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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해설|세계의 일식이 지나고·권희철
개정판 작가의 말
저자 소개
저자 : 편헤영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와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아오이가든』 『사육장 쪽으로』 『저녁의 구애』『밤이 지나간다』 『소년이로』 『어쩌면 스무 번』 『어른의 미래』, 장편소설 『재와 빨강』 『서쪽 숲에 갔다』 『선의 법칙』 『홀』 『죽은 자로 하여금』 등이 있다.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젊은작가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김유정문학상, 김승옥문학상, 셜리 잭슨상을 수상했다. 현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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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부엉이가 울고 나무들이 달려드는 기이한 숲
흩어진 퍼즐 조각이 가리키는 음험한 진실

“어느 날은 일지에 숲에서 들리는 소리만 적어보기도 했어요. 숲이 조용하고 고요하다지만 다 몰라서 하는 말이에요. 아주 시끄러운 곳이죠.” (p. 45)

소설의 1부에서 변호사 이하인은 실종된 형 이경인을 찾아 거대한 숲을 끼고 있는 외딴 마을을 찾는다. 사이가 썩 좋지 못한 형제지간이었으나 혈육에 대한 의무감으로 움직인 터. 이하인은 경계심을 보이는 마을 사람들을 상대로 형의 행적을 추적하지만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다. 형의 자리를 이어받아 관리 사무소에서 근무하는 박인수, 눈에 띄는 영향력을 행사하며 마을의 일이라면 모르는 것이 없는 진 선생, 과거 벌목꾼이었던 세 사람―세탁소 주인 최창기, 술집 주인 이안남, 서점 주인 한성수―을 거치는 동안 불길한 예감이 그를 사로잡는다.
2부는 숲의 관리인으로 일하는 박인수의 기억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박인수는 주인 모를 스도쿠 책을 뒤적이며 적막한 숲 방향으로 난 창문 근처를 배회하거나 일지를 정리하는 단순한 일로 시간을 보낸다. 만난 적 없는 전임자 이하인의 동생 이경인의 방문은 잔잔했던 그의 일상을 뒤흔들어놓는다. ‘김 대령’이라는 석연치 않은 인물의 제안을 받고 그가 마을에 흘러 들어온 사연 역시 자신조차 납득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아픈 아들과 아내를 데리고 연고 없는 곳에서 지내는 동안 정신적으로 취약해진 박인수는 다시 술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한편 이하인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마을은 소리 없이 술렁이기 시작하고, 기억에 묻어둔 각자의 과거가 혼란 속에서 소용돌이친다. 3부는 이경인을 기억하는 인물들과 오래전 그들이 개입한 마을에서의 갈등을 그리며 감추어진 폭력의 진상을 서서히 밝혀나간다.

아름다움으로 위장된 세계의 폭력
바람의 반대 방향으로 발을 떼는 필사의 움직임

진 선생과 나눈 대화에서 그가 알게 된 점은 하나의 진실이 있으면 어디에든 또 다른 진실이 있게 마련이라는 것이었다. 그가 알아야 하는 진실에는 끝이 없었다. (p. 358)

『서쪽 숲에 갔다』는 최종적으로 이렇게 요약된다. 모호한 소리에 몸체를 찾아주려 했으나 어느샌가 입을 벌린 대지의 틈, 아무것도 없는 폐허에서 자신의 자리를 발견하는 주체의 모험담.
―권희철 해설, 「세계의 일식이 지나고」에서

편혜영의 소설은 부지불식간에 삶을 막다른 곳으로 모는 개인의 선택을, 그 선택이 지닌 의미를 환기시킨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모르고, “무엇을 해야 할지 말지 판단하지 못”(p. 369)하는 박인수는, 자신이 “지켜야 할 것들을 떠올”리며 숲과 “사람들의 ‘삶’을 지켜야”(p. 373) 한다는 오만한 강박 속에서 서슴없이 악(惡)의 방향으로 지름길을 내는 진 선생과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진에게 있어서 불법 벌목을 돕는 와중에 더 많은 몫을 요구한 관리인 이경인은 숲과 마을의 평온을 깨뜨리는 ‘흠’에 가깝다. 더 큰 균열을 막기 위해 흠을 지우는 일에 진은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전임자의 실종에 집착하며 불안을 드러낸 박인수 역시 진에게는 쓸모를 다한 메움재이자, 예견된 골칫거리일 뿐이다. 진과 이경인-박인수로 대변되는 두 세계의 충돌은 단단한 벽에 박힌 작은 존재를 땅에 추락시켜 거칠고 광막한 야생으로 이끈다. 충격에 가까운 삶의 ‘사건’ 이후 스스로 숲에 들어가길 자처해 끝내 길을 잃고 마는 숲의 관리인들은 소설 속 주변 인물들뿐 아니라 독자의 시선에서도 멀리 벗어난다. 소설의 에필로그에서, 한 번의 울음소리를 낸 후 “진이 알고 있는 세상을 떠나” “넓고 커다란 날개를” 활짝 펴 “높이 날아”오르는 부엉이 또한 “단조롭고 명백한 운명”(p. 376)을 벗어난다. 알랭 바디우에 따르면 ‘주체’는 기존 존재 질서가 포섭하지 못하는 사건에 대한 충실성을 수행하는 진리 과정에서 출현한다. 편혜영은 시스템에 고정되기를 거부한 개인이 세계의 무게를 견디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과정을 집요하게 그린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탄탄한 서사와 압도적인 은유의 스케일, 잠시도 방심할 수 없는 심리전 그 자체인 대화문은 단숨에 독자의 몰입을 끌어낸다. 『서쪽 숲에 갔다』에서 읽듯 과거와 결별을 고하며 존재를 만들어가는 자의 ‘선택’은 내면에 막 일어나기 시작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끌고 생생한 어둠을 헤매고 있을 것이다.

