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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내며

1장 얼어붙은 입
나는 글을 쓰고 싶다 / 글로 쓰는 자화상 / 아무리 좋은 약도 음식만 못하다 / 나의 노래 / 밥맛은 평등하다 / 얼어붙은 입 / 인생에 숨은 맛 / 손 / 학(學)과 습(習)의 자리 / 창명재(昌明齋)

2장 가족
부부 / 아내의 외출 / 봄의 전령 / 돈 잘 쓰기 / 보고 싶습니다 / 수납장 / 좌 광어 우 도다리 / 밤나무 세 가지 / 일거다득의 서울행 / 누부의 DNA / 형수의 초대 / 음식은 생명의 끈 / 노년의 꿈 / 여행 준비 / 짝지에게

3장 영도, 영세당
자리를 잡다 / 영도다리 그림 / 사색의 길 / 그런 친구 / 보석 거울 두 개 / 영도 봉래산 / 가을맞이 나들이 / 와(蛙)의 DNA / 애면글면 / 나만의 품, 카렌시아

4장 저승으로 건너갈 노櫓, 글쓰기
한을 풀다 / 오늘도 / 나를 찾아가는 길 / 기다림의 맛 / 인민군 소년병 / 하늘의 땅에 무엇을 심을까?

추천사
저자 소개
저자 : 권영현
1942년 경남 산청 단성에서 출생
동의보감 역자 운전 허민 선생 사사
신창동 삼일의료원 이화윤 선생 사사
1979년 동아대학교 경영대학원 졸
동대신동 만수한의원 조홍선 선생 사사
1962년 7월 경상남도 한약업사 자격 취득
1962년 서면 경남학원 강사
동년 9월 15일 동삼동 재건주택 115호 개업
1972년 영도구 대교동1가 이전 개업
2026년 6월 23일 폐업(육십육 년 근속)
저자 소개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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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전하지 못한 마음을 얼어붙은 입에서 꺼내다

1장 「얼어붙은 입」에서는 여든여섯 해를 보내며 품어온 생각과 삶의 지혜를 풀어낸다. 글공부를 하며 함께 서원을 다니는 사람들과 잘 지내보고 싶은 마음, 명예를 가지고 싶은 욕망으로 항상 피곤하고 외로웠던 지난날들에 대한 반성, 언제든 부르면 달려와서 술친구, 밥친구가 되어준 친구들에게 대한 고마움이 녹아 있다. 어머니는 해방 다음 해, 저자가 다섯 살이 되던 해에 돌아가셨다. 편찮으셨던 어머니의 손은 차고 앙상했다. 늘 누워 계시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새어머니가 오셨다. 눈치를 살피는 고양이처럼 할머니 꽁무니만 따라다녔다. 얼어붙은 입은 떨어지지 않고 엄마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2장 「가족」에서는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을 곁에서 묵묵히 함께해준 아내에 대한 마음, 딸과 아들에 대한 사랑, 가족을 향한 그리움을 쓴다. 부부는 60년을 함께했다. 그 시절 누구나 그러하듯 중매로 이어진 부부의 연이지만 밤나무 세 가지 같은 삼남매를 낳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었다. 갈치구이의 가운데 부분을 아내의 접시에 담아주고 꽁지 부분은 자신이 먹는다. 고구마도 제일 못생기고 작은 게 자신의 차지다. 이것이 저자가 아내를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서툴고 투박한 표현이지만 고락을 함께한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담뿍 묻어난다.

삶의 터전 영세당 한약방,
그리고 글쓰기로 나를 찾아가는 길

3장 「영도, 영세당」에서는 평생 삶의 터전이었던 부산 영도와 영세당 한약방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1962년 스무 살 풋내기 나이에 한약사 자격증을 딴 저자는 영도에 자리를 잡았다. 전차 종점이었고 배 수리소가 많은 곳이었다. 조선업이 한창일 때는 손님도 많았다. 60년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을 만나 수만 가지 약을 지었다. 이제는 문을 닫은 한약방이지만, 저자는 영세당을 나의 ‘분신’이며, ‘혼’이며, 나의 ‘이름’이라 부른다.

4장 「저승으로 건너갈 노, 글쓰기」에서는 한평생 한약방 일로 바쁘게만 살아왔던 삶에서 글쓰기를 만나고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해두었던 이야기를 꺼내 올린다. ‘나’를 찾기 위한 글쓰기였지만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바로 ‘어머니’이다. “할머니! 엄마는 언제쯤 안 아파? 인제 그만 아프면 안 돼?” 다섯 살 아이는 아픈 엄마 대신 할머니에게 투정을 부리고 떼를 쓴다. 괜한 짜증에 시냇가를 질러 달리고 달린다. 곱게 핀 백일홍은 꼭 엄마의 얼굴이다. 나를 찾기 위한 글쓰기는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을 부르고 사느라 잊어버린 그 무엇을 만나게 한다.
“나도 글 좀 잘 써보고 싶었다”는 소박한 바람은 글로 쓰는 자화상을 그려냈다. 그렇게 글쓰기는 삶을 살아낸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길이 된다.

