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추천사
조재도 (시인)
분명한 것은 시인은, 아무튼 섬세하고 내밀한 감각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그러한 내면의 감각을 통해 시인은 현상계 ‘너머’를 보기도 하고 그 안에 널려져 있는 시를 발견하기도 한다. 평생 지속되는 그런 고되고 즐거운 작업을 통해 시인은 자기만의 세계에 가닿는데, 그것이 그 시인의 독특한 지점을 이룬다. 이 시집에서 그 세계는 ‘당신’이라는 말로 구체화된다. 시집 3부에 들어 있는 ‘당신’의 세계는 현상계 너머, 이를테면 만해 한용운이 그리려 했던 ‘님’의 세계에 잇닿아 있어, 만물일여(萬物一如)의 차원을 송가(頌歌)의 형식으로 노래한다. 그리고 그 핵심 ‘벼리’인 당신은 시집에서 종이배, 꽃, 나비, 바람, 노을, 빛 같은 낱말로, 또 4부의 평화 연작시라는 단형 서정시로 변주되어 나온다.
하나의 시집에서 어떤 세계를 드러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시인의 시적 역량 외에 인생을 총체적으로 보는 눈, 안목이 없이는 불가하다. 일가(一家)를 이룬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독자적 일가는 많은 삶의 경험과 깊은 인식을 바탕으로 하는데, 나는 신탁균의 이번 시집에서 그것을 느낀다.
우대식 (시인)
“보이지 않는 것을 쓰고 싶었다”는 시적 고백은 이 시집 전체를 아우르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많은 시편들이 길 위에 서성이는 시적 화자를 영성 가득한 문장으로 그리고 있는 것도 바로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 나선 페르소나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삶과 죽음 앞에 선 절대 실존이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끝없이 회고하고 상상하여 도달한 결론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왔고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간다는 깨달음은 매우 흥미롭다. 이러한 성찰적 태도 앞에 서면 “보이지 않는 것을 쓰고 싶었다”는 욕망은 근원적이면서도 동시에 당연하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이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신탁균 시인은 시를 통하여 찾아가겠다고 다짐한다. 진리 혹은 근원으로 가기 위한 도구로서의 시라는 설정은 현대미학론을 떠올리게 한다. 하이데거는 예술작품의 진리는 보다 근원적인 것이고, 예술가는 일종의 영매와 같은 역할을 할 뿐이라고 말한다. 즉 예술가는 주관적 견해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알 수 없는 근원에서 진리를 끄집어내는 매개체라는 것이다. “이 시집은 뗏목이다”라는 선언적 문장은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매개로서 하이데거적인 예술가의 태도를 선명히 보여준다.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한 부단한 운동은 근원적 진리와의 부단한 만남을 뜻하는 셈이다. 그러한 점에서 예술가의 초상으로서 자화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인의 말
연민,
마음,
기억,
평화,
보이지 않는 것을 쓰고 싶었다
삶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왔고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고 있지 않은가
이 시집은 뗏목이다
강을 건너
저 먼 곳을 가기 위한
깊이만큼 흔들리는 몸짓으로 강을 건너고 있다
책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도(본문 16-17쪽)
오가는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엄마가 공원 벤치에 앉아 아기를 포근히 감싸 안고 젖을 주고 있다
아기는 고사리손을 오므렸다가 펴면서 엄마 젖우물을 잡고 오물오물 빨며
눈은 엄마의 눈을 맞추고 코는 엄마의 냄새를 맡고 귀는 엄마의 심장 소리를 듣는다
엄마의 배꼽과 아기의 배꼽이 서로 맞닿은
두 개의 몸이 본래의 하나로 다시 돌아가는 원초적인 포유류의 시간
신의 젖줄을 읽는 거룩한 시간에
세상에 오직 하나만으로 위해 기도하듯
아기에게 젖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