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이 책 『나는 법무부 교정위원입니다』는 봄볕이 만물을 고요히 감싸듯, 가만히 스며들어 오래 머무는 따뜻한 책이다.
‘교정 현장’이라는 배경이 주는 무게감 때문에 다소 무겁게 느껴질 수 있지만, 책장을 덮는 순간 독자는 오히려 그 무게를 내려놓게 된다. 처음 품었던 우려가 얼마나 성급한 판단이었는지 깨닫게 만드는,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의 기록이다.
세 사람을 비추는 거울
이 책은 여느 좋은 책처럼 ‘거울’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 거울은 단순히 ‘나 자신’만을 비추지 않는다. 교정 현장의 ‘수용자’, 그리고 그를 통해 마주하게 되는 이름 모를 ‘타인’까지 함께 비춘다. 개인주의가 심화된 시대라 할지라도, 인간은 관계 속에서 성장한다. 저자 임만옥은 교정위원으로서 수용자들과 교육을 통해 만나며, 그 과정에서 형성되는 다양한 관계의 실제를 담담하면서도 깊이 있게 풀어낸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더 나은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실마리를 얻게 된다.
‘사람’이라는 이름의 무게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과 인공지능의 시대 속에서도, ‘사람’의 가치는 결코 대체될 수 없다. 이 책은 그 당연하고도 중요한 사실을 교정 현장의 이야기로 설득력 있게 전한다. 저자는 ‘사람으로 불리는 경험’, ‘스스로를 사람으로 인정하는 일’이야말로 인간다운 삶의 출발점임을 강조한다. 이는 변화의 출발선이자, 삶을 다시 세워가는 가장 중요한 기초다. 『나는 법무부 교정위원입니다』는 한 사람의 삶이 지닌 무게와 존엄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깊이 있는 성찰의 기록이다.
‘복원’이라는 희망의 언어
교정교육은 수용자의 변화를 돕는 과정이며, 교정위원은 그 길을 함께 걷는 안내자다. 그리고 그 궁극적인 목표는 ‘처벌’이 아닌 ‘복원’에 있다. 이 책에는 한 무기수가 저자와의 만남 이후 감사의 미소를 되찾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 미소는 단순한 감정의 표현을 넘어, 한 인간이 다시 ‘사람’으로 회복되는 순간을 상징한다. 저자는 바로 그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작은 계기들이 자신의 역할임을 담담히 고백한다. 여전히 무겁게 닫혀 있는 교정 현장의 문 앞에서,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발걸음을 가능하게 하는 이유 역시 이 책을 통해 독자와 나눈다.
책 속에서
그들이 처음 ‘들어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 이 공간은 상담실보다 더 깊은 울림을 만들어냈다. 내 이력 어디에도 ‘교도소 심리치료’라는 말은 없었다. 학문에서도, 실무에서도 이곳을 배운 적은 없었다.
... p. 25
나는 이 벽을 ‘넘어야 하는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그 벽은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쌓은 것이고, 그 벽을 허무는 일은 나의 기술이나 조언보다 그들의 용기가 더 많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 p. 32
나는 그 벽 앞에서 서두르지 않고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벽을 깨뜨려야 관계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그 벽이 스스로 낮아질 때까지 곁에 있어주는 일이 오히려 진짜 치유라는 것을. 담장 너머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수용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법적인 절차나 제도보다 먼저 자기 마음을 다시 들여다보는 경험이다. 회복은 거창한 단어가 아니라 조용한 태도와 따뜻한 시선에서 시작된다. 왜냐하면 마음의 벽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p. 33
자기 인생을 처음으로 돌아보는 일. 그 시간은 때로 두렵고, 서글퍼서 끝내 울음을 터트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은 반드시 지나야 할 하나의 산이다. 어두운 터널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 끝에는 아주 작은 빛이라도 기다리고 있음을 이들은 점차 깨닫기 시작한다. 좋았던 순간을 다시 떠올리고, 막연하지만 미래의 자신을 그려보는 일. 그 모든 과정을 이들은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조금씩 달라져간다.
... p. 43~44
나는 이곳에서 상담자가 반드시 말을 해야 한다는 통념이 항상 성립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러 번 확인했다. 이론적으로는 ‘해석·질문·반영’이 치료적 개입의 핵심이지만, 교정 환경에서는 과도한 개입이 관계 형성을 방해하기도 한다. 어떤 날은 적절한 개입이 떠오르지 않았고, 어떤 날은 질문이 상황과 맞지 않아 보였다. 그런 날에는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멈추는’ 것이 더 적절한 선택이었다.
... p. 52
이곳에서 나는 상담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상담은 기술 이전에 태도이며, 해결 이전에 관계이다. ‘존재해주는 일’은 무엇을 말했는가보다 어떤 상태로 그 자리에 있었는가의 문제이다. 특히 정서적 방어가 강한 사람일수록 기술적 개입보다 ‘정서적 안정감’과 ‘예측 가능한 태도’가 우선되어야 한다. 말이 떠오르지 않는 날에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날에도,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날들조차 누군가에게는 기억되는 시간이었다.
