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풍요롭고도 날카로운 향,
깊은 우울에 빠지거나 공포에 질려 무기력해질 때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강력한 사랑의 맛
암의 나날에 바빈이 마주한 건 어머니 몸에 발생한 병변만이 아니다. 여성이 분명히 느끼는 고통을 과장의 산물로 변질시키는 의학계의 오랜 관성, 암을 ‘승리해야 할 전쟁’이나 하늘이 인간을 시험하려 내린 시련으로 보는 오래된 언어 역시 바빈을 내리누른다. 손택은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질병을 바라보는 가장 ‘진실한’ 방법이 은유적 사고로부터 멀어지는 데 있다고 썼다. 바빈은 질병을 둘러싼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비유를 경계하는 손택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면서도 은유를 내려놓지 못한다. 중고 가게에서 싼값에 들여온 빈티지 냄비와 프라이팬에 왜 애그니스, 에스텔, 미니, 페넬로페 같은 이름을 붙이고 그들을 친구 삼았는지 설명할 길이 없지만, 그럼으로써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알 수 없음’을 밀어내고 있으니까. 녹아내린 치즈가 황금빛 국물 위에 레이스 무늬를 그리는 순간, 품에 안긴 조카를 ‘호박’, ‘꿀’이라 부르며 재우는 순간처럼 사소한 일상과 우리가 서로에게 붙인 이름이 우리를 웃음 짓게 하니까. 이렇게 조리 도구와 재료에 바빈은 마음을 기댄다. 뭉근하게 끓인 양배추가 간절한 어느 날, 진한 보라색과 흰색 사이를 힘주어 썬다. 빽빽하게 겹친 잎 속에 숨어 있던 무늬와 소용돌이는 “우연이라기엔 너무도 아름답다”. 『맹렬한 허기』는 암에 덧씌워진 낡고 폭력적인 은유를 걷어내 삶을 계속하기 위한 새로운 은유를 빚어내는 책이다.
책 속으로
나는 우리 안에 들어앉아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들에 대해 자꾸 생각한다. 사랑과 공포, 정서적이고 육체적인 흉터들을.
---p.12
오늘은 발사믹 향을 너무 깊이 들이마셨을 때처럼 피부가 따끔거리는 날이므로 식초와 새콤한 사과의 톡 쏘는 맛도 간절하다. 얇게 썬 양파 두 개의 매운맛이 달콤하게 가라앉을 때까지 볶다가 회향 씨의 달콤하고 알싸한 향을 더해 방 전체에 따스함이 퍼지게 한다. 큼직하게 썬 그래니 스미스 사과 세 개를 양파에 넣고 부드럽게 섞은 다음 다시 보라색 양배추로 시선을 돌린다. 양배추를 썰어 냄비에 넣고 발사믹 식초를 충분히 부은 뒤 한 시간 동안 뭉근히 익힌다. 병변 같은 생각은 떨쳐버리고 진한 보라색과 흰색 사이를 필요 이상으로 힘주어 썰어나간다. 빽빽하게 겹친 잎 속에 숨어 있는 무늬와 소용돌이는 우연이라기엔 너무도 아름답다.
---p.20
우리는 진정 고유한 존재인가, 아닌가? 과학은 우리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는 시스템과 네트워크, 가족과 친구라는 매트릭스, 그리고 패턴 속에 존재한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세포 단위에서도 시간과 공간과 논리를 뛰어넘어 모두 연결되어 있다. 어쩌면 개별성이야말로 우리가 만들어낸 신화일지 모른다.
---p.22
뼈가 우리를 배신할 때, 아이들이 자라지 않을 때, 어머니가 소아암에 걸릴 때, 우리가 믿었던 뼈가 더 이상 우리를 지탱해주지 못할 때,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우리 삶을 어떻게 똑똑히 설명할 수 있을까?
---p.49
사실 우리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여성이 생각하고, 느끼고, 우려하는 것을 우리는 어떤 인간인가에 대한 해설로 변질시키고, 우리가 느끼는 것을 히스테리나 상상의 산물로 치부하는 의학계의 오랜 습성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강한 감정을 표현하면 생리 전 증후군이냐는 조롱 섞인 무시나 들어야 했던 게 한두 번인가? 히스테리 환자 취급을 받았던 건 또 몇 번인가? 1978년 데니스 도너휴가 『뉴욕타임스』에 쓴 수전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 서평조차 손택이 화가 나 있다는 이유로 작품을 폄훼했다. 음식을 뜬금없는 조합으로 먹으면 “임신했냐?”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던가? 대통령 선거가 달아올랐을 때 여성 후보가 날카롭다는 소리를 얼마나 자주 들었던가? 그 후보가 폐렴 때문에 대중 앞에서 휘청거렸는데도 회복할 시간도 없이 체력이 형편없다는 비난이나 듣는 상황에 놀라는 여성은 내 주변에 단 한 명도 없었다. 우리는 미국 전역에서 자행되는 가스라이팅을 들었다. 우리는 분명히 들었는데 듣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그런 말을 들었다. 나는 당신 말을 믿지 않아요…….
---pp.57-58
나는 나를 둘러싼 조리 도구들의 화려하고 선정적인 색깔을 보며, 어머니가 회복할 수 있도록 고요해진 이 집의 풍경과 가스레인지 위에 놓인 파르메산 국물의 투명함을 보며 웃고 만다. 조금만 더 나의 은유들을 붙들고 있을 것이다.
---p.72
나는 이 부르기뇽 안에서 어머니가 잃어버린 시간이 되살아나길 기다린다. 독한 독소 주사가 몸에 부어진 여섯 시간이 우리 존재의 나머지를, 우리 안의 어두운 빈 곳을 채워주는 음식의 여섯 시간으로 대체되길 기다린다.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한 해를 보내고 다음 해를 맞이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다린다.
---p.140
희망이 깃털 달린 것이라면 기쁨은 햇살 속에서 부풀어 오르는 비눗방울 속에 있다. 기쁨은 내장으로 느끼는 것이고, 사랑의 에너지다. 위장을 간지럽히는 설렘이고, 흉곽을 부풀리는 자긍심이다. 웃음은 바로 여기서 탄생한다. 그러니 빵 굽기의 즐거움이 우리를 이토록 충만하게 채워주는 게 과연 놀라운 일이겠는가?
---pp.147-148
어째서 우리는 다른 질병에는 부여하지 않는 도덕성을 암에만 투영하게 되었을까. 어쩌다 암을 근본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죽음의 방식으로 보게 되었을까. 암에 투영된 이 도덕적 잣대 탓에 담배를 피우다 폐암에 걸리면 자업자득이지만 평생 담배 한 번 피운 적 없는 배우자가 폐암에 걸리면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 되고 만다. 의료 서비스의 불평등이 생사를 결정짓는 현실은 또 어떤가. 그 불공정은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무겁다. 소위 현대 의학의 기적은 신이 내리는 기적만큼이나 자의적이다. 어떤 사람은 구원받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한다. 지금 당장 내가 믿는 단 한 가지는 집 안 가득 스며들어 상심한 내 친구를 향한 슬픔으로 어룽진 어두운 구석구석을 채워주는 돼지고기와 사과와 회향의 달콤함뿐이다.
---p.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