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완벽한 사람을 빌리고 싶다면 퍼펙트패밀리 주식회사에 연락하세요!
가짜라도 한 번쯤은 완벽해보고 싶었던 사람들의 이야기
1장 “Your Family Is Here”에서는 ‘좋은 딸 대행’을 요청한 사연이 나온다. 신청자는 자신이 “좋은 딸도 아니고, 좋은 딸이 될 생각도 여력도 없”다면서, 부모와 자매에게 안부 인사를 전하고 가끔 방문해 폭력적인 말을 감내하며 가족들을 즐겁게 해줄 사람을 찾는다. 이 사연은 강연인 것처럼 포장되어 관객들 앞에 시연된다. 어떤 관객들은 사연을 보낸 신청자에게 이입해 좋은 딸 역할을 수행하는 것보다 가족 대행이 나을 것이라 말하고, 어떤 관객은 자매의 입장에서 더 나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신청자가 포기하지 않는 편이 바람직할 것이라 의견을 내놓는다. 가족 안에서 수행해야 하는 역할이 개인에게 족쇄가 된다는 입장과 타협이나 희생 없이 유지되는 가족 관계는 어렵다는 입장이 맞선다.
2장 “세상 하나뿐인 나”에 등장하는 ‘셀럽만들기’ 서비스에서는 인플루언서 시대 우리의 욕망을 읽을 수 있다. 어떤 신청자는 성공한 소설가가 되어 팬 사인회를 여는 서비스를 요청하고, 쇼핑몰에서 진행된 행사에서는 관객이 CEO가 되어 쇼핑몰 현장을 시찰하는 상황극을 연출하기도 한다. 3장 “친구 대여? 당근 말고 퍼펙트패밀리!”에서는 대역을 빌려서 멀어진 친구와 옛 이야기를 나누며 추억을 되새기게 해달라는 사연을 받는다. 그 서비스를 통해 신청자가 실제로 멀어진 친구와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친구와 함께했던 기억을 좋은 추억으로 남기기 위한 의미 있는 시간이 된다.
박혜수 작가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주었을 때 이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솔직하게 평가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의 요구 사항이 실현되고 나서 현재의 삶이 더 좋아졌다고 말했지만, 많은 고객은 “자신에 대해 좀 더 말해줄 걸 그랬다”고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충분히 고민하지 못했거나, 처음 보는 의심스러운 사람들에게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지 못한 것이다. 그러고 나서 시간이 한참 지난 뒤, 메일로 진짜로 원하는 가짜를 의뢰한다.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들여다보고 목표를 정하기보다, “옆에 사람이 뛰니 그저 같이 뛰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진단한다. 우리 대부분이 자신의 진심과 대면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데, 때로는 발랄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쓰인 이 책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독자 자신의 진심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상황극에서 메타버스까지, 작가노트에서 사회학 리포트까지
다원예술 프로젝트와 경계를 넘나드는 글쓰기
약 8년간 지속된〈퍼펙트패밀리〉는 다원예술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사연을 받아 상황극을 연출하는가 하면, 특정한 공간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 배우를 빌려주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한다. 사연을 바탕으로 대본을 쓰고, 그 대본을 가지고 90분짜리 공연을 구성하며, 공연을 편집해서 ‘라이브필름 퍼포먼스’ 영화로 만든다(드라마 대본 〈퍼펙트패밀리 주식회사〉의 대본 일부가 책에 수록되어 있다). 오프라인 전시나 퍼포먼스로는 부족했는지 메타버스에 퍼펙트패밀리 주식회사 본사를 만들어 고객들과 소통을 시도한다.
작가의 이런 성향은 글쓰기에도 적용된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자신의 작품을 어떻게 구상했으며, 어떤 방식으로 관객과 만났는지 풀어놓는 작가노트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경험을 다양한 책, 영화, 드라마, 때로는 유튜브에서 얻은 감상과 함께 엮어놓은 에세이기도 하다. 또한 꽤나 진지한 사회학 리포트로 읽을 수도 있는데, 특히 책의 후반부인 3장과 4장에서 그런 성격이 두드러진다. 저자는 자신이 죽고 나서 어떻게 장례를 치를지 걱정하는데, 이는 고독사를 조사하며 쪽방촌을 취재했을 때 목격한 현실과 이어진다. 쪽방촌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웃인 터줏대감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러주고 싶었지만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시신을 인도받지 못한다. 우여곡절 끝에 무연고자로 등록해 겨우 장례를 치를 수 있었지만, 무연고자로 등록된 유골은 땅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10년 동안 가족을 기다리며 강제로 봉안된다. 이미 1인 가구가 대세가 되었지만 제도와 정책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지한 저자는 작품 활동의 일환으로 어떤 형태로 가족을 이루고 싶은지 웹서베이를 시행하고 참여자들이 원하는 가족 형태를 조사한다. 표와 영상으로 정리된 통계를 보고 있자면 이게 예술인지 사회학 연구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특히 이 나라에서는 ‘복지의 최소 단위’가 가족이며, 그 가족을 이루는 방법이 너무도 제한적이라는 저자의 지적은 날카롭다. ‘정상적이라고 여겨지던 가족’의 형태는 이제 많이 해체되어 여러 종류의 가구?가족 형식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데, 국가는 이를 알면서도 사태를 방관하고 있다. 이러다 보면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구성하려는 사람들을 타깃으로 하는 서비스(기업)가 출현할 수밖에 없고, 그러한 미래를 〈퍼펙트패밀리〉라는 형식으로 경고하는 것이다.
