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지독한 권태와 열기에 갇힌 한 여인의 상실,
그녀를 둘러싼 파멸적인 사랑의 기록.
《인디아 송》은 1930년대 식민지 인도의 캘커타를 배경으로 프랑스 대사의 아내 안-마리 스트레테르와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권태와 무기력에 잠긴 사교계의 중심인물 안-마리와 그를 절망적으로 사랑하는 라호르의 부영사를 통해 욕망과 고독, 상실과 죽음의 기억이 펼쳐진다.
그러나 작품 속 사건은 현재 눈앞에서 벌어지는 장면처럼 직접 재현되지 않는다. 정체를 분명히 알 수 없는 목소리들이 인물과 사건에 관해 말하고, 반복되는 음악이 목소리와 뒤섞이면서 이야기는 이미 사라진 과거의 기억처럼 되살아난다. 독자는 완결된 사건을 따라가기보다 서로 어긋나는 목소리와 이미지 사이에서 지나간 사랑의 흔적을 더듬게 된다.
소설·연극·영화의 경계를 넘나들다.
《인디아 송》은 1972년 영국 국립극장의 예술감독 피터 홀의 의뢰로 쓰였지만, 당시 공연은 실현되지 못했고, 이듬해인 1973년 갈리마르에서 책으로 먼저 발표됐다. 뒤라스는 책에 ‘텍스트·연극·영화’라는 부제를 붙여 《인디아 송》이 어느 한 장르로만 규정될 수 없는 작품임을 강조했다.
이 작품에서 인물의 몸과 목소리는 서로 분리된다. 무대 위 인물들은 직접 말하기보다 이미 일어난 사건을 되살리는 듯 느리게 움직이고, 무대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들은 그들의 사랑과 절망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 목소리들은 장면을 설명하는 단순한 해설이 아니라, 화면이나 무대에 나타나지 않는 인물, 지나가 버린 시간, 불완전한 기억을 불러내는 독립적인 서사 장치로 기능한다.
그 결과 독자는 텍스트를 읽으면서 문학의 서사와 영화의 이미지, 연극의 소리와 움직임을 동시에 떠올리게 된다. 이는 문학 작품을 영화로 옮기거나 희곡을 무대화하는 일반적인 각색을 넘어, 장르 그 자체를 다시 묻는 뒤라스의 실험이었다. 뒤라스는 몸과 목소리, 이미지와 대사, 현재와 과거를 서로 어긋나게 배치함으로써 문학과 연극, 영화가 상호 침투하는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 냈다.
알랭 레네가 연출한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의 시나리오를 통해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은 뒤라스는 이후 직접 영화 연출을 하면서 자신만의 영화 언어를 발전시켰다. 무대로 이어지지 못했던 《인디아 송》 역시 뒤라스가 직접 영화로 옮겼다.
1975년 공개된 영화 《인디아 송》은 화면 속 배우들의 신체와 사전에 녹음한 화면 밖 목소리를 분리하는 대담한 ‘보이스오버’ 형식을 보여 준다. 여기에 카를로스 달레시오의 반복적인 음악과 배우들의 느리고 절제된 움직임이 더해지면서, 뒤라스 특유의 실험을 영화 언어로 확장시켰다. 이 작품을 통해 뒤라스는 작가를 넘어 영화감독으로서도 자신의 명성을 굳혔다.
문학과 연극, 영화는 《인디아 송》 안에서 원작과 각색의 관계로 명확히 나뉘지 않는다. 텍스트는 목소리와 음악으로 전환되고, 목소리와 음악은 다시 이미지와 신체의 움직임을 변화시킨다. 각각의 매체가 서로를 비추고 변형하면서 새로운 감각과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인디아 송》은 뒤라스가 문학과 영화를 별개의 영역으로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창작 세계 안에서 결합했음을 선명하게 보여 준다.
집필 당시 무대에 오르지 못했던 《인디아 송》은 1993년 영국 웨일스 몰드의 시어터 클루이드에서 애니 캐슬다인과 애너벨 아든의 공동 연출로 무대에 올랐다. 작품이 쓰인 지 20여 년 만에 이루어진 이 무대는 오랫동안 ‘공연하기 어려운 텍스트’로 여겨졌던 《인디아 송》의 연극적 가능성을 새롭게 드러냈다.
《인디아 송》에서 《사바나 베이》로,
기억과 목소리의 연극
《인디아 송》은 뒤라스가 평생 반복해서 돌아간 기억과 인물, 장소가 밀도 높게 결합된 작품이다. 식민지 시대 인도차이나에 뿌리를 둔 개인적 기억은 작품 속에서 변형되며 사랑과 고독, 욕망과 죽음에 관한 보편적인 이야기로 확장된다. 동시에 이 작품은 문학의 언어가 어떻게 목소리와 음악이 되고, 다시 이미지와 몸의 움직임으로 옮겨 갈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인디아 송》에 이어 뒤라스의 후기작 《사바나 베이》가 27년 봄, 알마출판사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사바나 베이》는 기억을 잃어 가는 노년의 여배우와 한 젊은 여성의 대화를 통해 오래전의 사랑과 죽음을 되살리는 작품이다. 사라진 사건을 인물들의 목소리와 불완전한 기억을 통해 재구성한다는 점에서 《인디아 송》과 맞닿아 있다.
두 작품은 말해지지 않은 과거와 부재하는 인물을 무대 위로 불러내며, 기억과 목소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뒤라스 연극의 독창적인 세계를 함께 보여 준다. 이번 《인디아 송》 출간과 뒤이어 선보일 《사바나 베이》를 통해 독자들은 한 편의 연극 텍스트를 넘어, 뒤라스가 문학과 연극, 영화를 가로지르며 구축한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사라진 시간의 표면, 종이 위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가상의 활자 극장
이번 《인디아 송》은 강렬한 분홍빛 색조의 이미지로 관능과 열기, 우아함과 파멸이 공존하는 《인디아 송》의 분위기를 응축해 담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