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책 속에서〉
나는 1965년도 11월에 논산훈련소로 입영을 했다. 오전 5시에 나팔 소리가 나니 “기상” 소리가 나며 곡괭이 자루를 든 내무반장이 기상나팔 소리보다도 더 크게 지르기 시작한다. “침상에 모포는 각이 지도록 개어서 관물함에 정리해라. 1분단 다섯 명은 식당에 가서 밥 타 와. 시간이 없어 “빨리빨리 해” 처음으로 당하는 생소한 군인 생활 첫날이다. 내무반장이라는 기간병은 꾸무럭대는 훈병들 등짝을 사정없이 곡괭이 자루로 패며 설쳐대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훈병들은 내무반장이 무섭기만 했다. 1개 소대 병력 40명에게 주는 밥은 식통을 꽉 차게 밥을 줘도 모자랄 판인데 식통에 5분에 4쯤 준다. 식사 당번이 그것을 가져다가 나누어서 40명의 밥그릇에 담아주면 밥은 중간이 폭 들어가게 퍼줘야 한다. 얇은 군용식기 그릇에 4분의 3도 안 된다. 훈병은 식사 배급 시간이 되면 배식이 다 끝나기 전까지 수저를 밥그릇이나 국그릇에 대면 안 된다. 그것은 식사량이 모자라면 배식된 식기에서 또 덜어서 다른 그릇을 적당히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내 식기에서 밥을 덜어가면 내 살을 떼어가는 것만 같을 때가 그때였다. 오전 6시가 되자, “중대 연병장으로 집합.” 그야말로 오줌 누고 자지 볼 시간도 없다. 아침저녁 구보로 2km를 뛰고 나면 뱃가죽과 등가죽이 붙어있는 것만 같다. 배가 고프니 돌려가며 하는 식사 당번으로 가 보았던 식당 밥솥에 붙어있는 누룽지가 생각이 난다. 어떻게 하면 그 누룽지를 훔치러 갈 수가 있을까? 옆 사람과 작당을 했다. 훈병들이 다 피곤하여 잘 때, 변소를 가는 척하고 옆에 훈병과 두 사람이 식당으로 몰래 잠입하였다. 밥솥 옆은 따뜻하니 취사병이 잠을 자고 있다. 솥을 여니 드르릉 소리가 천둥 치는 소리만 같았다. 도망하다가 둘 다 붙들렸다. 곤욕을 치른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훈병들은 다 배가 고프다. 그러니 돈이 있는 훈병은 훈련 시간 중 “휴식”하고 호루라기 소리가 나면 간이 변소로 쫓아간다. 간이 변소 그곳은 일반인인 이동 주보라 불리는 사람들이 들어올 수가 있는 군인 훈련장과 마을 경계에 붙어있는 곳이다. 간이 변소라는 곳은 기름을 넣고 버린 빈 드럼통 위에 나무판자 두 개를 올려놓은 곳이 30여 개가 있다. 간이 변소는 누가 그랬는지 앞쪽은 나무판자가 다 떨어져 나갔다. 10분간 휴식 시간이든 점심시간이든지 그저 이동 주보들이 간이 변소로 쫓아온다. 그러면 이동 주보들은 자동으로 남자 성기를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로 보게 돼 있다. 이동 주보 중에는 처녀들도 많았다. 고구마를 5원에 몇 개를 줄 것인가가 중요하지, 배고픈데 그놈의 남자 성기는 이동 주보가 보거나 말거나가 된다. 큰 것은 5원에 두 개이니, 10원을 주면, 다섯 개를 줄 거냐고 흥정을 한다. 조금 더 작은 고구마 한 개를 받는 흥정에 성공하면 기분은 최고로 좋다. 휴식 시간인 10분 동안 고구마를 다 삼키지 못한 병사는, 명령 불복종 죄, 벌을 받아야 했다. 사제를 사 먹었다고 기간병에게 작은 곡괭이 자루로 등짝을 얻어맞는다. 그리고 원산폭격까지 해야 한다. 얻어터지고 원산폭격을 시켜도, 배고픈 훈병은 고구마를 사 먹는다. “먹고 죽으면 때깔도 좋다.” 하며 배가 부른 훈병은 헤헤거리기도 했다. 그렇게 36일의 지옥 같은 기본 훈련을 받으면 이등병 계급장을 옷에 꿰매라고 준다. 그 지옥 같은 훈련에서 배고파 쓰러져 죽지 않은 것만 해도 큰 다행이었다. 작대기 하나 이등병 그 계급장을 옷에 달면 마음마저 뿌듯했고 자랑스러웠다. 집에서 편히 살다가 지옥을 맞본 6주간의 훈련이 얼마나 힘이 들었든지 새로 들어오는 장병들이 불쌍하게 보였다. 그래도 제일 궁금한 것은 어디로 발령이 날 것인가였다. 훈련을 받고 제대할 때까지 있어야 하는 자대 배치 명령을 받으면 거기서 입대자는 천국과 지옥이 갈린다. 제대할 때까지 있어야 하는 자대 배치는 중대본부에 사무직으로 발령을 받으면 그곳은 천국이다. 천국에 근무병은 옷도 좋고 먹는 것도 좀 자유스럽다. 소총 소대로 발령을 받으면 그것은 지옥이다. 그것은 또 훈련소같이 배가 늘 고프기 때문이다.
