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역의존·노모패시·리머런스·대상향상성·
말비빔·이중 구속·피플 플리저·판타즘…”
현대인의 불안과 관계, 상처와 방어를 해석하는
스물여덟 가지 마음의 언어
책의 1부에서는 ‘세상의 기대와 타인의 기분에 맞추느라 자신의 마음을 돌보지 못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살펴본다. 열심히 하고도 “별거 아니었다”고 말하게 하는 ‘EP문화’,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자의식’과 정상성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하는 ‘노모패시’를 통해 오늘의 불안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되짚는다. 상대의 기분을 먼저 살피는 ‘피플 플리저’, 기대받는 역할만 수행하는 ‘역할 반응성’ 등도 자세히 다룬다. 저자는 이렇듯 알 수 없는 마음들을 개인의 예민함이나 부족함이 아니라 타인의 요구와 관계의 구조 속에서 형성된 심리적 반응이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타인에게 쏟는 관심 대신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들여다보는 것에 집중해보기를 권한다.
2부에서는 ‘사랑하면서도 미워하고, 함께 있어도 외로운 관계의 모순’을 들여다본다. 보고 싶지만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양가감정’, 상대방에게서 답장이 늦어질 때 버림받은 듯 느끼는 ‘대상항상성’, 연인과 함께 있어도 외로운 마음을 ‘혼자일 수 있는 능력’으로 설명한다. 좋아하는 사람을 보고 싶은 대로 보게 만드는 ‘판타즘’, 의미 없는 말들이 뒤엉키는 ‘말비빔’, 타인의 감탄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자기애적 공급’ 등도 살펴본다. 책은 반복되는 관계의 상처를 단순히 자신의 탓이나 타인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서로에게 가지는 관심에서부터 작동하는 결핍과 기대, 의존의 방식이라고 말하며 똑같은 관계의 패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실마리를 제시한다.
“과연 ‘정상’이라는 기준에 포섭되지 못한다고 느끼는 감정이나 경험은 과연 삶에서 들어내야 할, 불필요한 경험이어야 할까? 노모패시가 있는 사람은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생각하고, 의미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 자기 의심, 자기 탐구, 내면의 모순을 허용하게 되면 지금의 나를 ‘정상적’이라고 여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맥두걸은 오히려 반대라고 말한다. ‘정상성’을 극도로 강조하는 사회에는 어느 정도의 ‘비정상성’이 오히려 자신을 들여다보는 단서가 된다.”(47쪽)
“양가감정을 이해하고 담아내는 것은 복잡한 내 마음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이것도 저것도 적절하지 않거나 충분치 않은 마음은 결코 틀린 게 아니다. 전혀 다른 듯 보이는 두 가지 마음을 연결하고 통합할 수 있으려면, 내 안의 복잡한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힘이 필요하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실망할 수 있고, 신뢰하면서도 분노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더 성숙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감정은 언제나 단순하지 않다. 그리고 단순하지 않아도 괜찮다.”(91~92쪽)
3부에서는 ‘지나간 기억과 오래된 상처가 현재의 감정과 관계에 남긴 흔적’을 추적한다. 사건 당시에는 괜찮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비로소 아파지는 경험을 ‘사후성’이란 개념으로 설명하고, 자신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어떻게 ‘내면화’되었는지 살펴본다. 타인의 도움을 거부하는 ‘역의존’과 후배에게 자리를 빼앗길까 불안해하는 ‘시블링 트라우마’, 과거에 상처받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트라우마 내러티브’의 흔적도 들여다본다.
4부에서는 ‘불안과 고통을 견디기 위해 마음이 만들어낸 심리적 생존 전략’을 살펴본다. 미운 사람에게 오히려 더 잘해주는 ‘반동 형성’, 아픈 증상을 통해 보호와 관심을 얻으려는 ‘이차적 이득’, 슬픔과 공허를 과도한 활동으로 덮는 ‘조적 방어’ 등이 그것이다. 저자는 모든 잘못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도덕적 방어’와 스스로 좋은 기회를 얻는 것을 두려워하는 ‘요나 증후군’, 날것의 감정을 소화할 수 있는 경험으로 바꾸는 ‘알파 기능’을 통해 성숙한 마음의 작동 방식이 어떠한 것인지까지 나아간다. 책은 방어기제를 미성숙한 것으로 단정하지 않고, 한때 자신을 지켜준 전략을 이해할 때 새로운 방식으로 바꿔갈 수 있다고 말한다.
