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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0월 프라이팬의 이름은 애그니스 … 9
11월 나는 당신 말을 믿지 않아요 … 43
12월 우리는 어둠과 촛불과 기다림의 사람들 … 89
1월 환대받지 못한 씨앗 … 117
2월 모든 전투에서 패배하고도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 125
3월 희망이 깃털 달린 것이라면 기쁨은 햇살 속에서 부풀어 오르는 비눗방울 속에 … 135
4월 신성함과 일상 사이 순간 … 161
5월 기억을 요리에 넣는 일 … 177
6월 몸은 하나의 주먹이 되고 그렇게 우리는 살아남는다 … 203

감사의 말 … 211
옮긴이의 말 … 214
저자 소개
저자 : 캐런 바빈
에세이스트이자 교육자. 장소와 풍경에 새겨진 기억을 따라 인간과 자연, 가족과 역사의 관계를 탐구하는 글을 쓴다. 미국 중북부의 미네소타주에서 나고 자랐으며, 미국 북부 지역의 척박한 토양과 독일계와 스웨덴계에 뿌리를 둔 가족사는 바빈의 작품 세계를 이루는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논픽션 연구 저널 『어세이』(Assay)의 창립자이자 편집장으로 활동하며, 현재 미국 테네시대학교의 채터누가 캠퍼스에서 창작 논픽션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물과 우리가 아는 것』(Water and What We Know) 『다른 곳을 꿈꾸며』(The Allure of Elsewhere) 등이 있다.
『맹렬한 허기』에서 캐런 바빈은 희귀암 진단을 받은 어머니를 보며 이렇게 질문한다. “열이 나면 굶기고, 감기에 걸리면 먹이라는데, 암은 어떻게 해야 할까?” 평생 채식주의자로 살아온 바빈은 어머니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면 무엇이든 만들기 위해 사골 육수와 소고기찜 같은 낯선 요리의 세계에 뛰어든다. 손끝으로 고기를 누르고, 묵직한 뼈를 우리고, 재료를 썰고 다지는 나날 가운데 바빈은 음식과 가족, 질병의 관계를 성찰한다. 왜 나는 질병이라는 불확실성을 메우기 위해 음식 은유를 끌어오는가? 환자를 쉽게 지워버리는 의료 시스템에서 언어는 어떤 힘을 가지는가? 암이라는 부조리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삶의 의미를 만들어가는가? 『맹렬한 허기』는 질병을 통과하는 시간에 대한 기록이자 요리라는 행위를 통해 이해할 수 없는 고통에 다가가려는 분투다.

역자 : 이주혜
번역가이자 소설가. 저자와 독자 사이에서, 치우침 없이 공정한 번역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영어로 된 문학 작품을 아름다운 우리말로 옮기는 데 관심이 많아 아동 작가로 활동하면서,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기획 및 아동서 및 자녀교육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역서로 『왜요, 엄마?』, 『레이븐 블랙』, 『지금 행복하라』, 『거인나라의 콩나무』, 『고대 이집트의 비밀은 아무도 몰라!』 , 『카즈딘 교육법』, 『놀이의 힘』, 『하루 종일 투덜대면 어떡해! : 매사에 부정적인 어린이가 행복해지는 법』, 『블러드 프롬이즈』 등이 있고, 저서로는『반쪽이』, 『콩중이 팥중이』, 『세계명작 시리즈 - 백조왕자』, 『세계명작 시리즈 - 톰팃톳』, 『전래동화 시리즈』(1-5), 『양육 쇼크』, 『아빠, 딸을 이해하기 시작하다』, 『아이의 신호등』, 『프랑스 아이처럼』,『세상에서 가장 쉬운 그림영어사전』외 다수가 있으며, 2016년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쓴 책으로 『자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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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풍요롭고도 날카로운 향,
깊은 우울에 빠지거나 공포에 질려 무기력해질 때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강력한 사랑의 맛

암의 나날에 바빈이 마주한 건 어머니 몸에 발생한 병변만이 아니다. 여성이 분명히 느끼는 고통을 과장의 산물로 변질시키는 의학계의 오랜 관성, 암을 ‘승리해야 할 전쟁’이나 하늘이 인간을 시험하려 내린 시련으로 보는 오래된 언어 역시 바빈을 내리누른다. 손택은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질병을 바라보는 가장 ‘진실한’ 방법이 은유적 사고로부터 멀어지는 데 있다고 썼다. 바빈은 질병을 둘러싼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비유를 경계하는 손택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면서도 은유를 내려놓지 못한다. 중고 가게에서 싼값에 들여온 빈티지 냄비와 프라이팬에 왜 애그니스, 에스텔, 미니, 페넬로페 같은 이름을 붙이고 그들을 친구 삼았는지 설명할 길이 없지만, 그럼으로써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알 수 없음’을 밀어내고 있으니까. 녹아내린 치즈가 황금빛 국물 위에 레이스 무늬를 그리는 순간, 품에 안긴 조카를 ‘호박’, ‘꿀’이라 부르며 재우는 순간처럼 사소한 일상과 우리가 서로에게 붙인 이름이 우리를 웃음 짓게 하니까. 이렇게 조리 도구와 재료에 바빈은 마음을 기댄다. 뭉근하게 끓인 양배추가 간절한 어느 날, 진한 보라색과 흰색 사이를 힘주어 썬다. 빽빽하게 겹친 잎 속에 숨어 있던 무늬와 소용돌이는 “우연이라기엔 너무도 아름답다”. 『맹렬한 허기』는 암에 덧씌워진 낡고 폭력적인 은유를 걷어내 삶을 계속하기 위한 새로운 은유를 빚어내는 책이다.


