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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 달달한 것은 불안하다

달달한 것은 불안하다
눈길 한 번 마주쳤을 뿐인데
가슴이 부푸는 방식에 대하여
꽈배기 먹는 시절
고수
지금 혼자인 사람
뒷모습을 보다
반려 돌
천년의 사랑(인연)
양파
깨졌다
그리하여
진하지 않은
오로라
수건을 빨다
그래, 그런 거야

2부 / 칸, 칸, 칸 생각들의 집

칸, 칸, 칸 생각들의 집
모든 전설은
길 위에서
오래된 책들의 도서관
일그러진 기억
조약돌의 노래
느티나무 도서관
낚시를 하다
비의 감옥
한 생각을 보내다
끓는 물방울들의 말
욘 포세 방식으로
그랬더라면
불꽃놀이
당신은 누구십니까?
끓는 물방울들의 말

3부 / 기억의 집

기억의 집
당신의 이름으로
사발
아버지의 집
아직도 너를 1
아직도 너를 2
아직도 너를 3
철학이 ?라면, 문학은 !다
어떤 밤
어머니 달빛 받으신다
모호한 상실
시인의 집
일그러진 기억
단 하나의 이유로 쓸쓸해지는
누운 나무

4부 / 포도

포도
숲을 보다
꼬치
각
알 수 없는 일
이웃
날개
씻김굿
거울 앞에서
끝말잇기
그녀, 시집간다
배반의 계절
명주달팽이 1
명주달팽이 2
명주달팽이 3
명주달팽이 4

5부 / 난독

난독
도토리묵
놀이공원
빈혈
스프링
그레고리안 찬트
장난 끝에
파랑새
벽을 치다
혓바닥
고양이의 시간
타인의 시간
木瓜
통창
파프리카
나무 아래 사람 하나가

해설 : ‘당신’이라는 아름다운 은유, 그 얼굴 앞 글자의 방향에 관하여-정훈
저자 소개
저자 : 정선영
정선영 시인은 경남 합천에서 출생하여 2001년 《한맥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사이펀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으로 『우울한 날에는 꽃을 산다』, 『홀로그램』, 『디오니소스를 만나다』, 『달의 다이어트』, 『슬픔이 고단하다』, 『책상 위의 환상』, 『빨랫줄에 걸터앉아 명상 중입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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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무수한 ‘당신’을 본다. 끝없이 밀려오는 물결에 실려 몸으로 들어오는 당신, 가없는 기억 속에서 흘러들어오다 빠져나가는 세계를 지켜본다. 어쩌면 내가 부르는 ‘당신’이라는 기호는 내 모든 존재의 바탕이요, 밑그림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부르지 않아도 처음부터 찾아 헤매었던 당신이 귀를 쫑긋 열고 다가오므로, 나는 당신이 출렁거리는 윤슬처럼 눈을 환하게 밝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생을 받기 전부터 이어져 있던 인연의 손이 건네는 시간을 타고 떠내려가다, 어느 소용돌이치는 골짜기에 이르러 감쪽같이 증발해 버리는 몸뚱이를 바라보는 당신의 눈동자를 기억한다. 이 모든 당신이 있어서 나는 존재한다. 이것은 내 존재론의 근거이며, 숨 쉬며 움직이는 생명의 시학이다.
정선영의 시집은 바로 이러한 사고와 논리의 울타리를 치면서 이 세계를 살아가는 시인의 절규요 탄식이다. 가볍게 툭 내뱉는 듯한 언어라도, 이 말을 지탱하고 연속해서 발화할 수있는 힘을 제공하는 것도 실체인 듯 비 실체인 듯 시인을 사로잡는 ‘당신’이라는 이름의 시니피앙이다. 당신을 부름으로써 내 생각과 형식을 이루는 의미가 마련된다. 그러나 당신은 내 부름에 응답 없는 소리로만 나를 통과한다. 바람에 흔들리며 지나가는 투명한 그림자, 이 물빛의 흐름이 아지랑이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속에 시인의 시선은 붙박여 있다. 당신이라는 이름의 대상이나 객체는 사실 호출되어 가시적인 세계 안으로 들어온 적은 없다. 이는 시적 대상으로서, 그리고 시작詩作의 과녁으로서 놓여 있는 이미지다. 이미지로서 당신을 부름은 당신이 끌고 오는 세계가 촉발하는 언어의 다양한 리듬과 어조를 형성하면서 시편을 단단하게 떠받치고 있다. 이러한 ‘당신론論’으로서 이번 시집의 독특함은 시인의 느낌과 감각적 형상을 이루는 바탕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한다.
-정훈(문학평론가)

시인의 말

글을 쓴다는 것은
내가 나를 들여다보는 일.

고요가 될 때까지
다 털어내려 한다.

텅 비어버린 속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책 속에서

<달달한 것은 불안하다>

나는 달콤한 것을 싫어해, 너는 조금 달콤하다고 가슴이 부푸는 건 아니라고, 자꾸 내게 초콜릿을 권하고 말랑카우를 선물한다. 주머니 속에서 꺼내는 손이 녹아내릴까 봐 너의 손바닥 위 꿈을 하나 집어 입안에 넣는다. 달콤한 것들은 입에 넣기 전에 침이 고이게 하지 혀로 굴리면 침은 사라지고 단맛만 흥건하게 물결친다. 물밑 펄 속에 얽히고설킨 부드럽고 은밀한 너의 달콤한 약속들이 나의 긴장을 풀게 하지 너의 등 뒤에서 낭창낭창 칼날이 번득이는 것을 설핏 본 듯, 너의 초콜릿 같은 속삭임이 너의 달달한 말이 쌓여갈수록 불안은 맹그로브 나무처럼 뿌리를 증식하고 뻗어나간다.

