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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후기

산지니
편집 강나래
부산시 해운대구 수영강변대로 140 부산문화콘텐츠콤플렉스 626호
전화 051-504-7070 ∥ 팩스 051-507-7543
revekkawings21@daum.net∥http://www.sanzinibook.com ∥http://sanzinibook.tistory.com
저자 소개
저자 : 트엉하
1981년생으로 현재 하노이에 거주하며 작품 활동 중이다. 그녀는 “문학은 사랑을 통해 인간을 어둠에서 빛으로 끌어내는 힘이다.”라고 말한다. 출간 작품으로는, 『한 길』, 『유랑』, 『PTSD의 사람』, 『불온한 변경』, 『NALIS-운명에 밀려』, 『지우의 어둠』, 『불멸의 원혼들』, 『원한의 사랑』, 『대가』 등이 있다.

역자 : 배양수
부산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교수로 재직(1995~2025)했다. 『이것이 베트남이다』, 『베트남 문화의 즐거움』 등의 저서와 『남프엉 황후와 바오다이 황제의 발자취를 따라』, 『랑하의 밤』, 『시인: 베트남 현대시 모음』, 『시인 강을 건너다』, 『하얀 아오자이』, 『베트남 베트남 사람들』, 『정부음곡』, 『춘향전』, 『베트남 법규 모음』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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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그들이 전쟁에서 본 것과 잃은 것들

달랏의 폭풍우 치는 밤, 작가 람은 글을 쓰던 중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자신을 부르는 것을 느낀다. 창문 밖 숲에서 섬광과 함께 피 묻은 얼굴의 군인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람은 강렬한 호기심에 이끌려 숲속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비가 점점 굵어지고, 현실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그녀는 기묘한 공간으로 빨려들어 간다. 그곳은 영혼들의 중간지대였고 람은 자신을 “전언자(전하는 자)”라 부르는 바다의 신을 만난다. 살아 있는 동안 해결하지 못한 감정과 기억에 묶여 윤회의 문으로 가지 못한 이들이 람을 찾아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베트남 북부 국경 전쟁에서 죽은 젊은 베트남 병사 훙과, 같은 전쟁에 참전한 늙은 중국인 병사 왕의 대화는 쉽게 섞이지 않는다. 또한 과거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의 민간인 학살을 방관하며 베트남공화국 편에 서 있던 닷의 등장으로 갈등은 해결되기보다는 더 커지는 꼴이 된다. 우크라이나 보병 돈제프스키는 옆에서 죽어가던 동료를 떠올리며 전쟁의 명분을 묻고, 팔레스타인 난민 모하메드는 국적을 잃어버린 이들이 마주하는 현실을 묻는다. 미국 정치와 국제 질서를 위한 흐름을 찬양하는 미국인 리처드의 등장 또한 시의성이 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이래 양국의 사상자가 200만 명에 육박한다고 보고했고, 전 세계 시민들은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미국·이란 전쟁이 천문학적 규모의 소모전인 동시에 대량 학살에 버금가는 일이었음을 목도했다. 작가는 소설 속 인물과 소설 밖 우리에게 무엇을 위해 싸웠냐고 묻는다. 전쟁의 명분과 당위는 아직도 유효한가?

베트남 전쟁 문학 특유의 깊지만 고요한 정서를 만나다.

『표류』를 번역한 배양수 교수는 베트남 유학 1세대로 베트남 문학을 전공했으며, 부산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에 재직하며 베트남 소설을 국내에 소개해왔다. 검은 목면화, 끓어오르는 늪, 자욱한 안개, 돌풍 아래 떨어지는 꽃잎 등 베트남 문학 특유의 자연과 영혼이 뒤섞인 서사 구조를 한국어로 옮기며 베트남 전쟁 문학 특유의 깊지만 고요한 정서를 한국 독자에게 전한다. 배양수 교수의 번역을 통해 ‘슬픔’이나 ‘그리움’ 같은 단순한 언어로는 담기지 않는 베트남 특유의 깊고 울리는 정서를 느낄 수 있다.
『표류』는 끝없이 굴러가는 수레바퀴처럼 아득하지만 그렇기에 고유한 다양성과 상대성을 발견하는 윤회사상에 기초한다. 작품 속 영혼들의 이야기마다 역사의 모순이 존재하며, 그렇기에 트엉하는 묻는다. “우리는 누구였으며 무엇을 위해 싸웠는가?” 하지만 그 질문에 대한 정답은 드러나지 않는다.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승자나 패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느 나라 사람이든, 어느 시절을 살았든 결국 한 인간으로서 느꼈을 고통과 기억을 통해 한 시대를 견디고 간 영혼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다.

책 속에서

p52 “하하, 전쟁이란 그런 거지. 피해 없는 전쟁이 어디 있겠나.”
“그럼 우린 왜 끝까지 죽음 속으로 돌진해야 하죠?”
왕 씨는 곁눈질로 청년을 보았다. 자신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질문이 들리자, 그는 문득 생각에 잠겼다. 만약 자신이 총을 들지 않았다면? 만약 그 참혹한 전장 속으로 뛰어들지 않았다면?

p109 언뜻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들이 사람의 마음을 평생 괴롭힌다. 전쟁 속에서 사람들은 평화를 갈망한다. 총성이 멎고, 밤길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삶. 왕 씨도 전쟁을 겪었지만, 그 전쟁은 그의 집 대문을 두드리진 않았다. 만약 그 집단 이주가 꿈이었다면 그에게 더 오래 붙드는 것은 오히려 자신의 삶이었다.

p212 “누구든 꿈꿀 권리는 있어. 하지만 꿈만 꾸고 기다리기만 한다면, 우리는 절대 그 빛을 볼 수 없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훙과 두 명의 나이 든 사내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그래서 나는 싸우기로 한 거야.”

p249 “만약 네가 말하듯 네가 죽인 자들이 모두 네게 맞서는 자, 네 권력과 이익의 싸움에서 대립하는 자였다고 하자. 너는 옳은 것을 향해 그랬다고 말하고 싶겠지. 그렇다면 묻겠다. 도시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숲과 들에 살포된 수십만 톤의 고엽제는? 전후 수십 년이 지나도록 상처를 남긴 그 모든 것, 그 피해자들까지 적이었느냐? 그들이 네 나라를 대적하는 나라의 민중이었기에 언젠가는 네게 맞설지 모른다고 여겨 죽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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