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슬픔을 부둥켜안고 다정함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 같은 시편들
■ ‘눙물’에서 ‘눈물’로, 슬픔의 부등호를 지워가는 따스한 눈맞춤
임지나의 동시는 삶의 그늘이나 슬픔을 억지로 숨기거나 지우려 하지 않는다. 시인은 오타가 난 ‘눙물’이라는 단어 속에서 ‘흘리고 또 흘리는 진한 눈물’의 무게를 읽어내고, 기꺼이 자신만의 ‘슬픔의 부등호’를 그려본다(〈눙물〉). 하지만 그 슬픔은 결코 외로움에 머물지 않는다. 눈이 작은 친구를 위해 필통에 몰래 선물을 넣어두고, 황홀한 줄장미 하굣길을 같이 걸으며 그 눈을 서서히 크게 만들어 주겠다는 아이의 다짐 속에서 슬픔은 이내 단단한 다정함으로 승화된다(〈눈을 크게 만들 테다〉). 상처를 향해 더 크게 눈을 뜨고 가만히 들여다보겠다는 시인의 시선은 어린이들에게는 든든한 동무의 손길이, 어른들에게는 지나온 날의 아련한 위로가 되어 다가온다.
■ 고단한 일상의 결을 어루만지는 숭고하고도 아늑한 시선
이 시집이 지닌 가장 아름다운 서정성은 일상의 거친 결을 가장 부드러운 언어로 번역해 내는 힘에 있다. 밤낮없이 공장의 기계 밸브를 돌리던 아빠의 굳은 손가락이 피아노 건반 위에서 멈칫거리는 순간을 시인은 ‘망설이는 파도처럼 천천히 움직인다’고 노래한다(〈피아노 치는 아빠〉). 또한 변기를 닦고 펄떡이는 생선을 잡느라 붉게 얼룩진 엄마의 고무장갑을 한 손씩 번갈아 ‘달빛이 주물러주는 밤’을 선물하기도 한다(〈고무장갑〉). 고단한 노동과 생활의 현장을 따뜻한 주황빛 조명으로 비추는 이러한 시적 응시는, 우리 삶을 지탱하는 모든 작고 거친 것들을 향한 시인의 깊은 경의와 사랑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 ‘엄마’라는 든든한 발디딤대, 그리고 우리가 마주할 아름다운 미래
시집 곳곳에 흐르는 가족의 온기는 독자의 마음을 온통 찰지게 채워준다. ‘할머니’의 ‘할’자는 혼자 외롭게 피어 있는 슬픈 할미꽃 같지만, 내가 부르는 ‘엄!마!’라는 글자에는 나와 동생이라는 두 개의 네모난 발디딤대가 있어 딛고 일어설 수 있다는 발견은 실로 경이롭다(〈엄마〉). 외갓집을 떠날 때 조심 위에 조심을 더 얹어 비닐 탑을 쌓아주는 할머니의 사랑(〈외갓집〉)과 쑥 내고 쌀 내고 삯 내는 할머니의 찰진 랩(〈쑥인절미〉)은 우리 마음에 따스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나무는 미래다. 나는 미래의 나무를 지금 보고 있다”(〈나무〉)라는 시인의 고백처럼, 이 투명하고 서정적인 시집을 읽는 아이들은 누군가의 든든한 디딤돌이자 아름다운 미래의 나무로 자라날 것이 분명하다. 차가운 세상 속에서 우리가 결코 잃지 말아야 할 가장 순수한 ‘사랑의 렌즈’를 선물하는 작품이다.
시인의 말
6년 만에 세 번째 동시집을 냅니다. 그동안 태안에서 다시 군산으로 이사도 했고 동시 소재를 종종 주었던, 제 아이들도 많이 자랐습니다. 태안이 너무나 외져서 아무것도 못한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나온 제 책은 다 태안에서 썼더라고요. 일만 하며 사는 요즘에는, 태안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었나 절감합니다.
동시를 쓰면 나의 많은 것들이 움직인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체된 마음과 머릿속이, 유익하고 건강한 쪽으로 옮겨가는 느낌, 시의 언어를 마음에 지닌 이는, 그렇지 않은 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가지 못하는 곳을 간다라는 이야기도 있잖아요?
동시를 읽고 쓰는 저 귀여운 아이들 얼굴에서 웃음이 새고 있네요. 친구와 까불까불, 주위에 다정하게 말을 건네네요. 새롭고 재미있는 걸 또 발견했나 봐요. 맞습니다. 저 풍경이 우리의 진짜 모습입니다. 달팽이가 우주까지 자그마한 보폭으로, 영원히 가는 것처럼요.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무심하게요.
해설 써주신 현택훈 시인님, 오늘의 인연에 감동합니다. 그림 그려주신 구해인 작가님, 작가님 덕분에 제 동시집이 더 환해졌어요. 이번에도 손 많이 가는 저와 함께 해주신 브로콜리숲 김성민 시인님….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건강하세요!
야성의 6월 말
임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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