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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자 : 이영수
이영수 시인은 충남 예산 출생으로 2024년 《시와소금》 신인문학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2024년 《충남문학》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충남문인협회, 충남시인협회, 서안시문학회 회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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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시인에게 있어서의 기억은 이미 체험의 결과로 지각되어진 것들이 저장하는 심리 과정에서 비롯되고 있다. 체험으로부터의 기억이 단순한 정보를 쌓아놓은 듯한 정보고(情報庫)의 역할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 자료를 체계화하고 이를 분류함은 물론 정리함으로써 상상력에 의하여 제공된 새로운 정보에 따라 낯선 존재를 명명(命名)하면서 마침내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하는 존재의 재탄생을 맞게 해준다. 임의로 한 작품을 골라 살펴보기로 한다.

볼펜 점 만한 매발톱 꽃씨
쌀쌀맞은 봄바람에 흩어질까
옹기화분에 흙을 채웠다
자연이 늘 알아서 하던 일
콩나물 한 번 길러보지 않은 내가 자처한다

베란다에서 핀 야생화라
아이스크림 퍼먹던 달콤한 숟가락으로
꽃씨를 심는다
과연 싹을 틔우면 알아는 볼까
의문부호 여러 개를 함께 꽂아 둔다

커다란 하늘빛의 빛깔과
무서운 매 발톱 모양의 꽃 뿔
그만의 독특한 향기
올봄은 아무래도
우주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풀기 위한
꽃씨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꽃씨의 시간」 전문

위 시작품은 ‘볼펜 점 만한 매발톱 꽃씨’로부터 싹을 틔우고 ‘커다란 하늘빛의 빛깔과/무서운 매 발톱 모양의 꽃 뿔/ 그만의 독특한 향기’를 보이기까지에 필요한 ‘시간’을 엿보여주고 있다. 화자는 단순한 ‘시간’으로서의 정보를 해석하고 그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볼펜 점 만한 매발톱 꽃씨’, 즉 매발톱의 씨앗을 보면서 ‘쌀쌀맞은 봄바람에 흩어질까’라는 애틋한 정서가 발현된다. 이에 따라 「꽃씨의 시간」은 정서적으로 구체적인 모습을 뚜렷이 나타나게 하다. 애당초 ‘매발톱 꽃씨’는 화자에게 있어서 가냘프고 약하기 만한 존재이다. 화자의 정서로는 애가 타는 듯이 깊고 절실하면서도 정답고 알뜰한 맛이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럼으로써 화자로 하여금 ‘쌀쌀맞은 봄바람에 흩어질까’ 염려되는 마음으로 ‘옹기화분에 흙을 채’우도록 해준다. 그러나 화자에게 있어서 어떠한 의도적인 행위라고 할 수가 없다. 이것은 ‘자연이 늘 알아서 하던 일’이요 화자도 이에 따라 자연의 순환 이치에 순종하듯 관습적으로 이루어지는 삶의 과정임을 굳이 밝히고 있다. 그러한 화자의 행위는 ‘콩나물 한 번 길러보지 않은 내가 자처’하면서까지 다분히 「꽃씨의 시간」에 대한 객관적인 행위임을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건강한 치아를 위해서라지만
사실은
빈속을 무엇으로 채웠는지
들키고 싶지 않아서
거품 물고 싹싹 이를 닦는다

간밤의 무의식이 저지른 부끄러움과
목젖 너머 텁텁함까지
오글오글, 퉤퉤 뱉어 버린다

허허로운 잡담 뒤
뒤끝으로 남는 혓바닥의 꿉꿉함도
남김없이 닦아낸다

찌꺼기 없는 사이
냄새 풍기지 않는 말
벌레 먹지 않는 하루를 위해

아침
점심
저녁 거르지 않고 이를 닦는다
―「이를 닦는다」 전문

화자는 ‘건강한 치아를 위해서’ 이를 닦는다는 관습적 상황 앞에서 적이 당황하게 된다. 새롭고도 낯설게 인식되고 있다. ‘사실은/빈속을 무엇으로 채웠는지/ 들키고 싶지 않아서/ 거품 물고 싹싹 이를 닦는다’는 것이다. 이는 곧 화자가 인지하고 있는 현실적 상황의 ‘이 닦기’이다. ‘빈속을 무엇으로 채웠는지/ 들키고 싶지 않아서’ 이를 닦고 있는 화자는 ‘거품 물고 싹싹 이를 닦는다’는 것이다. 이는 현실적으로 이를 닦을 때 치약의 사용으로 자연스럽게 거품이 발생하는 것이지만, ‘빈속을 무엇으로 채웠는지/ 들키고 싶지 않아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중의적인 화자의 심사를 강화하고 있는 표현이다. 그러나 화자는 이닦기로 하여금 현실적 삶에서 ‘간밤의 무의식이 저지른 부끄러움과/ 목젖 너머 텁텁함까지’, 그리고 ‘허허로운 잡담 뒤/ 뒤끝으로 남는 혓바닥의 꿉꿉함’도 ‘오글오글, 퉤퉤 뱉어버리다’거나 ‘남김없이 닦아낸다’는 것이다. 서로 선(善)을 좋아하고 악(惡)을 싫어하는 마음을 시(詩)에서 일으키고, 예(禮)로 공경하고 사양할 줄 아는 의지를 세움은 물론 심미(審美)할 줄 아는 정서를 기르고자 함으로써 인격을 완성하고자 하는 화자의 의지가 적절하게 표현되어 있다. 특히 화자는 혼탁한 세상에서의 ‘이’를 닦는 모습을 ‘오글오글, 퉤퉤’ 등 상징어(象徵語, symbolic word)를 사용함으로써 화자의 함의된 의지를 더욱 실감하게 해준다. ‘오글오글, 퉤퉤’로 보여주는 상징어는 이를 닦을 때 곧잘 들을 수 있는 소리를 흉내내는 언어로 시에 생동감과 첩어(疊語)의 같은 음의 반복 효과를 극대화함으로써 리듬감을 불러일으켜 시적 분위기를 더욱 활기차게 해준다.
화자는 결국 「이를 닦는다」는 행위를 관습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식의 낯설게 하기를 통하여 ‘찌꺼기 없는 사이/ 냄새 풍기지 않는 말/ 벌레 먹지 않는 하루를 위해// 아침/ 점심/ 저녁 거르지 않고 이를 닦는다’고 한다. 이 시작품은 화자로 하여금 평소의 바른 삶을 정립하고자 하는 교시적(敎示的)인 면을 함께 보여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앞이 막막하다

