기선 오래된 비가 내리고
여자는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안다
밤의 도로는 외롭지 않다
<코발트 블루스>
지중해라도 한번 가 보았으면
이 정도 감탄사는 해 줘야 하지
와 코발트색이다 코발트블루야
어쩌면 어떤 시인이 노래했는지 몰라
어떤 노래는 왕조를 무너뜨리기도 하지
코발트는 독의 왕 아님 왕의 독
신비로운 빛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
지금은 독한 언어가 비소가 되는 시대
코발트가 가장 많이 나는 나라
아프리카 무슨 민주공화국
거기서는 푸른 눈의 아이들이
지하 칠백 미터에서 맨손으로
푸른빛을 찾아 하루를 살고
모두 잠든 시간 코발트는
우리의 내일을 충전하는 중이지
스마트폰, 노트북, 전기차, 그리고
배터리 없으면 멈춰 서는 영혼들
어쩌면 어떤 시인이 노래하는지 몰라
달이 지구에서 한 뼘 멀어지는 밤
코발트블루, 처럼 깊고 푸른 밤에
<소나기>
생각이 너무 많아서
소나기 쏟아지는 밤
이러다 떠내려갈지 몰라
너는 자고 가라는 말은
한 번도 안 하더라
이미 신발 끈은 풀어졌고
허리를 숙이기에는
비가 너무 많이 와
신청곡은 여기에 써 주세요
낡은 LP판의 먼지를 털며
너는 꼭 그렇게 말하더라
못에 수북 꽂힌 종이처럼
찔러도 하나 아프지 않고
버스 차창에서 본 너는
다른 사람과 우산을 같이 쓰고 있더라
그 사람 한쪽 어깨는 너무 젖고
여긴 비가 계속 많이 와
시간을 병 속에 담고 싶다고
내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으며
그렇게 말한 건 누구였더라
손끝에서 떨어져 발에 밟힌 건
상심의 바다, 신청곡을 쓴 종이
남항 항구에 불빛이 들어오면
핏속의 소금기는 묽어질 것이다
눈에 담은 풍경은 눈 감으면 사라질 것이다
근데 여긴 비가 너무 많이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