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책 속으로
소설은 ‘나’의 부부와 처형 부부의 삶을 대비하며, 물질적 풍요가 반드시 행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보여 준다. 투기로 큰돈을 번 처형의 남편은 경제적으로 여유롭지만, 외도와 폭력을 일삼으며 아내에게 깊은 상처를 준다. 반면 ‘나’의 부부는 끼니를 걱정해야 할 만큼 궁핍하고 그로 인해 때때로 갈등을 겪지만, 서로를 아끼고 의지하려는 마음만은 끝내 놓지 않는다. 처가에 다녀온 뒤 아내가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도 의좋게 지내는 것이 행복’이라고 하자, ‘나’는 그 말에서 위안을 얻으며 자신의 삶을 긍정하려 한다. 그러나 이 만족감은 온전한 행복의 확신이라기보다, 가난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생겨난 씁쓸한 자기 위안에 가깝다. 이 장면은 부부 사이의 애틋한 정을 드러내는 동시에, 궁핍한 삶을 견디며 스스로를 달래야 하는 인물들의 처연한 현실을 함께 보여 준다.
현진건은 예리한 관찰력과 객관적인 묘사를 통해 소설의 사실성을 극대화했다. 그는 아내의 옷이 전당포로 넘어가는 과정, 당목 옷과 청목당혜 같은 소품들, 그리고 인물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치밀하게 묘사한다. 특히 감정을 직접적으로 토로하기보다 상황과 행동을 통해 인물의 심리를 보여 주는 ‘보여 주기’ 기법이 탁월하다. 처형이 사다 준 비단신을 신어 보며 기뻐하는 아내의 모습을 바라보는 남편의 시선이나,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끌어안는 마지막 장면의 묘사는 그 어떤 설명보다 강렬하게 독자의 감정을 흔든다.
--- pp.26-27
한참 동안 서로 아무 말이 없었다. 가슴이 어째 답답해지며 누구하고 싸움이나 좀 해보았으면 소리껏 고함이나 질러 보았으면 실컷 울어 보았으면 하는 일종 이상한 감정이 부글부글 피어오르며, 전신에 이가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듯 옷이 어째 몸에 끼여 견딜 수가 없다.
나는 이런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점점 구차한 살림에 싫증이 나서 못 견디겠지?”
아내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르게 정신을 잃고 섰다가 그 게슴츠레한 눈이 둥그레지며,
“네에? 어째서요?”
“무얼 그렇지!”
“싫은 생각은 조금도 없어요.”
이렇게 말이 오락가락함을 따라 나는 흥분의 도(度)가 점점 짙어 간다. 그래서 아내가 떨리는 소리로,
“어째 그런 줄 아셔요?”
하고 반문할 적에,
“나를 숙맥으로 알우?”
라고, 격렬하게 소리를 높였다.
아내는 살짝 분한 빛이 눈에 비치어 물끄러미 나를 들여다본다. 나는 괘씸하다는 듯이 흘겨보며,
“그러면 그것 모를까! 오늘날까지 잘 참아 오더니 인제는 점점 기색이 달라지는 걸 뭐! 물론 그럴 만도 하지마는!”
이런 말을 하는 내 가슴에는 지난 일이 활동사진모양으로 얼른얼른 나타난다.
--- pp.36-37
이틀 뒤 해 어스름에 처형은 우리 집에 놀러 왔었다. 마침 내가 정신없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 즈음에 쓸쓸하게 닫혀 있는 중문이 찌긋둥 하며 비단옷 소리가 사으락사으락 들리더니 아랫목은 내게 빼앗기고 윗목에 바느질을 하고 있던 아내가 문을 열고 나간다.
“아이고, 형님 오셔요.”
아내의 인사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처형이 계집 하인에게 무엇을 들리고 들어온다.
나도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그날 매우 욕을 보셨지요. 못 잡숫는 술을 무슨 짝에 그렇게 잡수셔요.”