거대한 수조 속 같은 아침
껌벅거리는 신호등의
표정을 살핀다

눈보다 귀를 앞세운 사람들
녹슨 자전거 벨 소리에
황급히 길을 나누며 뒤를 돌아본다

살피고 돌아보며
걸어온 숱한 반성의 시간

선명하지 않은 저들의 미래는
안개주의보 해제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안개주의보」 전문

암울한 현실을 눈앞에 두고 극복하고자 하는 데에 있어서 ‘안개’만큼 좋은 시적 소재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나 아무리 시의 소재가 훌륭하리만치 좋다고 하더라도 소재를 어떤 의식에서 관조함으로써 이를 현실적인 체험의 단계로 삼아 어떠한 상상력으로 어떻게 표출하느냐에 달려 있다. 화자는 먼저 현실의 ‘안개’ 앞에서 ‘막막하다’고 말한다. 그러한 상황은 ‘거대한 수조 속 같은 아침/ 껌벅거리는 신호등의/ 표정을 살핀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눈보다 귀를 앞세운 사람들’이 ‘녹슨 자전거 벨 소리에/ 황급히 길을 나무며 뒤를 돌아보’는 몸짓을 본다. 그야말로 안개가 삶의 위험 신호처럼 짙게 깔려 있다. 「안개주의보」가 내려진 상황에서 ‘선명하지 않은 저들의 미래는/ 안개주의보 해제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안개 속 밝은 웃음소리’에서 화자는 현실 극복 의지를 강하게 엿보이고 있다.

얼룩진 흔적들은 떼어내고
매끈하고 부드러운 새살로
살고 싶다

서두르지 않고
구불구불한 가지 끝까지
피우고 싶다

멀리서도 알아보는
커다란 꽃숭어리로
돌아봐 주길 기다리고 있다

백일이 다 되도록
피고 지며
그대를 몹시 그리워하고 있다
―「배롱나무」 전문

모든 시적 대상을 바라보는 관계에서 평소에 늘 바라는바 소망[素望]이라면 보편적인 범주에 의하여 개별적인 방향으로 흐르는 것을 사실적으로 인지할 수밖에 있다. 그런 가운데 시로서의 표현은 보편적이요 구체적인 연관성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리움’이라는 정서는 찰나적으로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잠재적으로 그 농도를 점점 축적하면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를 살펴보면 첫째 연에서는 배롱나무의 성장하면서 자라나는 줄기의 탈각(脫殼)을 ‘얼룩진 흔적들은 떼어내고/매끈하고 부드러운 새살로/ 살고 싶다’는 소망을 시작으로, 둘째 연에서는 배롱나무 줄기의 특성에 따라 ‘서두르지 않고/ 구불구불한 가지 끝까지/피우고 싶다’ 하고, 셋째 연에서는 배롱나무 꽃을 ‘멀리서도 알아보는/ 커다란 꽃숭어리로/ 돌아봐 주길 기다리고’, 마지막 연에서 배롱나무가 꽃원추꽃차례(圓錐花序. panicle)를 이루며 아래로부터 백일이라는 오랫동안 피어나는 것처럼 보이고 있는 것이지만, 화자는 이를 마치 ‘백일이 다 되도록/ 피고 지며/ 그대를 몹시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화자는 배롱나무의 생태적 특성과 화자의 ‘그리움’이라는 정서적 삶을 화자와의 관계로 완전히 동일화(同一化.identification)함으로써 곡진하게 이루어놓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화자의 체험에서 비롯된 상상의 범주가 자아 중심적으로 결속된 의도에 적응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따라 새로이 인지된 존재의 의미는 더욱 명확하게 전달되고 있으며, 화자의 상상력 안에서 구체적이고 집중적으로 모색되어진 시상의 궤적을 따라 일상적인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시는 이미 체험한 사실로 재현되는 추상적인 사물이나 개념에 상대하여 그것을 상기시키거나 연상시키는 구체적인 사물의 의미가 나타나는 현실 가운데에서 거의 무의식(無意識)의 표상(表象)과 사고(思考)로 구현(具現)된다. ‘어제 일은 몰라도/ 그 옛날이야기는 생생하니/ 젊은 시절, 좋은 기억만 있으면/ 이승이 극락 같으려나(「면회」 부분)’에서 보여주고 있는 화자의 심경이라든가, ‘단무지 같았던 긴 하루/ 노곤한 하품을 씹어가며/ 서둘러 내린 곳은 깊은 지하’에서 ‘날마다 힘겹게 밟고 오르는/ 가파른 세상 /탈피한 오늘이 불빛을 향해 나풀거리며 간다(「탈피」 부분)’는 데에서 발견된 자아의식의 발현은 소재에 의하여 생기기 이전에 이미 이루어진 상상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이 알게 모르게 밖으로 드러나게 된, 이른바 현실 속의 또 다른 현실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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