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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프롤로그 _ 갯지렁이

Part 1 손사래

01 더럽다는 것
02 불편하다는 것
03 굳이

Part 2 나중에

04 언젠가
05 한 번도
06 놓쳐버린 계절

Part 3 몸

07 몸이 먼저 안다
08 아는 것과 해본 것
09 내 손이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만진 날

Part 4 그럼에도 불구하고

10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는 법
11 철학자도 손을 뻗는다
12 나는 아직 잡지 못했다

Part 5 지금밖에

13 오늘밖에 없는 것들
14 경험은 정보가 아니다
15 지금밖에 못한다

#에필로그 _ 그냥 갯지렁이가 익숙했을 뿐이다
저자 소개
저자 : 서일
대학을 졸업한 뒤 카메라 하나를 손에 쥐었습니다.
그로부터 서른다섯 해, 공공기관과 대기업, 방송국을 오가며 CF와 홍보영상, 교육영상, 다큐멘터리, 사내방송 등 수많은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현장을 기록하고, 이야기를 엮는 것이 제 일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영상이 카메라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깨달았습니다. 좋은 영상은 카메라가 아니라 한 줄의 문장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보다, 왜 그것을 보여주어야 하는지를 먼저 묻는 일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철학을 읽었습니다.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역사를 읽었고,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문학을 읽었습니다. 영상의 대본을 쓰기 위해 시작한 독서는 어느새 세상을 바라보는 습관이 되었고, 하나의 장면을 오래 바라보는 일이 하나의 생각을 오래 붙드는 일로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영상은 제게 글쓰기를 가르쳤고, 글쓰기는 다시 사유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도 저의 스승이었습니다.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표정과 말, 침묵과 선택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결국 모든 이야기는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기술은 시간이 지나면 낡지만, 사람에 대한 질문은 오래도록 남았습니다.

이 책은 그렇게 서른다섯 해 동안 영상을 만들며 품어온 질문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카메라로 세상을 바라보던 시간이 책을 읽는 시간으로 이어졌고, 책을 읽는 시간이 글을 쓰는 시간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글들은 결국 삶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한 사람의 철학적 기록이 되었습니다.

누군가 이 책을 덮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달라지고, 자기 삶을 향한 질문 하나를 품게 된다면, 그보다 더 큰 기쁨은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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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세상은 점점 더 편리해지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검색하면 알 수 있고, 버튼 하나만 누르면 원하는 것이 집 앞까지 도착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예전보다 세상을 덜 만지며 살아갑니다.

흙을 밟지 않고,
바다 냄새를 맡지 않고,
낯선 사람과 오래 대화하지 않고,
조금의 불편함조차 견디려 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설명하는 방법은 점점 많아졌지만, 정작 세상을 경험하는 일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순간향기』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 책입니다.

"당신은 삶을 알고 있습니까, 아니면 삶을 살아보고 있습니까?"

이 질문은 어느 철학자의 강의실에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한 바닷가에서 갯지렁이를 낚싯바늘에 꿰는 너무도 평범한 장면, 그리고 그 곁에서 툭 던져진 한마디,
"니 살면서 이걸 언제 해볼 수 있겠는데?"

그 짧은 순간은 한 사람의 오랜 사유를 흔들어 놓았습니다.
저자는 지난 서른다섯 해 동안 카메라 뒤에서 사람을 기록해 왔습니다.

공공기관과 대기업, 방송국을 오가며 CF와 다큐멘터리, 교육영상과 홍보영상을 만들었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얼굴과 삶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처음에는 영상이 카메라에서 시작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그는 좋은 영상은 카메라가 아니라 한 줄의 질문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철학을 읽었고,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역사를 읽었으며,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문학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세상을 오래 바라보는 일과 한 사람을 깊이 이해하는 일, 좋은 영상을 만드는 일과 좋은 문장을 쓰는 일은 결국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이 책 『순간향기』는 철학을 설명하는 책이 아닙니다. 삶 속에서 철학이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갯지렁이 하나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도시인의 감각, 경험의 부재, 몸의 기억, 익숙함과 거리, 그리고 인간 존재의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장자의 포정은 칼끝이 아니라 손끝에서 살아나고, 에피쿠로스는 정원이 아니라 우리의 식탁에서 다시 말을 걸며, 파스칼은 오늘도 스마트폰을 내려놓지 못하는 현대인의 마음을 조용히 비춥니다.

이 책은 철학자의 이름을 앞세우지 않습니다.

그들의 사유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하루 속으로 데려와, 철학이 책 속의 지식이 아니라 삶의 감각임을 보여줍니다.

『순간향기』를 읽고 나면 거창한 성공의 비밀을 배우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신 오늘 지나쳤던 풍경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게 되고, 미루었던 경험 하나를 시작해 보고 싶어질 것입니다.

언젠가 하겠다고 미뤄 두었던 일들이 사실은 '지금'이라는 단 한 번의 시간 속에서만 가능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될지도 모릅니다.

