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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말들
깡통, 기계, 로봇
돌아갈 순 없지만
언제나 현재인 것을
붉은 실
에필로그

추천의 말: 둘 자리를 모르던 작은 진실_이주란 작가
해설: 비커밍 포스트휴먼-마인드웨어 업그레이드_황유지 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슬픔 같은 것들만 먹고 자라는 듯한 기억_전민식 작가
저자 소개
저자 : 전민식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제8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불의 기억>, <13월>, <9일의 묘>, <알 수도 있는 사람>, <강치>, <해정>, <우리는 오피스텔에 산다>, <그냥 내버려둬>, <길 너머의 세계>, <치킨 런> 등의 장편소설을 집필했다. 현재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과정에서 강의하며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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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비에 젖지 않고 바다로,
그렇게 훌훌 날아가버린… 사람… 기억

?기억상회?의 표면에는 인간과 인공지능 로봇의 이질적인 공존이 놓여있다. 그리고 이 소설의 이면에는 제주 4ㆍ3사건이 자리하고 있다. 루시는 꾸준히 속으로 자신에게 그리고 직접적으로 나모에게 질문한다. 왜 내게 온 것이냐고. 왜 나를 보호하려는 것이냐고.

루시가 기억을 담아내는 몇몇 의뢰인의 이야기에 제주 4ㆍ3의 기억이 함께한다. 루시는 의뢰인들이 자신과 얽혀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타자기로 가만가만 담아낸다. 기실 끈질기게 묶인 인연 앞에 루시가 보여주는 태도는 이런 인연 앞에 으레 있을 상투성을 답습하지 않는다. 루시가 자기 가족과 다른 이의 가족, 심지어 자기 가족을 망가뜨린 이의 가족을 모두 같은 태도로 대하는 부분은 전민식 소설이 지향하는 지점을 잘 보여준다. 뻔한 번민과 미움, 쉬운 복수와 용서 따위로 점철되지 않은, 더 크고 깊은 마음을 작가는 그리고 있다. 기억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라는 ?기억상회? 속 이야기에, 인간만이 지닐 수 있는 마음을 더하려는 노력, 그건 이 소설을 읽는 이유로 충분하다.

책 속에서

뇌리에 남아 끝없이 영혼을 갉아먹는 기억을 누군가에게든 내뱉어야 비로소 안식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기억상회는 훌륭한 기억의 도피처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었다.
_본문 20쪽

기억상회에 기억 기록을 의뢰하는 사람들은 거의 나 이외에 다른 외인이 참석하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다. 자기 부인은 물론 다른 가족 역시. 그들은 평생을 같이 살 비비고 살아온 부인이나 자식이나 형제들조차 자신의 지난 시절에 대해 알기를 바라지 않았다. 열에 아홉은 자신이 죽기 전에 자신의 기록이 공개되는 걸 원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영원히 묻히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었다.
_본문 23~24쪽

“듣고 있어? 나모는 차 박사 작품이라고. 인공지능 그러니까 휴머노이드란 말이야. 뭐라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그러니까 나모는 AI인간인 거야. 차 박사가 아들 생각하면서, 아들이 청년이 되면 이런 모습이겠구나 싶은 외모로 만들어낸 거라고.”
_본문 49쪽

“사람은 진실을 말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따로 있다는 거야. 그걸 강요하면 할수록 진실은 몸을 낮추고 숨는다고.”
_본문 83쪽

나이 든 노인들은 기억상회에 전화해 기록원을 불러 유언 같은 걸 남겼다. 변호사를 앞에 두고 늘어놓는 유언과는 달랐다. 후대에 전달될 재산에 대해선 다른 방식으로 유언을 남기는 듯했다. 그러니 기억상회의 기록원을 부르는 건 이생에서 말하지 못했던 생의 넋두리 같은 걸 늘어놓기 위함이었다. 그러니 기록 과정이 끝나고 봉인이 된 후 공개되기를 바라지 않는 것이리라.
_본문 92쪽

‘오늘 하루의 기억은 거의 잊히고 불과 1, 2분짜리의 영상이나 이미지만 부패하지 않고 남아서 뇌에 각인되지. 어떤 날은 아무것도 각인되지 않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을 증명할 만한 기억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알고 절망하기도 해. 기억이란 게 그래. 굉장히 많고 넓은 마당을 가진 것 같지만, 사실 하루면 한 사람의 기억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지.’
_본문 105~106쪽

“언니는 참 단순하다. 저 안에 누가 뭘 프로그래밍해놨는지 어떻게 아냐고!”
_본문 111쪽

“인간한테는 폐기해버리고 싶은 순간들,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순간들, 영원히 감추고 싶은 순간들이 있어. 그렇다고 그 순간들을 아예 폐기해버리면 인간은 더 이상 인간다워지지 않을 거야.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인간은 반성을 통해 성장한다고 믿거든. 아름다운 지식이나 효용가치가 있는 지혜나 학습만으로 성장하면……”
_본문 151쪽

루미가 서둘러 나간 뒤 나도 일어나려는데 나모는 꼼짝하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니 그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나와 나모가 방에서 나오지 않자 엄마와 루미가 방문 앞으로 다가와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루미는 나모의 얼굴을 보지 못한 척 홱 뒤돌아섰다. 엄마는 잠깐 동안 나모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방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그리곤 그의 등을 토닥거렸다.
_본문216쪽

그동안 기억을 저장한 사람들이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남기고 떠났다. 세상에 풀어놓을 수 없는 기억들. 실은 그런 기억들이 그들을 살아가게 만든 힘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고 잔혹했으며 때론 비열했고 서글픈 기억들이.
_본문 2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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