책 속으로

나는 우리 안에 들어앉아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들에 대해 자꾸 생각한다. 사랑과 공포, 정서적이고 육체적인 흉터들을.
---p.12

오늘은 발사믹 향을 너무 깊이 들이마셨을 때처럼 피부가 따끔거리는 날이므로 식초와 새콤한 사과의 톡 쏘는 맛도 간절하다. 얇게 썬 양파 두 개의 매운맛이 달콤하게 가라앉을 때까지 볶다가 회향 씨의 달콤하고 알싸한 향을 더해 방 전체에 따스함이 퍼지게 한다. 큼직하게 썬 그래니 스미스 사과 세 개를 양파에 넣고 부드럽게 섞은 다음 다시 보라색 양배추로 시선을 돌린다. 양배추를 썰어 냄비에 넣고 발사믹 식초를 충분히 부은 뒤 한 시간 동안 뭉근히 익힌다. 병변 같은 생각은 떨쳐버리고 진한 보라색과 흰색 사이를 필요 이상으로 힘주어 썰어나간다. 빽빽하게 겹친 잎 속에 숨어 있는 무늬와 소용돌이는 우연이라기엔 너무도 아름답다.
---p.20

우리는 진정 고유한 존재인가, 아닌가? 과학은 우리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는 시스템과 네트워크, 가족과 친구라는 매트릭스, 그리고 패턴 속에 존재한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세포 단위에서도 시간과 공간과 논리를 뛰어넘어 모두 연결되어 있다. 어쩌면 개별성이야말로 우리가 만들어낸 신화일지 모른다.
---p.22

뼈가 우리를 배신할 때, 아이들이 자라지 않을 때, 어머니가 소아암에 걸릴 때, 우리가 믿었던 뼈가 더 이상 우리를 지탱해주지 못할 때,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우리 삶을 어떻게 똑똑히 설명할 수 있을까?
---p.49

사실 우리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여성이 생각하고, 느끼고, 우려하는 것을 우리는 어떤 인간인가에 대한 해설로 변질시키고, 우리가 느끼는 것을 히스테리나 상상의 산물로 치부하는 의학계의 오랜 습성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강한 감정을 표현하면 생리 전 증후군이냐는 조롱 섞인 무시나 들어야 했던 게 한두 번인가? 히스테리 환자 취급을 받았던 건 또 몇 번인가? 1978년 데니스 도너휴가 『뉴욕타임스』에 쓴 수전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 서평조차 손택이 화가 나 있다는 이유로 작품을 폄훼했다. 음식을 뜬금없는 조합으로 먹으면 “임신했냐?”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던가? 대통령 선거가 달아올랐을 때 여성 후보가 날카롭다는 소리를 얼마나 자주 들었던가? 그 후보가 폐렴 때문에 대중 앞에서 휘청거렸는데도 회복할 시간도 없이 체력이 형편없다는 비난이나 듣는 상황에 놀라는 여성은 내 주변에 단 한 명도 없었다. 우리는 미국 전역에서 자행되는 가스라이팅을 들었다. 우리는 분명히 들었는데 듣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그런 말을 들었다. 나는 당신 말을 믿지 않아요…….
---pp.57-58

나는 나를 둘러싼 조리 도구들의 화려하고 선정적인 색깔을 보며, 어머니가 회복할 수 있도록 고요해진 이 집의 풍경과 가스레인지 위에 놓인 파르메산 국물의 투명함을 보며 웃고 만다. 조금만 더 나의 은유들을 붙들고 있을 것이다.
---p.72

나는 이 부르기뇽 안에서 어머니가 잃어버린 시간이 되살아나길 기다린다. 독한 독소 주사가 몸에 부어진 여섯 시간이 우리 존재의 나머지를, 우리 안의 어두운 빈 곳을 채워주는 음식의 여섯 시간으로 대체되길 기다린다.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한 해를 보내고 다음 해를 맞이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다린다.
---p.140

희망이 깃털 달린 것이라면 기쁨은 햇살 속에서 부풀어 오르는 비눗방울 속에 있다. 기쁨은 내장으로 느끼는 것이고, 사랑의 에너지다. 위장을 간지럽히는 설렘이고, 흉곽을 부풀리는 자긍심이다. 웃음은 바로 여기서 탄생한다. 그러니 빵 굽기의 즐거움이 우리를 이토록 충만하게 채워주는 게 과연 놀라운 일이겠는가?
---pp.147-148

어째서 우리는 다른 질병에는 부여하지 않는 도덕성을 암에만 투영하게 되었을까. 어쩌다 암을 근본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죽음의 방식으로 보게 되었을까. 암에 투영된 이 도덕적 잣대 탓에 담배를 피우다 폐암에 걸리면 자업자득이지만 평생 담배 한 번 피운 적 없는 배우자가 폐암에 걸리면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 되고 만다. 의료 서비스의 불평등이 생사를 결정짓는 현실은 또 어떤가. 그 불공정은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무겁다. 소위 현대 의학의 기적은 신이 내리는 기적만큼이나 자의적이다. 어떤 사람은 구원받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한다. 지금 당장 내가 믿는 단 한 가지는 집 안 가득 스며들어 상심한 내 친구를 향한 슬픔으로 어룽진 어두운 구석구석을 채워주는 돼지고기와 사과와 회향의 달콤함뿐이다.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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