- <육군 이등병의 추억> 중에서
빽이 없는 나는 논산 훈련소에서 춘천 제103 보충대로 발령이 났다. 그리고 이틀 후 제대할 때까지 있어야 하는 0사단(00부대) 수색 중대 1중대 3소대로 발령받았다. 늘 훈련하며 사단 경계근무까지 하는 부대이다. 그곳은 또 배가 항상 고플 것 같다. 훈련소 36일도 지겨웠는데 나는 어떻게 3년을 여기서 버티나……. 눈앞이 캄캄했다.
배고픈 나에게 15일 동안 끼니때마다 식권 한 장을 더 얻어 주던 선임 하사는 내 맘에 천사였다. 그리 친절하게 대해 줬던 선임 하사가 말을 했다.
“오늘 이병 이병호 신고식을 일석점호 후에 한다.”
이등병인 나는 신고식이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지도 모른다. 신고식을 시작한다는 시간은 일석점호가 끝난 오후 8시였다. 선임자들은 신고 대상자인 나를 소대 내무반 중간 침상에 따로 앉혔다. 소대원들은 그냥 앉아서 보고만 있다. 선임 하사가 지정한 신고 조장 김 병장이 그럴듯하게 중대를 소개했다.
“우리 중대는 6·25 때 철의 삼각지 전투에서 200여 명의 중대원이 14,000명의 중공군을 격멸한 자랑스러운 부대이다. 또한, 철의 삼각지를 최후로 탈환한 전사에 역사에 남긴 중대에 속한 소대이다. 그러므로 소대원은 부대의 명예를 실추시켜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신고 조장은 1부, 2부 신고 부조장을 소개했다.
“1부 조장 이찬우 상병은 근래에 드문 명사수로서, 사단장 표창장을 받은 사람이다. 2부 조장 오홍근 상병은 유도가 삼 단으로, 사단 씨름대회에서 일등을 하고 휴가를 갔다가 온 우리 소대의 자랑이다. 1부 조장은 나와서 신병 이병호의 신고식을 실시하라.”
그 신고 조장의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3년 시집살이 첫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1부 조장 이찬우 상병은 한 손에 곡괭이 자루를 들고 있었다. 그것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는 단번에 알았다. 1부 조장은 잡아먹을 쥐를 잡아다 놓은 고양이 마냥 나를 쳐다보며 명령을 내렸다.
“이병 이병호는 오늘 신고식을 치러야 진짜 자랑스러운 우리 소대원이 되는 것이다. 신병 이병호는 침상 중간에 서라.”
그 인격 모독의 현장은 사연이 많기에 여기에 다 쓸 수가 없다. 다만 신고식 마지막 두 가지만 간단하게 줄여서 적는다. 신고식이라며 1부 조장에게 엉덩이 또 등짝을 몽둥이로 맞은 것이 몇 대인지도 모른다. 온몸이 얼얼하니 정신도 없지만 맞는 것은 둘째치고, 몰려오는 공포감에 몸은 오그라들었다. 신고 조장이
“다음은 똥숫간 아들에 대한 예의를 시작하기로 한다. <핸드프레이> 안 쳤다는 놈 나와.”
하자, 선임자들은 또 하, 하, 하, 거리며 손뼉을 친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모르는 나는 놀란 토끼가 되어 귀를 쫑긋 세웠다.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걸까? 1부 조장은 2부 조장 오홍근 상병을 그럴듯하게 소개했다. 그리고
“야 2부 조장 야수님. 너 정말 핸드프레이 한 번도 안 쳤다고 했지?”
야수님이라는 별명은 예배당을 다닌다고 하여 붙은 별명이었다.
“네 진짜로 안 했습니다. 그것은 죄를 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고 조장이 큰 소리로 말을 했다.
“그려? 그러면 실토를 하게 해주지. 1부 조장은 나무 몽둥이 대령해.”
2부 조장은 선임들이 아무리 닦달해도 실토를 하지 않았다. 그러자
“군대는 말이야 몽둥이면 다 해결이 되는 거야. 2부 조장 엉덩이를 다섯 대를 세게 때려라.”
몽둥이로 다섯 대를 때리는데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내무반이 쩌렁쩌렁했다. 그리고는 “원위치”했다. 말을 안 들으면 몽둥이가 춤을 춘다는 것을 신병에게 보여준 것이다. 나는 눈이 동그란 채 고양이 앞에 겁먹은 쥐가 되었다. 신고 조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신병 신고식의 추억>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