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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시인의 말

1부

길 좀 물읍시다
꼭
대기실 ― 요양원
낱
덧칠
돌아가셨다는 말
그래그래
말 무덤
말이 머리 깎고 절로 간 까닭
아!
아무도島
어비魚飛
유전流轉
울지 못하는 징
조문

2부

창문 하나쯤 열어두고
탑 쌓기 ― 作詩
화석
가치 기준
겉옷
겨울나무
고백
궁리
그림자 받아들이다
낮달처럼 쓸쓸한 당신
다시 봄
돌아가자
두 개의 귀는 한 개의 입을 당하지 못하고
때를 지우다
마음 그림자

3부

마음
무릇
무명의 꿈
무의식
무장해제
세월의 눈치를 보다
무한 속에서
수식변폭修飾邊幅
술酒 이야기
스스로 그러하게
시詩 죽비
어떤 구원처럼
여기까지 ― 때를 생각하다
아련한 주파수
윤회를 생각하는 아침

4부

보이지 않는다고
참, 眞
빙자
잃어버린 시집
저물어 가는 거
좀 울어도 되나요?
중독
해거름
회귀
흉내

해설┃유성호
존재론적 기원과 궁극을 찾아나서는 서정의 사제
저자 소개
저자 : 이순희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단국대학교 한문교육과,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숭실대학교 기독교 대학원 기독교 상담학과를 졸업했다. 2002년 『심상』으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는 『꽃보다 잎으로 남아』가 있고, 가곡 독집 『어디로 가는가』, 『아무도(島)』가 있다. 동국 문학상, 애지문학상, 한국 창작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현재 시인이자 작시가로서 한국 문인 협회와 한국 예술가곡 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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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사물에서 삶의 본질을 발견하는 시선

이순희의 시는 특별한 사건보다 우리 곁의 평범한 사물과 풍경에 오래 머문다. 개나리, 숲, 기차, 그림자, 주민등록번호, 창문 하나까지도 시인에게는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사물의 존재 방식을 세심하게 바라보며 그 안에서 인간의 삶과 시간의 의미를 길어 올리는 것이 이 시집의 가장 큰 특징이다.

시간을 품은 기억과 존재의 회귀

이 시집에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깊은 성찰이 흐른다. 부모와 고향, 계절과 추억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오늘의 나를 이루는 존재의 뿌리로 되살아난다. 「화석」, 「회귀」, 「돌아가셨다는 말」 등의 작품은 기억을 통해 삶의 근원을 되짚으며, 떠나온 자리로 돌아가는 일이 곧 자신을 다시 발견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담백한 언어로 전하는 깊은 울림

이순희의 시는 화려한 수사보다 간결하고 명료한 언어를 선택한다. 절제된 시어와 단단한 문장은 사물과 삶의 본질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며, 독자에게 오래 머무는 울림을 전한다. 짧은 언어 속에 응축된 사유는 읽을수록 깊이를 더하며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삶을 다독이는 따뜻한 긍정

시집의 마지막에 이르면 모든 시간은 '그래, 그래'라는 한마디로 귀결된다. 상실과 아픔, 기쁨과 그리움까지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시인의 태도는 독자에게 조용한 위로를 건넨다. 저물어 가는 것들 속에서도 다시 봄을 발견하고, 흔들리는 순간마다 삶을 긍정하는 마음은 이 시집을 따뜻한 서정으로 완성한다.
담백하면서도 깊이 있는 언어로 삶과 시간을 성찰한 『그래, 그래』는 사물과 계절, 사람과 기억을 통해 존재의 본질을 되새기는 서정시집이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고 싶은 독자에게, 이 시집은 '그래, 그래'라는 가장 다정한 한마디처럼 오래도록 마음에 머무는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책 속에서

다그치지 않고 들어주는 말
세상에 얻어맞고 쓰러져도
안아서 일으켜 세워 주는 말
그래그래

오월의 숲엔 이 말씀 더 푸르고 짙네
저세상 가신 아버지
생시처럼 목소리 그윽하시네
나를 아이같이 감싸 주시네
울음 참은 내 얘기 다 들어 주시네
그래그래
눈앞이 환해 지네
- 「그래그래」 전문

핸드폰 저장고에 유물처럼 보관된 아버지의 주민등록번호
지금까지 생존하신다면 백 살을 갓 넘긴 나이인데
가신 지 어느새 30년이 흘렀다

손가락으로 글 짚어 읽듯 아버지의 파란만장을 짚는다

의병의 집안에 태어나
일제의 집요한 감시에 오금도 못 펴고 살았다
조국 산천 지키시던 당신의 아버지는 집을 찾지 않았다
나라에 목숨 바친 조상이 남긴 것이라곤 지독한 가난뿐이었지만
그는 그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일제 탄압과 동란을 온몸으로 맞으며 파란곡절 다 겪었다
저세상으로 먼저 간 아내 대신하여 딸을 업어 키웠다

이제는 사용 만기 지난 아버지 주민등록번호가
내 가슴 켜켜이 쌓인 암석의 지층을 바스러지지 않게 붓질한다

그 속에 살아 계시는
화석, 아버지!
- 「화석」 전문

기차는 제천역에 멈춰 섰네
창밖은 어두워 오고
뒷자리에 탄 처녀들
낯선 역 감상하는 사이
기차는 다시 출발하네

창밖은 더 어두워지고
유리창엔 사람들 비추어 떴네
두고 온 고향 떠올리는지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잠겼는지
사람들 저마다 수심이 가득하네

온종일 밖으로만 향했던 마음
이제 안으로 거두어들일 시간
기차는 점점 더 깊은 어둠을 달리고
나도 내 속으로 빠져드네

다시 창밖을 보니
기차는 캄캄한 어둠 속 달리며
돌아가는 중이네
내가 떠나온 그곳으로
- 「회귀」 전문


개나리 위에 눈꽃 얹혔네
때 아닌 폭설에 거리는 얼어붙고
봄옷으로 갈아입은 사람들
겨울처럼 떨고 있네

계절도 철이 든다는 것은
이렇게 온 천지가
한 번 뒤집어진다는 뜻

언 땅을 갈아엎고 씨를 뿌리듯
내 마음 묵정밭도 뒤집고 갈아놓아야
또다시 한 계절을 건널 수 있다고
이렇게 서서히 철들어 가고 있다고
눈 속의 개나리 떨면서도 환하네
- 「다시 봄」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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