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 역사와 함게 흐르는 아름다운 정자의 풍경과 흔적
책의 포문을 여는 1장은 슬픔과 고고함이 교차하는 공간들을 다룬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발길이 닿는 곳은 강원도 영월의 '금강정(錦江亭)'이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을 잃고 / 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 저 물도 내 마음 같아서 울며 밤길을 가는구나”
조선 초 계유정난 당시 영월로 유배 가는 단종을 호송했던 의금부도사 왕방연의 시조(혹은 홀로 남겨진 정순왕후의 애절함이 투영된 노래)가 흐르는 영월은 비운의 왕 단종의 가슴 아픈 사연이 서린 곳이다. 영월읍을 가로질러 흐르는 동강 푸른 물을 굽어보는 벼랑 끝에 자리한 금강정(강원도 문화재자료 제24호)은 단종이 죽은 뒤 낙화암에서 몸을 날려 왕을 따른 시녀들과 종인들의 슬픈 영혼을 위로하는 사당 앞에 서 있다.
이종근 작가는 영월의 빼어난 절경이 가슴을 더 파고드는 이유가 바로 이 슬픔의 역사를 품고 있기 때문이라 말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홍성모 화백은 백빈(白?)을 휘날리며 붓끝에 기세(氣勢)를 실어낸다. 5년 전 고향 부안에 56m의 대작 ‘해원부안사계도’를 기증한 후, 제2의 고향인 영월로 넘어와 완성한 ‘금강정의 사계’는 화폭 속 하얀빛과 누런빛, 먹의 농담이 어우러져 시각적 즐거움과 평안을 선사한다. 거대한 역사 속에서 인간의 욕망(동강댐 건설 추진과 백지화)을 묵묵히 받아내며 흐르는 강물처럼, 홍 화백의 그림은 한 줄기 ‘도래샘(여러 줄기의 물이 돌아서 하나 되는 강물)’이 되어 타인을 인정하고 더불어 사는 삶의 태도를 역설한다.
이어지는 서사에서는 거북 모양의 너럭바위 위에 세워진 명승 제60호 '봉화 청암정(靑巖亭)'으로 향한다. 기묘사화로 파직당한 충재 권벌 선생이 닭실마을(유곡리)에 터를 잡고 건립한 이 정자는 ‘하우비접(下雨飛蝶)’, 즉 ‘비가 와도 나비는 날아간다’는 선비의 지조를 상징한다. 빗속을 유람하는 투명한 나비처럼, 삶의 무게와 서슬 퍼런 권력 앞에서도 무릎 꿇지 않고 한 마리 나비처럼 살고자 했던 선비의 꿈이 서려 있다. 퇴계 이황 역시 이곳을 연모하여 ‘청암정 제영시’ 두 수를 남겼을 만큼, 청암정은 자연물과 인공물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최고의 명승지다.
이 외에도 책은 나 홀로 외롭지 않은 경주 독락당 계정, 옥처럼 맑은 물이 흐르는 전주 한벽당, 퇴계의 발자취와 양산보의 유훈이 숨 쉬는 담양 소쇄원, 고종과 흥선대원군의 흔적이 깃든 경복궁 향원정과 서울 석파정까지 저마다의 개성을 지닌 공간들을 1장에서 심층적으로 다룬다.
# 전국의 명승을 아우르는 5부의 파노라마
이 책은 총 5장에 걸쳐 대한민국의 가장 아름다운 풍광과 우리만의 정서를 촘촘하게 엮어냈다.
2장. 그림자에서 미래의 반올림: ‘상욕속빈(喪欲速貧)’의 정신이 깃든 남원 퇴수정, 거창장씨의 뿌리 건계정, 그림자도 쉬어간다는 담양 식영정, 윤선도의 격조가 살아있는 완도 세연정, 안동 만휴정과 함양 거연정 등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살핀다.