책 속에서

p.20-21
나는 누군가와 말싸움을 해보거나 친구들과 말다툼을 해본 적이 별로 없다. 누군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물어보면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냥 싸울 일이 없었으니까.
좋은 게 좋은 것이다, 나는 역지사지를 머금고 다녔으니까. 늘 너였으니까, 늘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정인군자’로 행동하려 했으니까. 누군가에게 기분 나쁜 말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고, 내가 들어서 기분 나쁜 말은 그냥 비타민으로 삼켜버렸다. 나는 겁쟁이였고 용기 없는 사람, 준(準) 바보로 변한 지 오래니까.
_「글로 쓰는 자화상」

p.31
새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나는 조금씩 변했지만 도덕을 바탕으로 무심으로 지냈다. 서운할 것도 원망스러운 것도 없는데, 단 하나 잊을 수 없는 밥상이 있다. 12살 때였나, 새어머니께서 내 생일을 잊어버리고 생략해 버렸다. 아버지도 새어머니도 형들도 그 누구도 무심으로 몰랐다. 나 혼자만 끙끙 서러움을 누르면서 더 씩씩하게 친구들과 어울렸다. 아무리 씩씩해도 가슴을 스치는 것은 찬바람이었다.
내 집에 들어와도, 내 생일에도 따뜻한 밥 한 그릇이 없을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그 순간 찬바람이 마음을 스쳐 갔다. 나를 위한 밥 한 그릇이 담겨 있지 않다는 것이 곧 나를 향한 가족의 마음이 담겨 있지 않음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 느낌을 굳이 새어머니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무언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서운함이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를 사로잡은 것은 부인하기 어려웠다.
_「밥맛은 평등하다」

p.64
수선화는 어떤 꽃보다도 먼저 봄을 알리는 알뿌리 식물 중 하나다.
밝고 노란빛은 주위를 화사하게 하고 마음까지 밝게 만들며 봄을 대표하는 꽃. 상상만 해도 정겹다. 일반적으로 많이 보는 ‘떼떼’와 얼굴이 조금 더 큰 ‘타제타’ 얼굴이 가장 큰 왕수선화와 흰색과 주황색 꽃잎이 겹꽃으로 되어 있는 수선화도 있다.
“수선화하면 옴나위없이 뮈니 뭐니 해도 생동감 있고, 발랄한 노란색 수선화겠지요.”
나는 아내의 말에 장단을 맞춘다.
_「봄의 전령」

p.110
“그야 사고와 기호가 다 같을 수 없으니 어느 계절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나는 아무래도 새로 시작하고 희망이 느껴지는 봄이 아닐까 생각해요.”
답이 아니라 주석(註釋) 같다. 어딘가 미진한 생각에 餘運(여운)이 남는다. 옛날에 동짓날을 작은 설날로 삼은 것도 이날을 생명력과 광명의 부활, 만물이 회생하는 날이라 했으니 다음을 준비하는 겨울은 어떨까. 물론 추워 고생스럽지만 감추어 놓은 자리이다. 음력설에 ‘나무’ 심었다고 하지 않은가? 그래도 아내가 좋아한다면 봄이라도 좋다.
_「여행 준비」

p.141
내 고향 영도는 숨은 보배가 너무도 많다. 아름답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왕년에는 영도의 아름다움을 미처 느끼지를 못했다. 모든 사물이 그렇듯 모든 일도 한발 물러서 보아야 아름다운 것 같다. 물속에서 물을 모르고 산속에서 산을 모르듯 아름다움 속에서 아름다움을 모르고 살았다. 그저 살기에만 바빠서였을까? 철부지라서였을까? 나이 먹어서야 비로소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아마도 이제 모든 욕심을 내려놓아서일 것이다. 욕심만 버리고 보면, 어딘들 낙원과 천국 아닌 곳이 없겠지만 바다를 보고 잠들고 바다를 보고 일어나는 영도가 나에게는 최고이다. 다리만 건너면 지근거리에 만물이 풍성한 백화점이 있고 조금만 더 숨 쉬면 퍼덕거리는 해산물을 먹을 수 있는 자갈치가 보이고, 보이는 물물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는 것이다.
_「영도 봉래산」

p.182-183
“그 막대기 가지고 어디 가니?” 할아버지가 물으신다. “저 저 꽃 꺾으러. 꺾어서….” 자초지종을 들으신 할아버지는 그래 가자, 하시며 나의 머리를 쓰다듬고 내 뒤를 따라오신다. 꽃은 예쁘게 조금만 꺾었다. “아나! 어미 갖다주고 기운 차리라 해라.” “고마워. 어, 할아버지. 그런데 할아버지, 눈 아파요?” “응, 꽃 꺾다가 무엇이 들어갔나 보구나.” 할아버지의 능청이었다. 저녁에 아버지가 돌아오셨다. 무슨 꽃이냐고 물으신다. 엄마가 힘들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아버지도 눈에 무엇이 들어갔는가. 눈을 껌벅거리고 눈을 비빈다.
_「나를 찾아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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