두 추천사 필자가 지적했듯, 이 책은 예술적 영감은 사회적 문제의식에서 싹튼다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마치는 글’에서 예술이 ‘거짓’을 보여주는 일이고, “진짜인 척하는 거짓”을 드러냄으로써 오래전 포기한 ‘나’를 건드린다고 말한다. 그럼으로써 ‘나’를 힘겹게 하고, 진심을 마주하게 만든다. 사회적 현실에서 출발해 예술적 처방을 거쳐 독자의 진심과 만나게 만드는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작업 방식처럼 분야와 경계를 넘나들며, 독자들에게 예상치 못한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추천평
“어떤 예술을 좋아하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심오한 말투였지만 나는 즉답했다. “허공 말고 땅바닥(현실)에 붙어 있는 예술이요. 보고 나서 읽고 나서, 내 삶을 돌아보게 하는예술이요.” 박혜수 작가의 작품을 볼 때마다 나는 ‘이런 예술을 보고 싶었다고요!’라는 아우성을 감출 수 없었다. 하나의 개념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설명되지 않는 작품은 관객을 자유롭게 한다. 퍼펙트패밀리주식회사의 지분이 있다면, 나는 그것이 몹시도 탐난다.
이 작업 노트는 예술서를 넘어 인문서를 넘어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든다. 경계를 뛰어넘는 창작자의 작업은 집요하면서도 때론 유머러스하다. 이 지독하게 흥미로운 작업 노트를 읽은 당신은 책장을 덮는 순간, 자신만의 질문을 갖게 될 것이다. 예술은 사회 속에서 출발한다는 진실을 이 책은 증명한다.
- 엄지혜 (작가,『태도의 말들』 『까다롭게 좋아하는 사람』 저자)
내 이럴 줄 알았다. 별것 아닌 농담처럼 툭 질문을 던져 책을 펼치게 하고선, 쓱쓱 읽히는 글을 따라가다 보면 끝내 대면하고 싶지 않았던 감정들과 마주하게 하는 박혜수 작가의 수법! 이번에 당한 질문은 이것이다. “과연 가족이 내 마지막을 지켜줄까?” 몸도 정신도 약해져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게 되었을 때, 내 옆에 누가 있을까. 나는 고독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누구도 자신 있게 답할 수 없다. 그래서 돌아보게 한다. 나이가 들수록 더 크게 느껴질 몸과 마음의 약함, 가깝기 때문에 더 큰 상처를 주고받게 되는 가족과 친구 관계들….
박혜수 작가의 두 번째 단행본『퍼펙트패밀리 주식회사』는 이처럼 평범한데 너무 아픈, 흔한데 너무 내 얘기인 것들로 가득하다. “당신이 꿈꾸는 가족을 빌려드립니다”라는 말에 일부러 속으며, 진짜는 아니지만 오랫동안 깨닫지 못했던 진실과 마주하게 한다. 그 과정이 무겁거나 고통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 안에 또아리를 틀고 있던 감정들을 시원하게 터트린다. ‘Your Family is Here’에서는 가족이, ‘세상 하나뿐인 나’에서는 내가, ‘친구 대여? 당근 말고 퍼펙트패밀리!’에서는 친구가, ‘집 장례도 역시, 퍼펙트패밀리!’에서는 임종 순간의 나와 내 주변의 관계가 주인공이다. 그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사소한 것에 마음을 쓰고 때로 치졸하고 때로 비루하고 때로 애처롭고 애달다.
내 입맛에 맞는 대답만 해주는 AI가 아니라 현실을 자각하고 대면하게 하는『 퍼펙트패밀리 주식회사』에게 기꺼이 고객으로 선택당해, 이 현실에 발 딛고 설 힘을 예술을 통해 얻고 싶다. 기쁨과 존엄과 자유의 이면인 고통과 차별과 불편함을 오롯이 경험하며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퍼펙트패밀리 주식회사』가 몸도 마음도 약해질 노후를 향해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제안하는 예술적 존재론이다.
- 신지영 (연세대학교 비교문학협동과정 교수, 동아시아 소수자·유민의 비교문학연구자)