“비온은 적절한 좌절이야말로 우리 안에 내재된 창의성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했는데, 이는 이해할 수 없고 배울 수 없는 경험들 속에서 오히려 새로운 사고와 창조가 싹튼다는 말이기도 하다. 견딜 수 없어 보이는 것을 소화하고 견뎌내는 과정에서 알파 기능은 우리에게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알파 기능이 활발히 작동한다는 것은, 경험이 단순한 자극과 반응이 아니라 의미 있는 것으로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는 뜻이다. 설명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었던 감정과 경험이 ‘생각되고’ ‘견딜 만해’지면서 말이다.”(305쪾)
“소화되지 않은 감정을 ‘담아줄’ 공간 찾기”
당신과 나에 대해 AI에게 물어보는 것을 멈추고
함께 읽었으면 하는 책
성과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 경제적 불안, ‘정상성’에 대한 집착, SNS를 통한 비교와 관계의 피로가 일상이 된 오늘. 많은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기도 전에 그것을 빠르게 진단하고 해결하려고 한다.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손쉽게 생성형 AI에 자신의 증상을 입력해 ‘우울’ ‘번아웃’ ‘애착 유형’ 같은 진단명을 확인하고 잠시 안도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나는 왜 이 사람 앞에서 유독 작아지는지’ ‘왜 쉬면서도 불안한지’ ‘왜 사랑받고 싶으면서도 가까워지는 것은 두려운지’ 깊은 내면까지 충분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자신을 하나의 유형이나 증상으로 단정하는 일이 아니라, 지금의 감정이 어떤 관계와 경험 속에서 만들어졌는지 이해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모호한 마음에 이름 붙이기》는 정신분석의 언어를 빌려 낯설고 모순된 마음을 섣불리 고치려 하기보다 천천히, 그리고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 설명할 수 없었던 마음에도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독자들은 자신을 탓하는 대신 이해하기 시작하고 오래 반복해온 감정과 관계의 패턴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삶에는 예측 불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 삶의 불확실성을 마주할 때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비온의 말대로 기억과 욕망, 이해 없이 미리 정해둔 방향을 고집하지 않을 때 새로운 깨달음과발견이 솟아날 공간이 생긴다. 가짜 안전감 속에 숨어 있는 것은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견디는 능력이라고 할 수 없다. 모호함을 견디는 것은 회피와 다르며, 성급한 단정을 유예하는 태도다.”(293쪽)
얻어가는 것이 한 문장이라도 있으면 충분히 좋은 책이라는 생각으로 독서를 한다. 그런데 챙겨가야 할 문장들이 너무 많은 이 책을 만났다. 책의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모호한 마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무엇인지 정체도 모르는 감정과 생각들에 답 없이 괴로워하다가, 그를 설명하는 언어를 만날 때 비로소 편안해지던 얼굴들. 아무리 바쁜 삶 속에도 무의식을 살펴보며 살아야 하는 이유다. 그 안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독서와 사유, 심리상담은 비효율적이란 이유로 뒷전으로 밀리는 오늘날, 이 책이 무의식 탐험의 매우 효율적인 가이드가 되어줄 것이다.
― 김지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실은 우리 모두 아프다. 아닌 척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허리를 곧게 세워보지만 언제였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어떤 화살이 내 마음이라는 과녁에 슬쩍 와서 꽂혀 있는 걸 여전히 발견하지 못한 채 나약한 스스로를 채찍질 할 뿐이다. 《모호한 마음에 이름 붙이기》는 그 화살과 그로 인한 흉터와 고름에 대한 이야기다. 누군가와 마음의 상처를 공유하기로 결심하는 순간의 용기를 보여준다. 내 마음이 어떤 건지 알 수 없어 위로받을 수도 없던 순간의 틈을 언제나 따뜻한 온기로 함께 들여다보던 작가의 노력. 그 과정에서 작가가 하나씩 길어 올린 정신분석 단어들에는 여전히 쓰라린 상태의 우리가 앞으로 한걸음씩 나아가기를 결심하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이제 당신과 나의 상태에 대해 AI에게 물어보는 것을 멈추고 함께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 변영주,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