<꽈배기 먹는 시절>

꽈배기 같은 구름 한 봉지 샀어요
달콤한 눈물 번들거려 흰 모래 뿌려요
꽈배기 구름의 끝을 벌려 비틀면 노란 리본이 돼요
종이 밖으로 미끌거리는 슬픔은 손가락 지문을 남겨요
물티슈가 없어 손가락을 쪽쪽 빨고 바지에 쓱 문질러 닦아요
버석거리는 슬픔을 은폐하기 위해 입술을 핥아요
아무 일 없다는 듯
무언가를 찾는 척 두리번거리는 거죠
늘 그랬어요. 무표정 연습을 해요
표정이 없으니, 주름이 덜 생기는 것은 덤이에요
얼굴에 표정이 없다고 보톡스 맞았냐고요?
보톡스를 맞지 않아도 마음을 굳히면 꿋꿋하게 굳을 수 있어요
한번 해 보실래요
달콤해도 씁쓸해도 즐거워도 행복해도
튀는 감정을 조절하세요
꽈배기같이 배배 꼬인 마음도 살살 달래면 슬슬 풀어져요
심술 난 바람 같은 생각들이 흔들어도 묵묵히 견디세요
가끔 이렇게 꽈배기 하나 뜯어 먹으면
밖으로 번지는 감정들 감쪽같이 숨길 수 있죠
배배 비틀린 상처도 꿀꺽 삼키고 아무렇지 않은 척.

<천년의 사랑(인연)>

고대에 알던 사내에게서 문자가 왔다.
‘당신 잘 지내고 있지? 나는 잘 죽어서 영원한 신화가 되었소.’라고

흰 얼굴에 환한 미소와 순한 눈빛이 빛나던
구불거리며 검게 빛나는 머리카락
그는 나의 첫사랑이었다
전생에서 그는 멋진 기사였고, 아름다운 화랑이었다.

그는 매 생마다 찾아와 흔적을 남기고 사라지곤 한다.

그가 스쳐 가던 한겨울엔 훈풍이 볼을 스쳤고,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거리에서 그를 본 듯해서 뒤돌아보면 파란 하늘 희고 탐스러운 뭉게구름으로 둥실 떠 있었다.

노란 개나리 진저리치던 봄날의 길을 함께 걸었고, 걷다가 주저앉은 내게 넓은 등을 내어주던 그는 “그대의, 그대에 의한, 그대를 위한” 이라 했다.

때로는 사랑스러운 아이의 미소 속에, 아름다운 청년의 빛나는 눈동자 속에, 중년의 듬직한 발걸음으로, 황혼에 빛나는 느긋한 노신사로 매 순간 다른 모습으로 스쳐 가며 확인하고 사라지는 오래된 나의 처음인 사람, 한때 그러한 젊음과 늙음을 모두 가졌던 그대.

그대와 나, 몇 생을 오가며 서로를 느끼고 뒤돌아보네.
천 년을 오가는 그대는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아 겹겹으로 쌓인 그리움이네.

<칸, 칸, 칸 생각들의 집>

*
구석구석 쌓이는 먼지, 머리카락, 사람이 움직이면 먼지가 일고 머리카락이 떨어지고,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에도 먼지는 내리고 쌓이고, 눈에 보일 듯 말 듯 미세한 것들의 힘은 강하다. 바위보다 끈기 있게 조용히 내려 쌓이는 먼지의 힘.
*
펼쳐진 들판 같은 마음에 풀들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알아듣지 못해도 아름답고 싱그러웠다. 바람에 흔들리고 달리고 걷는 초록의 속삭임이 있었다.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바닥에 누워 귀 기울이던 날들. 오랜 시간이 지나 그들 아래 누우면 그들의 말을 해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햇살이 비치는 거실에 당신과 마주 앉으면 당신의 무릎 위로 정오의 햇살이 물결친다. 무릎을 타고 흐르는 금빛 물결이 내 발등을 적신다. 열 개의 발가락을 간질이며 빛의 찰랑거림에 거품이 인다. 발가락을 꼼지락거린다. 간지러웠다. 빛의 장난에 졸음이 온다.
*
짙푸른 밤하늘로 나비의 날개처럼 입김이 날아간다. 줄무늬 유리창엔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설렁설렁 농담으로 허물어지는 당신의 미소가 날아오르네. 나비 같은 혀 속으로 날름 안착하는 즐거운 소름이 돋아나네.
*
당신과 내가 부딪히는 것이 당신의 전자기력과 나의 전자가 반발하기 때문이라면 나는 당신을 당신은 나를 서로 밀어내고 있었던 것일까. 절벽 끝까지 가도 잘 멈추면 살아낼 수 있지, 그러나 거길 넘어가면 우린 끝이지. 사건의 지평은 블랙홀 속으로 들어가는 경계라는데 우리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면벽하는 나무>

어떤 생각은
아주 오랫동안 어두운 동굴 속에서
웅얼웅얼 혼잣말하다가
흰 연기처럼, 긴 한숨처럼
스스로 묶인 끈을 풀고 세상 밖으로 나온다

밖이 시끄러울수록 안은 더욱 고요하다
안으로 채워 가는 상처가 물결친다
말들의 소용돌이에 침묵의 깊이를 더한다

가지를 흔들어 잎을 털어내는 바람에도
안으로 더욱 단단해지는 나무
뿌리를 깊게 내려
우물 하나 가슴에 판다

발가락 끝이 가는 물줄기에 닿으면
긴긴 어둠이 슬며시 눈을 뜨고
바깥의 소란들이 조용히 물러간다

살아갈수록 안으로 다짐하고 채워 가는 일이
오롯이 나의 세계를 이루는 일
상처를 스스로 다스리고 치유하는
무너지지 않는
우주 하나
만드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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