... p. 54
초기 만남에서 내가 배운 건 그 사실이었다. 이곳은 ‘통제된 공간’이기 전에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고, 내가 마주하는 사람들은 줄어든 자유 안에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관계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그 흐름을 ‘해석’하려 하기보다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조금씩 배워갔다.
... p. 57
하지만 심리치료는 거창한 기술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름을 불러주는 일’ 같은 단순한 행위에서 시작됐다. 이름을 기억한다는 건 마음을 기억한다는 것이고, “나는 당신을 한 사람으로 보고 있습니다.”라는 조용한 신호가 된다...(중략) ... 번호를 부르면 움직임만 생기지만, 이름을 부르면 마음이 반응한다. 물론 그 반응은 크지 않다. 눈을 피하던 사람이 잠깐 시선을 올리는 정도,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고개 숙임, 수업 끝나고 가기 전 감깐 멈칫하는 뒷모습 같은 것들. 하지만 그런 작은 변화들이 이곳에서는 가장 분명한 신호였다. 이름은 이곳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개인의 온도’였다.
... p. 67~68
이곳의 무표정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보호를 위해서 다른 하나는 잊어서다. 감정을 감추기 위해 무표정을 유지하는 사람들은 약점이 드러나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너무 잘 안다. 그래서 그들은 감정을 가장 먼저 감추는 법을 배웠다. 반대로, 너무 오랜 시간 감정을 사용하지 않아 표정을 잊어버린 사람도 있다. 슬픔을 표현할 기회조차 없었고, 기쁨을 표현해도 받아줄 사람이 없었던 시간들. 그런 얼굴에는 깊은 피로가 남아 있다. 그 피로는 침묵 속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 p. 74~75
처음 그의 침묵을 나는 ‘무관심’으로 읽었다. 하지만 몇 번의 만남이 지나자 그것이 거절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그는 감정이 없어서 조용한 게 아니었다. 감정이 너무 많아서, 말하다 보면 그 감정이 한꺼번에 쏟아질까 두려워 스스로를 꽉 붙잡고 있는 사람이었다. 어떤 사람은 감정이 적어서 말이 없고, 또 어떤 사람은 감정이 너무 많아 말을 하지 못한다. 그는 후자였다. 감정이 큰 사람들은 말 대신 몸으로 숨는다. 손끝에 힘이 잔뜩 들어가고, 어깨는 움츠러들며, 눈은 바닥으로 고정된다. 그는 나를 밀어내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무너질까 봐 나와 거리를 만들고 있었다.
... p. 82
그리고 그 작은 틈은 결국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 교육의 목표는 기술을 배우는 것도, 감정 조절 훈련을 하는 것도 아니다. 결국 자기 자신을 다시 보는 일이다. 그들이 자신에게 돌아가는 그 길 위에서 나는 잠시 머무는 사람일 뿐이다. 변화는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발견한 것이다. 나는 그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는 사람이다.
... p. 105
변화는 언제나 요란하지 않게 온다. 처음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사람이, 고개를 들고 눈을 마주치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누군가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들. 그 조용한 움직임 하나하나가 바로 회복의 시작이다. 한때 스스로를 ‘버림받은 사람’이라 여겼던 그의 눈빛에는, 이제 아주 작지만 확실한 희망의 빛이 떠오르고 있었다.
... p. 114
그 말은 그냥 감사 인사가 아니다. 그들에게 상담실은 마약이 개입하지 않은 ‘정상적인 자기 자신’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간의 무게를 절대 가볍게 보지 않는다. 그들은 재범을 반복해왔고, 그걸 누구보다 부끄러워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누구보다 바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 p. 129
“다시 시작하고 싶어요. 근데 그게 가능할까요?”
나는 그 질문이 치료가 닿을 수 잇는 가장 먼 지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변화는 화려한 행동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가능할까요?”라는 조심스러운 질문 속에서 더 큰 결심이 담겨 있다. 그 속에는 ‘가능했으면 좋겠다’, ‘나도 다시 살아보고 싶다’는 바람이 스며있다. 나는 단정적인 대답 대신, “가능하다고 믿는 게 시작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수많은 언어보다 더 깊은 반응이었다.
... p. 145~146
심리학적으로도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 중 가장 부정적인 측면만을 강조할 때, 삶의 동기와 자존감이 급격히 악화된다는 연구들이 있다. 반면, 자신의 다양한 측면을 인정하고 과거의 행동을 현재의 책임과 분리해 볼 수 있는 사람일수록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이 높고 변화에 대한 내적 동기도 살아난다. 결국 ‘사람’으로 불리는 경험은 단순한 따뜻함 이상의 심리적 자원이다. 그 자원은 변화의 토양이 된다.
... p. 153
상담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라는 사실을, 그곳에서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어떤 자세로 그 자리에 앉아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설명하거나 해석하려 들기보다, 그 감정이 마무를 수 있도록 기다리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도 배웁니다.