그는 이런 인사를 하다가 급작스럽게 계집 하인이 든 것을 빼앗더니 그 속에서 신문지로 싼 것을 끄집어내어 아내를 주며,
“내 신 사는데 네 신도 한 켤레 샀다. 그날 청목당혜를….”
말을 하려다가 나를 곁눈으로 흘끗 보고 그만 입을 닫친다.
“그것을 왜 또 사셨어요.”
해쓱한 얼굴에 꽃물을 들이며 아내가 치사하는것도 들은 체 만 체하고 처형은 또 이야기를 시작한다.
“올 적에 사랑양반을 졸라서 돈 백 원을 얻었겠지. 그래서 오늘 종로에 나와서 옷감도 바꾸고 신도 사고….”
그는 자랑과 기쁨의 빛이 얼굴에 퍼지며 싼 보를 끌러,
“이런 것이야!”
--- pp.52-53
수지 1921년이면 일제 강점기잖아요. 그때는 다들 가난하지 않았나요? 왜 굳이 제목을 이렇게 지었을까요?
선생님 좋은 질문이야. 물론 그때는 나라 전체가 가난했지만, 이 소설 속의 가난은 조금 특별한 의미가 있어. 주인공인 ‘나’는 그냥 일자리가 없는 백수가 아니라, 중국과 일본으로 유학까지 다녀온 지식인이거든. 그런데도 밥 먹을 돈이 없어서 아내의 옷을 전당포에 맡겨야 할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해.
태우 헐, 유학까지 다녀왔는데 밥을 굶어요? 일을 안 하는 거예요, 아니면 못 하는 거예요?
선생님 그게 바로 이 소설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시대적 배경이야. 당시 주인공처럼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을 두고 지식계급, 그러니까 인텔리겐차(Inte lligentsia)라고 불렀고, 줄여서 인텔리라고 했어. 그런데 돈 때문에 공부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채 유학을 마치고 조선으로 돌아오니 일할 자리가 거의 없었던 거야. 괜찮은 관직이나 돈이 되는 사업은 이미 일본인이나 친일파들이 다 차지하고 있었거든. 조선인 지식인이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던 셈이지.
--- pp.59-60
겨울비의 불길한 암시와 심리적 배경
소설의 첫 문장을 여는 겨울비에 대한 배경 묘사는 단순한 날씨 이상의 기능을 수행한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차가운 겨울비는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음산하고 우울한 정서를 형성하며, 김 첨지가 마주할 비극적 결말을 암시하는 복선 역할을 한다. 인력거를 끄는 김 첨지의 노동은 이 궂은비를 뚫고 이루어지는데, 빗물에 젖은 그의 육체적 고단함은 앓아누운 아내를 두고 나왔다는 심리적 죄책감과 뒤섞여 그를 짓누른다. 작가는 배경을 통해 인물의 내면 심리를 투영하고, 앞으로 닥쳐올 죽음의 그림자를 시각적이고 촉각적인 이미지로 형상화함으로써 소설의 긴장감을 밀도 있게 끌어올린다.
행운과 불안의 반비례, 그리고 생존의 딜레마
이야기는 김 첨지가 연이어 손님을 태우며 뜻밖의 큰돈을 벌게 되는 과정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돈이 쌓여 갈수록 그의 마음속에는 기쁨보다 불안이 더욱 짙게 번져 간다. 돈을 벌어야 아픈 아내에게 먹일 설렁탕을 사고 굶주린 자식의 끼니를 마련할 수 있지만, 정작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병든 아내 곁을 비워야 한다는 사실은 그의 삶이 얼마나 처절한 모순 위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 준다. 이러한 ‘생존의 딜레마’는 식민지 빈민의 현실이 얼마나 위태롭고 절박했는지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집에서 멀어질수록 그는 불안을 애써 떨쳐 내기 위해 다리를 재게 놀리며 나는 듯이 달리고, 반대로 집이 가까워질수록 설명할 수 없는 불길함에 사로잡혀 다리가 무겁게 굳어 버린다. 나무등걸 같은 다리를 스스로 다그치며 갈팡질팡 황급히 뛰어가는 김 첨지의 모습은, 가난이라는 거대한 수레바퀴 아래 짓눌린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 pp.105-106
“남대문 정거장까지 말씀입니까?”
