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이제 나는 이 고요한 제주의 여백 속에서, 조금 다른 방식의 그물을 짜는 중이다. 그 그물에는, 사람의 부족함, 연약함, 지난날의 나 자신까지도 천천히 품어 담으려 한다. 그리고 이 제주라는 섬이 나에게 준 숙제는,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졌던 과거를 되갚으려 하지 말고, 관계 속에서 ‘평화’를 만들어갈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나는 지금, 그 답을 찾아 파도가 한 번 지나간 뒤, 고요해진 바닷가에 서 있다. _43
나는 오늘도 연습한다. 비우고, 내려놓고, 다시 깨끗해지는 연습을. 그래서 내려놓을수록 가벼워지고, 가벼워질수록 자유가 생긴다. 그 첫 발걸음을, 그날 나는 내딛었다. _60
내가 발 딛고 사는 제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온통 검은 돌로 밭의 경계를 짓는 제주 ‘밭담’. 밭을 일구다 나온 돌을 그저 옆에 차곡차곡 쌓아 올린 것이 이 제주 밭담의 시작이라고 한다. 농사짓기 척박한 땅을 탓하기보다 그 땅을 달래며 살아온 제주 사람들의 지혜가 이 돌들 사이에 배어있었다. 이 모두 삶의 터전을 오롯이 일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제주의 유산이었다. _91
당신이 좋아하는 일은, 당신이 좋아하는 일이라고 당신이 ‘결정’하는 거예요. 이 일은 내가 좋아하는 일이야. 이것은 나하고 딱 맞는 일이야, 라고 당신이 ‘결정’하는 순간에, 당신의 것이 됩니다. _96
아참, 뜬금없는 제안이지만. 당신도 도저히 해석되지 않는 시간을 지나고 있다면, 일단 한번 달려보시는 것도 추천한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 그 길 위에서, 어쩌면 생각보다 괜찮은 답을 만나게 될지도. _117
나에게 제주 이주는 그 모든 법칙의 증명과도 같은 일이었다. 작은 소망이 기어이 현실이 되어버린 사건. 참 별것도 아니지만 또 생각해보면 대단히 별거일 수 있는 일. 그래서 지금도 나는 매일의 말과 생각으로 내 삶의 방향을 살짝살짝 조정하며 살려고 한다. 대단한 건 아니다. “걱정 금물, 지금 여기 집중”, “남 탓하지 말고 나나 잘하자”, “작게라도 감사하자” 정도. _137
‘어제까지만 해도 저 돌들이 검푸른 파도처럼 넘실댔었는데, 그 푸른 이끼를 머금은 그 검은 돌 군단은 다 어디로 갔지?’ 돌무더기 위, 하얀 눈이 그들을 조용히 덮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며 조용히 읊조린다. ‘아, 이 숲 속은 포근한 하얀 눈을 덮은 채, 깊은 겨울잠에 빠져들었구나.’ _153
제주도 동쪽 끝 시골 마을, 마당 한 켠에 텃밭을 두고 하늘과 구름을 그대로 마주하는 집. 그곳에 살고 있는 나는, 그 농부의 심정을 충분히 공감한다. 농부의 심정처럼 시작하는 내 아침 일상은 그들의 스케줄과 닮아있다. 제주에서 농사라도 짓는 건가. 그건 어불성설. 내가 아침 날씨에 공을 들이는 주제는 다름 아닌, 그 단순한 가사 노동, 바로 ‘빨래 널기’ 라는 반전 포인트. _229
하지만 제주에서의 8년은, 그분들의 근성과는 다른 방식으로 내 마음을 조금씩 다독이고, 방향을 고쳐 세우고, 다시 서는 법을 배운 시간이었다. 제주에서 배운 그 힘, 자연이 주는 위로, 일터의 평화, 가족과 이웃, 동료의 따뜻함, 그리고 내 안에서 새로 자란 마음과 태도. 이것들이 앞으로의 길에서 내게 또 다른 뿌리가 되어줄 거라 믿는다. _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