삶은 거대한 사건보다 수없이 많은 작은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들은 모두 저마다의 향기를 품고 있습니다.
이 책은 그 향기를 맡는 법을 가르치는 책이 아닙니다. 그 향기를 놓치지 않는 삶으로 독자를 천천히 이끌어 주는 책입니다.

누군가 이 책을 덮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지고, 오늘을 조금 더 깊이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이 책이 독자에게 건네고 싶은 가장 소중한 선물일 것입니다.


책 속으로

[프롤로그]

그 영상을 처음 본 것은 아무 생각도 없이 유튜브를 넘기던 늦은 밤이었다. 썸네일은 별것 없었다. 바다, 두 젊은 여자, 낚싯대. 중소기획사 아이돌이라고 했고, 데뷔한 지 2년이 지나도록 한 번도 주목받지 못했다는 그들이었다. 알고리즘이 왜 이것을 내 화면 위에 올려놓았는지 알 수 없었다. 알고리즘은 늘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나고 나면, 어떤 만남은 우연보다 정확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쨌든 나는 별다른 기대 없이 재생 버튼을 눌렀다.

거제 출신의 멤버가 일본인 멤버를 고향 바닷가로 데려간 영상이었다. 간단한 줄낚시를 하는 내용이었고, 카메라는 투박했고, 편집은 단순했으며, 대화 역시 특별한 것이 없었다. 누군가는 몇 초 만에 손가락으로 밀어버렸을 평범한 영상이었다. 나 역시 그럴 수도 있었다. 그저 그날 손가락이 조금 늦게 움직였을 뿐이다.
그런데 그런 영상들이 가끔 이상한 방식으로 오래 남는다. 처음에는 왜 남는지 알 수 없다가, 시간이 흘러 어느 날 문득 그 이유를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아무 예고도 없이 한 장면이 나를 붙잡았다. 거제 멤버가 갯지렁이를 집어 낚싯바늘에 꿰기 시작하는 장면이었다. 맨손으로.

“자, 이거 S자로 넣어야 돼. 이렇게 하면 얘가 안 빠져요.”

말하는 동안 손이 먼저 움직였다.
생각보다 먼저.
설명보다 먼저.

갯지렁이를 구부려 바늘에 꿰는 동작이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단추를 채우듯, 신발 끈을 묶듯, 오래된 집의 방문을 아무 생각 없이 여는 것처럼, 몸이 기억보다 앞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용감해 보이지 않았고 특별해 보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너무도 익숙해 보였다. 그것이야말로 어린 시절부터 수없이 반복해온 사람만이 몸 안에 쌓아두는 숙성된 자연스러움이었다.
일본인 멤버는 달랐다. 한 발짝 물러섰고, 잠시 후 이렇게 말했다.

“내 손톱에 다 들어갈 거 같아.”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만히 멈추었다. 손톱 안으로 파고든다는 상상, 갯지렁이가 손톱과 살 사이의 좁은 틈으로 스며드는 느낌, 생각만으로도 몸이 오그라드는 그 감각.
그녀가 물러선 것은 단순히 더럽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몸의 경계가 침범당하는 느낌, 피부 바깥에 있어야 할 것이 피부 안쪽으로 녹아드는 느낌, 내가 나라고 믿는 영역 안으로 낯선 것이 조용히 스며드는 느낌이 그 상상 속에 함께 들어 있었다.
인간은 실제보다 상상 속의 불쾌감에 먼저 물러선다. 몸보다 먼저 머리가 도망가는 것이다. 실제의 위험보다 상상된 불쾌감에 더 깊이 반응하기도 한다.
그런데 거제 멤버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처럼 보였다. 손을 멈추지 않은 채, 갯지렁이를 끼우면서, 일본인 멤버를 달래면서, 낚시를 설명하면서, 그러면서 동시에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야 이거 지금밖에 못 한다고. 니 살면서 이걸 언제 해볼 수 있겠는데?”

그 말은 선언처럼 들리지 않았다. 누군가를 설득하려고 마음속에서 벼려놓은 말도 아니었고, 철학적인 무게를 담아 건넨 말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냥 하던 일을 하면서 툭 흘러나온 말이었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중략〉