하고, 김 첨지는 잠깐 주저하였다. 그는 이 우중에 우장도 없이 그 먼 곳을 철벅거리고 가기가 싫었음일까? 처음 것, 둘째 것으로 그만 만족하였음일까? 아니다, 결코 아니다. 이상하게도 꼬리를 맞물고 덤비는 이 행운 앞에 조금 겁이 났음이다. 그리고 집을 나올 제 아내의 부탁이 마음에 켕기었다. - 앞집 마나님한테서 부르러 왔을 제 병인은 그 뼈만 남은 얼굴에 유일의 샘물 같은 유달리 크고 움푹한 눈에 애걸하는 빛을 띠며,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 제발 덕분에 집에 붙어 있어요. 내가 이렇게 아픈데….”
라고 모기 소리같이 중얼거리고 숨을 걸그렁걸그렁하였다. 그때에 김 첨지는 대수롭지 않은 듯이,
“아따, 젠장맞을 년, 별 빌어먹을 소리를 다 하네. 맞붙들고 앉았으면 누가 먹여 살릴 줄 알아.”
하고 훌쩍 뛰어나오려니까 환자는 붙잡을 듯이 팔을 내저으며,
“나가지 말라도 그래, 그러면 일찍이 들어와요.”
하고 목멘 소리가 뒤를 따랐다.
정거장까지 가잔 말을 들은 순간에 경련적으로 떠는 손, 유달리 큼직한 눈, 울 듯한 아내의 얼굴이 김 첨지의 눈앞에 어른어른하였다.
“그래 남대문 정거장까지 얼마란 말이요?”
하고 학생은 초조한 듯이 인력거꾼의 얼굴을 바라보며 혼잣말같이,
“인천 차가 열한 점에 있고 그다음에는 새로 두 점이든가.”
라고 중얼거린다.
“일 원 오십 전만 줍시오.”
이 말이 저도 모를 사이에 불쑥 김 첨지의 입에서 떨어졌다. 제 입으로 부르고도 스스로 그 엄청난 돈 액수에 놀래었다. 한꺼번에 이런 금액을 불러라도 본 지가 그 얼마 만인가? 그러자 그 돈 벌 욕기가 병자에 대한 염려를 사르고 말았다. 설마 오늘 내로 어떠랴 싶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제일, 제이의 행운을 곱친 것보다도 오히려 갑절이 많은 이 행운을 놓칠 수 없다 하였다.
“일 원 오십 전은 너무 과한데.”
이런 말을 하며 학생은 고개를 기웃하였다.
“아니올시다. 잇수로 치면 여기서 거기가 시오 리가 넘는답니다. 또 이런 진날에는 좀 더 주셔야지요.”
하고 빙글빙글 웃는 차부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넘쳐흘렀다.
--- pp.112-113
제목에 숨겨진 역설(Irony)의 미학
수지 선생님, 이 소설은 제목과 결말이 너무 달라요. 제목은 ‘운수 좋은 날’인데 내용은 정반대잖아요.
선생님 맞아. 이 소설의 제목은 한국 문학에서 가장 유명한 반어적 표현의 예로 자주 이야기된단다. 겉으로 드러난 말과 실제 의미가 정반대일 때 우리는 그것을 ‘반어’라고 하지. 작가가 굳이 이런 제목을 붙인 까닭도 바로 결말의 비극성을 더 강하게 드러내기 위해서야. 처음부터 제목이 ‘김 첨지의 슬픈 날’이었다면, 독자가 받는 충격은 훨씬 덜했을 거야. 가장 운이 좋아 보였던 날에 가장 소중한 아내를 잃는다는 설정, 바로 이 상황적 아이러니가 김 첨지의 비극을 더욱 처절하게 만들어.
--- p.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