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19년 출판콘텐츠 창작 지원 사업’ 선정작
오랜 세월 나무는 먹을 것, 입을 것, 머물 곳을 제공하며 우리 인간을 길러 냈다. 저자가 서문에서 썼듯이 “우리 모두는 나무의 친애하는 자식들이다.” 나무는 인간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과 정신에도 크나큰 영향을 미쳐 왔다. 우리 곁의 나무는 상상력을 자극하며 정신을 풍요롭게 해 주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의 소리를 듣고 어루만져 주는 친구이자 이웃 같은 존재다. 나무는 지금도 알게 모르게 인간의 삶의 개입해 도움을 주며 위로하며 가르친다. 무엇보다 나무는 머나먼 옛날부터 상상력과 영감의 원천이었다. 나무는 인간의 모든 이야기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저자는 오랜 시간 인간의 곁을 지켜 온 나무의 몸에 새겨진 우리네 삶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끄집어낸다. 단어 하나하나에 나무와 자연을 향한 남다른 애정을 담아 나무의 삶과 인간의 삶을 문장 안에서 솜씨 좋게 엮어 낸다. 책에 담긴 55편의 우리 나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과 인간을 묶어 주고 있는 질긴 끈을 발견하게 된다.
벚나무, 느티나무, 산수유, 회화나무, 대나무, 은행나무, 오동나무, 밤나무, 소나무, 버드나무, 무궁화, 진달래 등 책에 등장하는 50여 종의 나무는 우리나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하고 친숙한 나무들이다. 인간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살아내는 나무들은 존재 자체가 살아 있는 역사다. 나무는 특정한 자리에서 누군가의 삶을, 어떤 집단의 삶을 듣고 켜켜이 새긴다. 저자는 우리 곁의 나무가 떠올리게 하는 누군가의 소중한 경험, 가족이나 친구 등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추억 등을 환기시키기도 하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나무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들도 풀어 놓는다. 책에 등장하는 나무 이야기는 저자 개인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이야기다. 특히 자연과 시골에 얽힌 추억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글은 당신을 그리운 ‘그곳’과 ‘그 시간’으로 데려다 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나무를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찬찬히 바라보게 할 것이다. 또한 내 주변에 있는 나무와 관계 맺기를 하면서 나만의 특별한 이야기를 나보다 더 오래 그곳에서 살아갈 나무의 몸에 새기고 싶어질 것이다.
책에 실린 55편의 ‘나무에 스민 사람 이야기, 사람이 스미어 듣는 나무 이야기’에는 싹이 나고 잎이 커지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나무의 생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흥미로운 정보들도 많이 들어 있다. 글마다 들어가 있는 장서윤 작가의 정감 어린 그림은 나무를 생각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나무를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책 속에서
느티나무는 언제라도 찾아가면 반겨 주고 무슨 말이든 나눌 수 있는 속 깊은 친구 같다. 말을 잘 들어 주는 나무는 속내를 들켜도 좋고, 쭈뼛대며 물러나지 않아서 좋고, 무슨 말인들 거리낄 것이 없고, 낱낱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것 같아서 정이 든다. 쓸쓸한 날 동네 한 바퀴 돌고 오면 늘 그 자리에 있어 위안이 되던 나무, 입맛 다실 무엇이라도 가지고 나와 나누어 먹던 이웃들, 지나가던 누구라도 끼어들어 이야기꽃을 피우던 시절은 기억 속에 아련하지만 느티나무는 제 몸피에다 꼬박꼬박 적어 왔다. 한 그루 나무가 동네 사람 모두의 일기와 같다.
산사나무는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에 단단한 의미가 부여되었다. 10여 개의 꽃이 소담하게 모여 피는 것도 손에서 손으로 연결되는 노동의 연결고리 같다. 단결하면 아름답다. 힘이 생기고 의지가 된다. 더 큰 힘을 사용할 용기도 생긴다. 세계의 노동자가 없다면 의식주를 가능하게 하는 가치와 즐거움을 어디에서 가져올 것인가.
지금도 수많은 책과 나무들이 내게 사마라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며 새로운 궁금증을 열어 준다. 이미 익힌 즐거움 위에 새로운 즐거움을 얹는 일은 그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는 나만의 뿌듯하고 확실한 씨앗으로 수확된다. 그리고 점점 더 멀리 확산되고 번지고 날아가 아주 작고 작은 생명체를 귀히 여기는 마음으로 연결된다. 흔히 보는 주변의 참새와 노랑나비와 지렁이 한 마리까지, 자연이 일으키는 감각과 활기찬 율동은 만인에게 공개된 비밀이자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기쁨의 날개인 것이다. 사소한 것, 익숙해서 지나치기 쉬운 나무들의 매력을 문득 찾아내는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자주 들판과 골목을 걸어야 하고, 천천히 걸어야 하고, 가만히 보아야 한다. 내가 먼저 나무에게로 가야 한다.
닥나무도 뭔가를 쓰고 싶지 않았을까. 아니, 이미 오래 전부터 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도서관, 서재, 사무실, 공부방 어디라도 책이 없는 곳이 없고, 이는 나무가 쓰고 퍼뜨린 방대한 시간의 기록과도 같다. 지금도 나무는 계속 쓰고 있다. 나무가 지구에 쓰고 있는 글은 깊고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날마다 신선하게 새로 곁들이는 것이어서 사람은 일평생 읽어도 겨우 몇 줄이다.
나는 어떤 색일까, 다른 이에게 비춰지는 색은 내가 생각하는 색과는 어떻게 다를까? 수국을 볼 때면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어떤 색들을 생각하게 된다. 이해받지 못한 색도 있고 끝내 외면한 색도 있다. 모두가 나를 형성하는 색이지만 어떤 이는 소박하다 하고, 어떤 이는 잘 모르겠다 하고, 어떤 이는 그럴 줄 몰랐다고도 할 것이다. 수국이 환경에 따라 색 반응이 다르듯이 나 역시 만나는 시간과 때에 따라 태도와 표정이 달라진다. 그건 어쩌면 생명이어서, 지고 피고 또 새로운 봄을 맞이해야 하는 생명이어서 그럴 것이다. 생명의 물방울은 하나로 되어 있지 않고 여러 가지로 배합되어 있어 색과 소리가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때로는 천진하고 때로는 이해할 수 없이 괴팍하고 또 더없이 상냥한 물방울과 같은 색들이 스민다. 지금도 계속 스미고 있다. 한 잎의 물은 나무에게로 가서 크고 탐스러운 꽃이 된다. 한 방울의 나는 다른 사람에게로 가서 작고 더 작은 사람이 된다. 한 나무의 꽃에서 사람의 일생이 피고 지는 것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