저자의 말

작가에게 언제고 쓸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하나씩 있기 마련이라면, 내게는 이 소설이 그러하다. 오래전 이 소설을 쓰지 않았더라도 언제고 다시 미지의 숲에서 헤매는 사람의 이야기를 쓰게 되었을 것이다. 이 소설 이후로 어쩌면 나는 계속 같은 이야기를, 돌이킬 수 없는 삶 앞에서 망연자실한 얼굴로 겨우 스스로와 대면하는 이야기를 되풀이해서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삶을 살아가려는 욕망만큼이나 삶을 망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는 이야기, 걷잡을 수 없는 중독에 빠져 스스로를 잃고 마는 이야기는 언제나 나를 홀렸다. 몰락과 결락에 속절없이 매혹당하는 것은 아마도 삶이 단 한 번만 주어지기 때문이겠지.
오래전의 이야기를 다시 다듬을 수 있게 해준 문학과지성사에게, 번거로운 기색 없이 책을 만들어준 편집부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기꺼이 촘촘한 나무숲으로 동행해준 독자분들에게도 가없는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026년 여름
편혜영

책 속에서

엄밀히 말하면 풍경이랄 것도 없었다. 진입로에 들어서자 나무만 보였다. 나무는 울창하고도 가까워 시커멓게 탄 것처럼 보였다. 좀더 거리를 두고 보면 나무들의 잎이 수령에 따라 나무 크기에 따라 줄기 위치에 따라 수종에 따라 녹색과 연두색의 명도가 제각각임이 확연히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좁은 도로에서 보자니 녹색이 뿜어내는 다양한 농담에 현혹되기도 전에 끝없이 중첩된 나무들에게서 풍겨 나오는 어둠의 무게에 짓눌렸다. (p. 22)

이 사내는 좀 빠르군. 이안남은 숲에 온 관리인을 모두 지켜봤다. 김 이후 서너 명은 되었다. 박인수는 좀 남달랐다. 가족과 함께 나타났다는 점이 그랬다. 관리인이 가족과 함께 자리 잡은 건 처음이었다. 가족이 있건 없건 금치산자와 비슷한 처지라는 건 같았지만. 진은 가족이 없는, 있어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혈혈단신인 사람만을 채용해왔다. 이안남이 박인수의 채용을 의아해하며 묻자, 진은 ‘그 가족은 곧 깨질 거야’라고 단언했다. 아무도 그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진의 말은 틀린 적이 없었다. (pp. 275~76)

어느 순간 가장 먼저 주먹을 날린 최창기가 울음을 터뜨리더니 중얼거렸다.
“이거 알아? 우리는 그간 동물보다 나무를 더 많이 때려눕혔어. 동물보다야 나무가 낫지. 동물은 너무 시끄럽거든. 정말이지 말이 너무 많아. 하지만 조금 맞다 보면 말이 줄어들어. 나중에는 모양도 나무와 똑같아지지. 점점 딱딱해지거든.”
최창기가 정신을 완전히 잃고 축 늘어진 이경인의 배를 발로 쿡쿡 찔러대며 시시덕거렸다.
“이봐, 소용없어. 시체라고 해서 그냥 넘어가지 않아.” (p. 318)

“다녀올게요.”
“어딜?”
“부엉이 잡으러요.”
동시에 헛헛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네 사람이 모두 웃음을 터뜨린 건 그 일 이후 처음이었다. 그들은 왜인지도 모르는 채 실컷 웃었다. 이경인이 간신히 웃음을 참는 표정으로 관리 사무소 문을 열고 나갔다. 이경인은 숲 입구에서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세 사람도 이경인을 따라 손을 흔들어주었다. 키 높은 가래나무 사이에 서 있어 이경인의 모습이 희미했지만 팔뚝에 찬 노란색 완장만은 선명했다. (p. 321)

부엉이는 뚫어져라 진을 보면서 천천히 날개를 펼쳤다. 진이 그동안 봤던 것보다 넓고 커다란 날개였다. 날개를 다 펼친 부엉이는 예의를 차려 남의 집에 들어가는 손님처럼 조심스럽게 눈을 내리깔았다. 진이 문에서 비켜섰다. 부엉이는 조금씩 몸을 움직여 입을 벌린 우리를 소리 없이 빠져나왔다. 넓고 커다란 날개를 허공에서 활짝 폈다. 활공하던 날개가 천천히 움직이는가 싶더니 이내 높이 날아올랐다. 진이 기꺼이 내주었건만 울음소리를 들려주지 않았다. (p. 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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