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심장 듣기’는 어떻게 나를 흔드는가
‘심장 듣기’는 어떻게 당신을 건드리는가
‘심장 듣기’는 어떻게 우리를 뒤바꾸는 사건이 되는가
《심장 듣기》에서 듣기는 청음과 구분된다. 청음은 귀의 기능으로 소리 신호를 인식하는 행위다. 여기에는 의식과 무의식이 동원될지언정 주체의 의지는 배제된다. 듣기는 어떨까? 저자는 청음이라는 자동적 행위에 주어진 메시지를 풀이하고 소화하려는 주체의 의지가 더해진 것이 바로 듣기라고 말한다. 일방향적 수음(受音)이 아닌 양방향적 교류로서의 의미 습득. 청자는 화자의 말을 자기 식대로 해석한 뒤 몸 안에 축적하거나 몸 밖으로 내보낸다. 축적된 말은 몸 안을 빙글빙글 돌아다니다 “어떤 사건을 마주했을 때 나를 두드”(18쪽)리고, 꺼내어진 말은 방금까지 화자였던 상대를 청자로 만들어 그 안에도 듣기의 내파를 새겨 넣는다. 진정한 듣기는 행위가 지속되는 당시로 끝나지 않고 소리가 사라지고 난 뒤에도 참여자 전원에게 영향을 미친다. 듣기 이전으로 돌아갈 방법은 없다. 이 불가역성을 이해할 때 듣기는 비로소 우리에게 중대한 사건이 된다.
타인의 말을 받아들임으로써 나 자신이 변화하는 게 듣기의 본질이다. 타인이 하는 말을 제대로 듣고, 내 삶이 흔들리고, 일부는 찢어지고, 그래서 고통을 느낀 내가 어제와는 다른 형태가 되는 일이다. (142쪽)
모두가 제 말만 하는 세상을 상상해보자. 다수가 내뱉은 말은 난반사된 빛처럼 공중에서 부딪치며 공해가 된다. 말은 어디에도 흡수되지 못한 소음이 된다. “사람은 들으며 변한다”라는 믿음을 가진 저자는 변화의 씨앗과도 같은 말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듣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강변한다. 말이 존재하기 위한 필수 전제이자 수호자로서 듣기는 말만큼이나 중요하다. 저자에게 좋은 대화란 그래서 한 명이 사라지는 대화가 아니고, 한 명만 두드러지는 대화도 아니고, 그저 “강강술래처럼 함께할 수 있는 놀이다”(9쪽). 저자는 모두가 화자 된 세상에서 청자로 존재하는 자의 고요함이 고결함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듣기의 위치를 재조정함으로써 증명한다.
‘말하는 몸’에서 ‘듣는 몸’으로,
말하며 주목받는 몸에서 들으며 깊어지는 몸으로!
우리를 해방시키는 청자 되기의 힘
1부 ‘나의 ‘듣는 사람’에게’는 저자가 듣기라는 일상적 행위의 비일상적 이면을 눈치챈 순간을 모았다. 일을 하고, 연인을 사귀고,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맞이하는 과정에서 듣기는 상황을 이해하고 난관을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잘 들리지 않는 작은 목소리로 입을 가린 채 말하는 연인과 잠을 자지도, 산책을 하지도 않고 보채기만 하는 강아지를 두고 저자는 소통의 벽을 느낀다. 이 불가해한 관계를 이어가는 동안 저자는 우연히, 그리고 운명적으로 듣기의 중요성을 깨우친다. 들어야만 들린다는 것, 들려야만 통한다는 것을 깨달은 저자는 “듣는 사람”으로 살겠다는 새로운 포부를 가슴에 새긴다.
2부 ‘타인 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듣기 없는 비정한 세계에 어떻게든 듣기의 자리를 마련하려는 기자의 분투을 담았다. 12월 3일 내란의 밤 국회 앞에서, 2016년 그리고 2026년의 강남역에서, 무안공항에서 저자는 오용된 권력과 끈질긴 여성 혐오, 반복되는 참사라는 거대한 비극을 마주한다. 직업인으로서 그 비극을 해결할 방안을 강구한 끝에 듣기라는 하나의 답에 다다른다. 부정한 공권에 맞선 민주 시민, 여혐 범죄 예방을 요구하는 여성, 참사 방지 대책을 요청하는 유가족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서는 문제의 해결도, 사회의 개선도 없다고 여기는 저자는 세계의 진보가 듣기로 가능했다는 사실을 일깨우며 우리 모두 듣는 몸으로서 연결되기를 촉구한다.
