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여행작가 태원준 7년 만의 산문집
109개국 900여 도시를 누빈 방랑의 기록
어머니와 함께 300일간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고 215일간 중남미 대륙을 종단한 세계 일주 3부작 『엄마, 일단 가고봅시다!』, 『엄마, 결국은 해피엔딩이야!』, 『엄마, 내친김에 남미까지!』로 수많은 독자를 울리고 웃긴 태원준 작가. 팬데믹 시기에는 3년간 캠핑카에서 먹고 자며 대한민국 161개 시군 전역의 5,000곳 이상을 돌아 『대한민국 완전정복 가이드북』을 써냈고, 다시 배낭을 메고 106일간 매일 다른 유럽 소도시를 떠돌았다. 2001년부터 2026년까지 25년간 그의 발길이 닿은 곳은 109개국 900여 도시에 이른다.
그 지구별 여행자가 남아시아 여행기 『딱 하루만 평범했으면』 이후 7년 만에 선보이는 산문집 『매일 떠나는 사람』이 김영사에서 출간되었다. 방대한 여정에서 겪은 에피소드 서른 편을 추린 이 책은 모험 소설처럼 흥미진진하다.
“계획대로 되는 건 없지”
창문 밖은 늘 계획 밖
태원준 작가가 전 세계 각지에서 담아온 사진은 100만 장에 이르고, 영상과 메모 파일은 세기조차 어렵다.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그에게도 여행은 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여행을 통해 “허탕도 실패도 낙심도” 모두 삶의 한 축임을 몸소 배운다.
웅대한 성당을 보러 갔더니 공사 중이고, 인어공주 동상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바위만 덩그러니 남아 있고, 말벌에 쏘여 귀국이 아니라 귀천할 뻔하기도 한다. 악명 높은 교도소에 제 발로 들어갔다가 “진정한 자유는 담벼락이나 철문 같은 경계가 없는 곳에서 비로소 누릴 수 있는 것이니 죄는 짓지 말고 살아야지”라고 다짐하는 등, 예기치 않은 상황은 뜻밖의 깨달음을 안겨주기도 한다.
“프라하 카를교에 등장한 독일 총리와 얼떨결에 악수하고 뉴욕 뒷골목에서 〈존 윅〉을 촬영 중이던 키아누 리브스와 눈을 마주치는 것도 당연히 내 예상엔 없었다. 그럴싸한 계획은 웬만해선 틀어지게 마련이지만 예상치 않던 행운도 얻어걸리니 넓게 보면 여행은 결국 본전치기 이상이다. (…) 다 여행이 제멋대로 각본을 쓰고 꾸민 짓이니 피식 웃어넘겨야 다음 장면으로 넘어갈 수 있다.”_35~36쪽, 〈계획대로 되는 건 없지〉
“이 망할 놈의 모험심이란!”
발바닥으로 지구를 읽는, 모험하는 삶
여행자는 얼마나 많은 뜻밖의 순간을 지나야 자신만의 초능력을 얻게 될까? 태원준 작가에게 여행은 모험이다. 영상 58도 사막에서 영하 42도 시베리아까지 넘나들고, 모든 상점이 문을 닫고 트램과 버스마저 운행을 멈춰 “좀비 영화 세트장” 같던 더블린의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만 하루 만에 독도에 다녀오는 등 돌발 상황을 헤쳐나가는 삶이 책 속에 펼쳐진다. 이런 숱한 모험 끝에 그가 얻은 “미세초능력”도 있다. 기차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한 “5분 전력 질주”력, 화장실에 가기 어려운 상황에서 발휘되는 소변 참기력, 낯선 곳에서도 본능적으로 길을 찾아내는 길 찾기력. 모험을 일삼는 여행자만이 얻을 수 있는 필살기다.
그런 작가의 여행 거처는 ‘호텔 방’이 아니라 ‘도미토리’다. 어떤 여행객을 만나 어떤 일을 겪을지 알 수 없는 곳. “별의별 나라 사람들이 몰려들어 별의별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별의별 사건을 일으키는, 그 자체로 작은 지구나 다름없”는 곳. 우는 사람을 꽉 안아주는 할아버지를 만날 수도 있고, 여섯 나라의 음식을 펼쳐놓고 각국의 식문화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는 곳. 도미토리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다채로운데, 작가는 그 소회를 이렇게 적는다.
“호텔 방은 저녁에 들어가 봐야 스마트폰을 끄적거리거나 TV를 보는 게 하는 일의 전부지만 도미토리는 다르다. 옆집, 윗집, 아랫집 이웃과 수다를 떨게 마련인데 이건 그 자체로 새로운 여행이다. 더구나 내 직업상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사고는 그대로 이야깃거리가 되고 글감이 된다.”_96쪽, 〈도미토리라는 작은 지구〉
“가기 전엔 설레고, 가서는 재밌고, 갔다 와선 추억하니까”
여행의 이유와 쓸모
검색창에 도시 이름만 입력하면 맛집과 명소가 줄줄이 쏟아지는 시대다. 여행은 그 어느 때보다 간편해졌고, 분명 “합리적인 소비”다. “가기 전엔 설레고, 가서는 재밌고, 갔다 와선 추억하”니까. 그러나 편리함은 늘 무언가를 지우면서 온다. “종이 노트에 글을 써가며 여행하는 이는 급격히 감소했다. 목적지에 도착한 뒤 직접 발품을 팔아가며 숙소를 구하는 여행자도 이젠 무척 드물다.” 여행이 쉬워질수록 여행이 남기는 흔적은 오히려 옅어지지 않을까.
태원준 작가에게 여행은 쉼의 시간이면서 궁리의 시간이기도 하다. 느림보 외륜선 ‘로켓’을 타며 빠르고 깨끗한 것이 과연 미덕인지 묻고, 티베트 순례자의 고행 앞에서 자신의 믿음이 “인스턴트처럼 가볍고 편리”한 것은 아닌지 묻는다. 그리고 “길 위에서 만난 낯선 이에게 더러더러 예상치 않던 도움을 얻고 배려를 받”으며 하나의 답에 이른다. “우리가 소매치기나 인종차별을 걱정하면서도 떠날 수 있는 건 세상엔 나쁜 사람보다 선한 사람이 훨씬 더 많을 거란 확신” 덕분이라는 것.
“머물던 세상을 떠나면 머물던 세상에 없는 다른 풍경이 보이고, 다른 문화가 펼쳐지고, 다른 일이 벌어진다. 이 사실은 여행이 우리를 유혹하는 결정적 이유”다. “내 두 눈과 두 발이 다 닳을 때까지 지구 곳곳을 방랑하는 일을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라 말하는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묻는다. 여행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는가. 책장을 넘기며 독자는 어느새 스스로 되묻게 될 것이다. 지금 나의 창문 밖에는 어떤 세계가 기다리고 있는가.
추천사
태원준 여행작가의 《매일 떠나는 사람》을 읽었다. ‘25년간 109개국 900여 도시’를 누비며 쓴 기록이라는 편집자의 귀띔도 놀라웠지만 나는 먼저 책의 제목에 마음을 빼앗겼다. ‘매일 떠나는 사람’이라니! 그것은 내가 그동안 시의 제목으로 삼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온 문장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네 삶은 늘 시적이지 않다. 지루하고도 따분하다. 하지만 여행은 그런 일상을 시로 바꿔준다. 더구나 태원준 작가의 문장과 책은 더욱 우리의 인생 자체를 시로 확 바꿔준다. ‘인생이 매일 떠나는 여행’이라는 작가의 속삭임은 이미 청량제의 경지를 넘어 깊은 깨달음에 닿아 있다.
- 나태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