그 말은 내 안에서 조금씩 자랐다. 이상하게도 새로운 의미를 더하지 않았다. 대신 이미 살아온 시간들을 하나씩 바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낚시와 관련된 말이었던 것이, 점점 다른 방향으로 자라나는 것처럼, 작은 돌멩이였던 것이 조금씩 자신의 무게를 찾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느 순간 나는 알아차렸다. 그 말은 갯지렁이에 관한 말이 아니었다. 적어도 내 안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 말은 내가 살아온 방식에 관한 말이었고, 내가 지나쳐온 수많은 순간들에 관한 말이었으며, 내가 손사래 치며 등을 돌렸던 경험들에 관한 말이었다.
나는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 앞에서 물러섰을까?
누군가 먼저 건네려던 손, 조금 늦게 떠나도 되었던 여행, 미루다가 영영 배우지 못한 것들, 나중에는 대부분 사라졌다.
더럽다는 이유로, 불편하다는 이유로, 굳이 왜 해야 하냐는 이유로, 지금은 바쁘다는 이유로, 나중에 하면 된다는 이유로, 언젠가 기회가 또 있을 거라는 이유로.
돌이켜보면 대부분 거창한 것들이 아니었다.
낯선 동네를 한 번 걸어보는 일, 혼자 여행을 떠나보는 일, 한 번도 배워보지 않은 것을 처음으로 배워보는 일, 어색한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건네보는 일, 처음 보는 음식에 조심스레 젓가락을 대보는 일처럼 지극히 작은 것들이었다. 그때는 언제든 다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그런 일들은 대부분 그때뿐이었다. 같은 장소는 다시 찾아가도 같은 순간으로 되돌아오지 않았고, 같은 사람을 다시 만나도 같은 감정으로 만나지 못했으며, 같은 기회가 다시 찾아오는 것 같아도 사실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에필로그]

나는 아직도 갯지렁이를 잡아본 적이 없다.
이 책을 다 쓰고 나서도 그것은 변하지 않았다. 거제에 가본 적도 없고, 그 바다를 본 적도 없고, 그 갯벌 냄새를 맡아본 적도 없다.
그런데 이제는 그 바다가 내 안에 있다. 실제 바다가 아니다. 내가 만든 바다다. 그 영상이 오래 내 안에 머물며 생긴 바다. 파도 소리도 모르고, 물 온도도 모르고, 바람 방향도 모르는 바다. 그런데 거기에 갯지렁이가 있고, 두 사람이 있고, 그 말이 있다.
그 바다에서 나는 아직 손사래를 치는 사람이다. 그런데 가끔은 손이 간다.
어쩌면 그것으로 충분한지도 모른다.

거제 멤버는 그날 거창한 철학을 말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가르치려 하지 않았고, 설명하려 하지 않았고, 의미를 부여하려 하지 않았다. 그냥 갯지렁이가 익숙했을 뿐이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나는 그 장면에서 멈췄다. 영상을 멈추고 한동안 화면을 봤다. 그리고 이 책을 썼다.

왜인가?
그 익숙함이 나에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익숙함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답을 찾았는가?
찾았다고도 할 수 없고, 찾지 못했다고도 할 수 없다. 다만 이것은 안다. 그 익숙함은 설명으로 오지 않고, 이해로 오지 않고, 책으로 오지 않는다. 그냥 그 바다에서 오래 살아야 한다. 수백 번의 여름이 손에 새겨져야 한다.

나는 아직 그 여름들이 없다. 그래서 아직 잡지 못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바다를 다시 떠올리다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잡으려 했던 것이 갯지렁이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나는 갯지렁이를 잡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갯지렁이는 그저 문이었을 뿐이다. 내가 정말로 붙잡고 싶었던 것은, 그 순간이 지나가면서 남긴 냄새였다.
향기는 이상한 것이다. 손에 쥘 수 없고, 사진으로 남길 수 없고,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건네줄 수도 없다.

나는 그림자를 썼다고 했다. 온도가 없고, 냄새가 없고, 감촉이 없는 그림자를. 그런데 이 책을 쓰는 내내, 나는 사실 그 냄새 없는 그림자 속에서 자꾸 냄새를 찾고 있었다. 문장 속에 향기를 조금이라도 묻히고 싶어서, 없는 냄새를 만들어보려고 몇 번이고 같은 문단을 고쳐 썼다.

되지 않았다. 그림자에는 냄새가 배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향기는 책 속에 담기 위해 있는 게 아니다. 향기는 그 순간, 그 자리에서, 코를 들이미는 사람만을 위해 존재한다. 나중에 맡으려 하면 이미 흩어지고 없다. 그래서 거제 멤버는 설명하지 않고 그냥 갯지렁이를 만졌고, 외할머니는 설명하지 않고 그냥 닭을 잡았다. 향기를 맡는 사람은 그것에 대해 쓰지 않는다. 다만 코를 들이밀 뿐이다.

나는 쓰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향기를 맡는 대신 향기에 대해 썼다. 그것이 내가 가진 유일한 방식이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설명을 내려놓고 그냥 손을 뻗는 날이 올 거라고 믿는다. 그날 나는 이 책을 다시 펼치지 않을 것이다. 향기를 맡는 사람은 향기에 관한 책을 읽지 않는다. 그냥 맡을 뿐이다.
그때까지는, 이 책이 내가 가진 전부다.

순간은 향기처럼 왔다가 향기처럼 사라진다. 붙잡을 수 없기에, 그것은 오직 그 순간에만 완전하다.
지금밖에.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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