... p. 158
교정위원은 교도소에 들어가 사람을 만나는 사람이고, 그 안에서 구조 안의 삶을 함께 견뎌보는 일을 합니다. 무섭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보다 더 분명한 것은 그곳에도 여전히 사람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 p. 165
치료자의 일은 그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도, 비난으로 끝내는 것도 아닙니다. 그의 행동은 분명 잘못되었지만, 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 않기 위해 판단을 미루는 일입니다. 나는 그를 변호하기 위해 침묵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자신의 내면과 마주할 수 있도록, 내 판단을 잠심 내려놓는 것입니다. 이 선택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요구합니다. 잠시, 중립이라는 말이 가벼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무거운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 p. 179~180
존재를 본다는 것은 가능성을 믿는 일입니다. 과거가 어떠했는지, 감정이 얼마나 억눌려 있는지와 상관없이,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 자체를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 p. 194
치료는 기술로 완성되지 않는다. 관계로 완성된다. 조언보다 앞서는 것은 함께 있어주는 일이고, 정확한 해석보다 중요한 것은 “나도 그런 마음이 들어요.”라고 말해줄 수 있는 용기다. 교정의 출발점은 규율이 아니라, 다시 사람으로 불리는 경험이다.
... p. 209
치료란 거창한 개입이 아니다. 그것은 회복의 가능성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태도다. 감정을 묻고. 이름을 기억하고, 대화를 이어가는 일. 그 작고 반복적인 행위들이 모여서, 비로소 한 사람이 다시 사회로 나갈 준비를 시작한다.
... p. 214
우리는 종종 ‘무기수’라는 말로 사람을 고정시킨다. 변화하지 않을 존재,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사람, 교육이나 치료가 의미 없다고 여겨지는 대상, 그러나 내가 만난 그는 그 고정된 정의를 조용히 흔들고 있었다. 그는 내일을 약속받지 않았지만, 오늘을 선택하고 있었다. 사람은 공간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의미로 살아간다. 그 의미는 미래의 보장이 아니라, 오늘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생겨난다. 그는 ‘감사’라는 단어를 선택함으로써 오늘에 머물 수 있었고, 오늘을 견딜 힘을 다시 만들어가고 있었다. 웃음은 그 결과였다. 그것은 치료 기법이 만든 기적이라기보다 포기하지 않기로 선택한 한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내 변화였다.
... p. 217
교도소 안에서 심리치료를 한다는 것은 ‘철창 안의 감정’을 다시 꺼내 보는 일이다. 그것은 기술을 적용하는 일이 아니라, 존재를 다루는 일에 가깝다. 절망이라는 단어로 덮인 사람의 마음속에, 다시 하루를 살아가고 싶은 감정의 불씨를 건네는 일이다. 그 불씨는 작고 약해 보이지만, 꺼지지 않는 한 사람을 살아 있게 만든다.
... p. 218
복귀는 단지 출소라는 사건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새로운 삶의 리듬으로 걸어 들어가는 용기와 태도가 함께 따라야 한다. 그리고 그 용기를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회복은 이어지기도 하고 다시 끊기기도 한다.
... p. 223
교도소는 그들만의 공간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복귀가 가능하려면, 먼저 수용자 스스로 자신의 삶을 다시 살아보겠다는 마음을 품어야 한다. 동시에 사회 역시 그 마음을 무조건 의심하기보다, 최소한 믿어볼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회복은 어느 한쪽의 책임이 아니다. 누군가 문을 열고 나가야 한다면, 누군가는 그 문 앞에서 기다릴 준비를 해야 한다. 서로의 준비가 맞닿는 지점, 그곳에서 비로소 복귀는 시작된다.
... p. 223~224
출소 후의 두려움은 약함의 증거가 아니다. 그것은 현실을 직면하고 있다는 신호다. 아무렇지 않게 밖으로 나가는 사람이 오히려 드물다.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은, 다시 살아보려는 의지가 남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두려움을 혼자 견뎌야 하느냐, 아니면 함께 나눌 수 있느냐다.
... p. 231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치유는 누군가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를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순간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방향을 대신 정해주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자기 삶을 마주할 수 있는 자리를 지켜주는 일이라는 것을.
... p. 239
교도소 안에는 수많은 문이 있다. 수용동 출입문, 상담실의 문, 허가 없이는 넘을 수 없는 통제된 문들. 그 문들은 분명하고 단단하다. 규칙은 명확하고, 선은 쉽게 넘을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이곳에서 가장 오래 마주한 문은 따로 있다. 바로 사람의 마음에 닫혀 있는 문이다. 그 문은 억지로 열 수 없고, 재촉한다고 움직이지도 않는다. 다만 시간이 필요하고, 기다림이 필요하다. 침묵 뒤에 조금 달라진 눈빛, 오래 망설인 끝에 꺼내는 한 문자, “다시는 안 오고 싶습니다”라는 서툰 고백. 그 순간들 앞에서 나는 다시 믿게 된다. 닫힌 문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 p. 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