3장. 기암절벽에서 오늘의 설렘: 최치원의 발자취가 남은 합천 농산정, 십승지의 으뜸인 영주 금선정, 절벽 위 절묘하게 내려앉은 예천 초간정, 그리고 광주 풍암정, 제천 탁사정, 청송 방호정, 반구대 집청정 등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정자의 역동성을 포착했다.
4장. 연못에서 자연의 어울림: 안빈낙도의 극치인 함양 농월정과 동호정, 거창 용암정, 합천 함벽루, 백일홍이 황홀한 담양 명옥헌, 고창 석탄정, 성주 만귀정 등 물과 정자가 만들어내는 아늑한 서정성을 담았다.
5장. 술잔에서 세월의 즐거움: 울주 작천정, 복사꽃 멀미가 나는 영덕 침수정, 화순 환산정, 고성 천학정, 그리고 우암 송시열이 축조한 대전 남간정사까지 풍류와 철학이 교차하는 공간들을 마지막으로 장식한다.
# 전통의 고법과 현대적 서정성의 만남
『한국의 아름다운 정자와 정원』은 서양화에서 동양화로 이어지며 갈고닦은 홍성모 화백의 독보적인 필법이 빛을 발하는 책이다. 작가는 “사상을 중시하며 사실적 표현을 기초로 서정성을 궁극의 목표로 했다”고 밝힌다.
먹의 특성을 완벽히 파악하여 선의 굵기와 변화, 농담만으로 원근을 표현한 그의 작품들은 풍경 묘사를 넘어,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한 인간미를 풍긴다. 청명한 달밤, 안개 낀 아침, 혹은 눈비 오는 날에도 누정에 올라 옛 풍류객들의 마음자리를 찾아 서성였던 두 거장의 고군분투가 이 한 권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바쁘고 옹졸한 일상 속에서 세상의 아름다운 반짝임을 잊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 책은 내 안의 '도래샘'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일상에 지쳐 있는 당신에게, 우리 선조들이 남긴 누정의 문을 열고 영혼의 단비를 맞아보길 권한다.
추천사
우리 선조들에게 정자와 정원은 단순히 건물이 서 있고 나무가 심어진 물리적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고, 그 안에서 마음의 평안을 찾으며, 학문과 예술을 논하던 ‘정신문화의 산실’이었습니다. 한국 고유의 미학과 철학을 오롯이 담아낸 이 책으로 인해 오늘, 자연을 품고 삶을 노래한 공간, 한국의 정자와 정원을 만납니다.
- 이성수 (소설가)
이종근 작가의 인문학적 깊이와 홍성모 화백의 예술적 감성이 어우러진 ‘한국의 아름다운 정자와 정원’은 전통 공간의 아름다움을 글과 그림으로 오롯이 담아낸 훌륭한 문화 교양서입니다. 이 단행본을 통해 더 많은 이들이 우리 전통 조경의 미학을 발견하고, 나아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아끼고 보존하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이종철 (전 국립민속박물관 관장, 전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총장)
우리 전북특별자치도는 예로부터 빼어난 자연경관과 함께 정자 문화가 찬란하게 꽃핀 고장입니다. 자연과 동화되어 호연지기를 기르던 수많은 누정과 정원들이 곳곳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속도와 효율만을 강조하는 현대 사회에서 이 책은 독자들에게 잠시 숨을 고르고, 자연과 동화되는 쉼표를 선물할 것이며, 교육적 효과도 아주 클 것으로 보여 추천합니다.
- 천호성 (전북특별자치도 교육감)
이 책은 전국에 산재한 아름다운 전통 정자와 정원의 숨은 가치를 발굴하고, 그 속에 담긴 역사적 이야기와 건축적 미학을 수려한 문장과 수묵화로 풀어냈습니다. 선조들이 추구했던 자연 친화적인 삶의 태도와 지혜를 현대인들에게 전해 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깊습니다. 시대를 넘어 많은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향기로운 지침서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 김희수 (전북특별자치도의회 도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