3부 ‘약하고 흔들리고 뒤돌아보는’은 평범한 생활인이자 성실한 기자라는 정체성 뒤에 숨은 저자의 은밀한 영혼을 비춘다. 저자는 외부 세계의 무례와 폭력성, 자기 안의 근원적 불안이 불거질 때마다 가장 만만한 싸움 상대인 자신의 몸과 불화한 시간을 반추한다. 든든한 동반자였던 우울증 약과 작별하고 눈물로 하루를 보내면서도, 자신의 결함이 타인에게 어느 정도까지 수용될지를 끊임없이 계측하면서도 저자는 “넓고 깊어지기” 위해 타인을 다시금 제 안에 받아들이고자 한다. 그리고 그 소망을 실현할 키워드가 듣기임을 다시금 깨닫고는 지체 없이 실행에 옮긴다. 듣기를 알기 전 압축된 자아와 듣기를 통해 해방된 자아를 동시에 펼쳐내는 이 진솔한 고백록은 독자에게 자기 발견의 한 방편으로서 듣기를 강렬히 욕망하게 만든다.
친구들과 즐겁게 수다를 떨고도 뒤돌아서면 허무할 때, 말을 나누면 나눌수록 왜인지 공허함이 커질 때, 그리하여 ‘진짜 대화’가 간절해질 때 이 책은 우리에게 작은 실마리를 쥐여줄 것이다. 다시 들어보라고, 선창을 따라 노래하라고, 그렇게 서서히 변화하는 자신을 발견하라고. 우리 모두가 알듯 듣기의 장점은 꼼꼼한 준비나 연습 없이 바로 돌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 속에서
내가 들어온 말은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걸까? 살아가면서 갑작스레 어떤 사건을 마주했을 때, 내 안에 그 사건을 설명할 언어가 없을 때, 그들의 목소리는 나를 두드렸다. _18쪽
나는 판결문을 몇 번이나 재독했다. 듣는 일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죽고 사는 일이기도 하다고. 그러나 그것은 비단 말하는 사람에게만이 아닌 듣는 사람에게도 그렇다고. 과거에 내가 들었던 말이 현재의 내게 도착해 나를 계속 듣는 사람으로 만든다. _20쪽
보는 것 혹은 말하는 것이 아닌 듣는 것으로 어떤 진실을 드러낼 수 있다는 생각. 〈해피아워〉를 처음 만난 날 기뻤던 이유는(기뻤다는 표현이 너무 상투적이라 쓰기 꺼려지나 다른 말로 대체하기가 어렵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어쩌면 이 감독도 중요하게 여긴다는 짐작에서였다. _47쪽
선배는 언론계 안팎에서 정치인을 다소 극적으로 촬영하는 기자로 잘 알려져 있었으나 나와는 주로 노동, 장애, 이주 등 기획 기사로 만났다. 우리는 팬데믹 당시 혐오 정서로 가득했던 대림동에서, 톨게이트 여성 노동자들의 농성 현장에서, 뇌병변 장애인 부부의 결혼식장에서, 이주 배경 청소년의 음악 교실에서 만났다. _60쪽
이 힘과 사랑을 목격한 이상, 더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절절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_80쪽
무엇이든 꽉꽉 채우기에 여념이 없는 사회에서 미리 자리를 비워둔다니? 듣는 행위에는 이렇듯 비생산적인 구석이 있다. 귀를 기울여서 잘 듣는, 잘 들으려 애쓰는 일은 생산적일 수도 효율적일 수도 없다. _115쪽
무더운 날이었지만 10주기 집회에는 수백 명의 시민이 참석했다. 주말이었고, 곧 있을 지방선거 취재로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지만 가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다. 나는 아무런 계기 없이도 종종 10년 전 그날의 강남역을 떠올렸다. 노트북을 챙겨 집을 나섰고, 그날처럼 강남역 10번 출구 앞으로 갔다. 역시 많은 메모지와 꽃다발이 있었다. _122쪽
어쩌면 사진을 찍는 일과도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찍는 이와 찍히는 이가 같이 호흡해 만들어낸 결과물에는 교감의 흔적이 어쩔 수 없이 묻어난다. 나는 인터뷰에 임할 때마다 그것이 오늘도 가능하기를 믿어보는 수밖에 없다. _136쪽
나는 안전한 사람들 앞에서라면 몸에 대해 말해도 다치지 않는다는 걸 거듭 확인했다. _143쪽
몸과 마음이 합심해서 가하는 지독한 공격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계속 고팠다. 자도 자도 계속 졸렸다. 자고 일어났는데 일어난 그 상태가 꿈인지 현실인지를 분간하지 못했다. 걷고 있어도 꿈 같았고 누워 있어도 현실 같았다. 나중에는 꿈이든 현실이든 그다지 상관없다고도 생각했다. _180쪽
내가 내게서 멀어져 거처를 옮긴다는 건 흔들림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_19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